룰루레몬이 '스포츠웨어의 샤넬'이 된 비결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벌써 무더운 날씨에 다가오는 여름이 두려운 한재동입니다. 매년 많은 분이 저지르는 실수처럼 저도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 앞 헬스장을 등록했는데요. 막상 다니다 보니 헬스장 GX 프로그램인 요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장비부터 구매하는 중년 남성답게 자연스럽게 요가복 쇼핑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요가를 위한 용품에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스포츠 하면 익히 알고 있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놀라웠어요. 오늘은 요가복 시장에서 열풍을 일으켜 다른 스포츠까지 확장하고 있는 애슬레져(애슬레틱atheletic과 레저leisure를 결합한 용어) 웨어 브랜드 룰루레몬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세상에 없던 재질과 디자인의 요가복
룰루레몬의 창립자 데니스 칩 윌슨(Dennis Chip Wilson)은 스케이트와 스노보드 등 레저를 즐기는 운동복 판매 사업가였습니다. 그는 42세가 되는 해 그간의 사업들을 정리했어요.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참여한 요가 수업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가 1998년, 룰루레몬이 세상에 나오기 1년 전이었어요.
당시 요가복으로 판매되는 제품은 극히 드물었어요. 사람들은 아무 운동복이나 입고 왔고, 윌슨도 헬스장에서 주는 옷을 그대로 입었다고 합니다. 요가는 정적이지만 매우 많은 땀이 나오는 운동이에요. 윌슨이 입은 옷들은 땀을 흡수하지 못했고 활동성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여느 레깅스도 스트레칭을 하면 원단이 늘어나 비침이 있어 요가를 할 때 입기에는 불편했어요.
윌슨은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 끝에 듀폰사의 고탄성 우레탄 섬유 라이크라와 나일론의 최적 혼합비율을 찾아냈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의 룰루레몬을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루온(Loun)’이라는 소재예요. 땀 흡수와 배출이 빠르고, 착용감과 신축성이 좋았습니다.
룰루레몬 요가복의 또 다른 차별성은 바로 ‘플랫 심(flat seam)’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이에요. 심은 옷감을 연결하는 솔기라는 뜻인데, 운동할 때 땀에 젖은 솔기는 매우 불편합니다. 윌슨은 철인 3종 경기복을 디자인했던 기억을 되살려 평면 솔기로 레깅스를 만들어요. 그리고 위치를 힙라인 쪽으로 배치해서 몸매가 돋보일 수 있도록 합니다. 세상에 없던 소재와 디자인으로 기존 제품과는 차별화를 이룬 룰루레몬의 레깅스는 타사 제품들의 세 배에 가까운 가격에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브랜드에도 페르소나가 필요하다
이름은 오션, 32세의 전문직 미혼 여성으로 연봉 10만 달러에 자신의 콘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여행과 패션을 좋아하고 하루에 한 시간 반을 운동하는 데에 씁니다. 오션은 룰루레몬의 페르소나에요. 30대라고 할 만도 한데 왜 딱 32살일까요? 룰루레몬은 목표 고객층이 스스로 되고 싶은 뮤즈를 매우 예리하게 설정한 거예요. 오션처럼 되고 싶어 하는 고객들은 룰루레몬을 구매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창업자 윌슨은 “ 22살 여성은 오션 같은 여자가 되기 위해 룰루레몬을 입고, 42살 여성은 10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룰루레몬을 입고 싶을 것”이라고 했어요.
룰루레몬이 페르소나를 오션으로 정한 것은 창업자 윌슨이 요가 클래스에서 만난 많은 여성들을 관찰하고 대화하며 얻게 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룰루레몬이 가장 잘한다는 커뮤니티 마케팅으로 이어졌어요. 룰루레몬 초기에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임대료를 충당하려고 영업이 끝난 후에 요가 클래스에 공간을 대여해주며 시작되었어요. 차츰 요가 강사에게 시제품 착용과 피드백을 받고, 고객과 소통하는 창구로 변모했죠. 현재 룰루레몬 매장에서는 요가를 비롯한 러닝과 크로스핏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클래스를 경험해 볼 수 있어요.
룰루레몬이 매장을 늘리는 데에는 매출 증대 외에도 매장을 지역의 커뮤니티 허브로 삼아 더 많은 사람이 웰빙(well-being)을 누리게 한다는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땀 흘리고(Move), 관계를 맺고(Connect), 성장(Grow)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스웻라이프’를 전파하겠다는 거죠. 수많은 요가 셀럽과 피트니스 관계자로 구성된 룰루레몬 앰배서더들이 스웻라이프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요가에 진심이면 생기는 일
룰루레몬은 유명 모델을 쓰지 않아요. 대신 룰루레몬 앰배서더로 선정된 요가와 피트니스 종사자들을 모델로 기용합니다. 보통의 패션 브랜드들이 하는 마케팅 공식을 따라가지 않고 요가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이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해요. 한정된 공간의 매장을 벗어나 공원이나 숲, 모래사장 등 야외뿐만 아니라 대형 쇼핑몰이나 만리장성과 같은 관광지 등 다양한 공간에서의 요가 이벤트 등을 열기도 합니다.
