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억대 연봉 연구부장이 나와야

이상언 2023. 7. 1. 2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앤슨초등학교 학생들은 컴퓨터 수업을 따로 받지 않는다. 대신 모든 수업에 컴퓨터를 활용한다. 음악시간에 태블릿PC로 여러 악기 소리를 듣고, 과학시간에는 데스크톱 PC로 가상실험(시뮬레이팅)을 하는 식이다. 모든 수업이 한편으로는 컴퓨터 수업 시간이다.’ 10년 전 런던의 학교를 취재하고 쓴 기사의 한 대목이다. 이 학교 교사 사이먼 파일은 당시로부터 7년 전에 자기 반 수업을 이렇게 바꿨고, 이듬해 학교의 모든 수업으로 전파됐다고 말했다.

수업 방식만큼이나 신기했던 것은 그가 한국의 연구부장에 해당하는 학교 보직을 맡고 있다는 점이었다. 젊어 보여서 나이를 물었더니 36세라고 했다. 30대 중반 연구부장을 한국에서 본 적이 없다. 그는 동료 교사와 팀을 이뤄 정보통신 기기를 이용한 수업 방법을 개발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 해외에선 유능한 교사 몸값 높은데
한국은 연공서열이 급여·승진 좌우
공교육 살릴 ‘메기’ 교사 양성하길

앤슨초는 공립이다. 따라서 파일 교사가 다른 교사에 비해 월등히 많은 급여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만약 사립학교로 영입되면 사정이 확 달라진다. 영국 사립학교에는 대학교수 수준의 보수를 받는 교사가 수두룩하다. 교장 연봉이 수억원인 학교도 많다. 유능한 교사·교장이 학교를 옮겨 가며 몸값을 높이는 일이 흔하다. 미국도 그렇다.

‘사교육 망국론’이 1절이면 2절은 ‘공교육 살리기’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수시로 노래를 불러도 공교육은 살아나지 않았다. 상태가 더 악화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진단이 무성하다. 그제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 대책에도 ‘학교의 교과 보충지도 강화’ 등의 공교육 확충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지도 강화’라는 처방의 약발을 사회가 믿지 않는다. 한두 번 나온 얘기가 아니다.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공교육이 더 밀리지 않으려면 학교가 변해야 한다. 학교가 달라지려면 교사가 변해야 한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말이다. 그런데 그제 발표에 교사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대책은 없었다.

학원에서 자거나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많으면 그 수업 강사는 조용히 퇴출당한다. 강사들은 학생의 눈과 귀를 붙잡는 다양한 방법을 쓴다. 요란한 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 역시 퇴출을 부른다. 인기 강사들은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다른 강사 수업도 듣는다. 피 말리는 경쟁이다.

참신하고 효과적인 수업 방법을 개발하고 실행에 옮기는 교사도 있다. 전국적 연구 모임도 존재한다. 코로나 사태 때 잘 준비된 원격수업으로 화제가 된 교사도 있었다. 이런 훌륭한 선생님에게 특별히 제공되는 보상은 거의 없다. 수업에 열의가 없는 교사가 받는 불이익도 별로 없다. ‘수면제’ 선생님들이 시간이 지나면 교감·교장이 된다. 교사를 S·A·B 3개 등급으로 매해 평가해 한 차례 성과급을 주는 제도가 있는데, 평교사의 경우 S와 B가 받는 액수의 차가 100만원 안팎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공교육의 변화를 이끄는 ‘메기’ 교사에 대한 파격적 인센티브(급여 인상과 승진)가 필요하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조 교육감은 “동의하지만 정부가 정해 놓은 교원 급여·승진 시스템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다. 교육청 단위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할 일이라는 뜻이다.

교사 친구들은 똑똑하고 의욕적인 신참 교사가 점점 드물어진다고 말한다. 대기업보다 월급은 적지만 경쟁에 시달리지 않고, 사고를 치지만 않으면 노후가 보장되는 ‘워라밸’ 직장. 교사직이 이런 사회적 인식과 구조에 묶여 있는 한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한 뼘의 땅도 되찾기 어렵다. 고도 자본주의 세상을 관통해 자란 젊은이들에게 직업적 사명감과 학생에 대한 애정 호소의 독전(督戰)이 통할 리 없다. 무엇이 학교를 변하게 하는지 우리가 모르지 않는다. 정치권과 교육계가 이해당사자의 눈치를 보며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사교육과의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정말 있나?

글=이상언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