매장에서는 직원들은 에듀케이터라고 하고 고객을 게스트라고 부릅니다. 에듀케이터는 일반적인 접객을 통해 제품을 파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해요. 고객이 즐겨하는 운동과 숙련도 등 상황에 맞는 제품 추천과 피팅을 도와주고, 매장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천해서 요가를 비롯한 운동이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게 돕습니다. 나아가 직접 지역 커뮤니티의 트레이너들과 소통을 통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역할도 하고요.
에듀케이터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바로 고객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는 창구가 되는 것입니다. 피팅룸에서 혼잣말로 하는 불평까지 수집하는 걸 목표로 삼고 다양한 고객의 목소리를 본사에 전달해 제품개발과 마케팅에 반영한다고 해요. 이를 바탕으로 에버럭스, 럭스트림, 눌루와 같은 최첨단 소재의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고가이지만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제품을 보여주는 룰루레몬에 먼저 반응한 것은 셀럽들이었어요. 킴 카사디안, 켄달 제너 등이 룰루레몬 레깅스를 입고 파파라치들에게 노출되었고, 심지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룰루레몬의 아우터를 즐겨 입었습니다. 유명 인사들이 스스로 룰루레몬의 홍보대사로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증명하다
룰루레몬은 나이키 등 많은 브랜드들이 근래에 도입하고 있는 D2C(Direct to Customer) 방식의 판매를 사업 초기부터 도입했습니다. 유통업체의 가격 인하 정책 때문에 브랜드 평판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직접 고객과 마주해서 의견을 받고 그들의 경험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어요. 2010년대에 들어 요가 붐이 일며 룰루레몬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침없이 성장해 가던 룰루레몬에게도 위기가 있었어요. 위기는 내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3년 룰루레몬의 바지 속이 비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옵니다. 보풀 등 연달아 제품 품질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룰루레몬은 문제가 된 제품들을 리콜했어요.
논란을 수습하려던 창업자는 고객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해서 문제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취임한 CEO도 스캔들에 휘말려 낙마했고요. 성장세가 주춤해지고, 월가에서는 룰루레몬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습니다. 그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현재의 CEO 캘빈 맥도널드이에요.
맥도널드는 2018년 취임한 뒤 확장을 위한 세 가지의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여성 위주의 제품군을 남성까지 확장하고, 둘째는 온라인몰과 매장을 연결해 충성 소비자를 늘리고, 셋째는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로 했어요. 2023년까지 남성 매출과 온라인 매출 2배 성장, 글로벌 매출 4배 성장을 목표로 했습니다. 조직 내 R&D 부서를 재가동하며 품질 관리도 박차를 가했고요.
룰루레몬은 목표를 예상보다 일찍 달성했습니다. 22년 기준으로 남성 제품의 매출 비중은 25%를 상회하고, 자사 온라인몰의 매출 비중은 44%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어요. 중국을 비롯한 해외 진출도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모두에게 위기였던 팬데믹은 원마일웨어(one-mile-wear : 집에서 1마일 반경 내에서 입을 수 있는 옷) 열풍을 일으키며 룰루레몬에는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팬데믹 시대의 대성장, 앞으로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팬데믹 시기 호황을 누린 100대 기업에 선정할 정도로 룰루레몬은 호황을 누렸어요.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자 사람들은 비즈니스 복장을 애슬레저 웨어로 대체했고, 그중 가장 독보적인 브랜드가 룰루레몬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장이 폐쇄되어 매출 감소가 우려되었지만 자사 브랜드몰의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며 결과적으로는 큰 성장을 이루었죠.
팬데믹이 끝나고 외부 상황에 의한 호재는 끝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히려 최대실적을 기록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건강한 삶에 대해 관심이 커지며 애슬레저 장비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룰루레몬은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기도 한데, 홈 피트니스 영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거울을 통해 요가 코치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 ‘미러’를 인수했습니다. 고객 멤버십 프로그램을 런칭했고, 골프 및 테니스 등 스포츠 카테고리를 더욱 확장했어요. 아직 한국에는 미출시 되었지만, 북미에는 슈즈도 발매했습니다.
룰루레몬은 더 많은 사람이 제품을 입어보고, 건강한 삶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요. 제품과 가치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과연 요가를 넘어 세계 최고의 종합 스포츠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볼까요?
한재동 비즈솔루션본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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