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청서 돌연..." 독립운동가 문일민과의 뜨거웠던 첫 만남

김경준 2023. 7. 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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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강 문일민 평전] 에필로그 ① 내가 문일민으로 석사논문을 쓴 이유

[김경준 기자]

2022년 10월 25일 독립운동가 문일민 선생의 중앙청 할복 의거 75주년이 되는 날 오마이뉴스에 <무강 문일민 평전> 1화가 올라왔다. 그리고 지난 6월 26일 선생의 말년과 서거에 대한 이야기(24화)를 끝으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관련기사 : 무강 문일민 평전 https://omn.kr/21bxn).

지금까지 연재한 내용은 내가 2022년 8월에 완성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무강 문일민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다듬은 것이다.
 
 기자의 석사학위논문 <무강 문일민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문일민 선생 묘역에 헌정하는 모습
ⓒ 동작문화재단
 
그러나 석사논문에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후손들에게서 전해 들은 문일민 선생에 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은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많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때로는 감동적이고 때로는 기이하다 할 만한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그 이야기들을 에필로그 형식을 빌려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 이야기는 내가 문일민이라는 독립운동가로 석사논문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한 것이다.

임시정부 답사기 만들며 품은 꿈

때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는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정부 주도 아래 다양한 기념사업들이 추진됐고, 그에 발맞춰 언론계·문화계 등 사회 각 분야에 걸쳐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명으로 유독 뜨거운 해였다.

당시 출판계에 몸 담고 있던 내게도 뜨거웠던 해로 기억된다. 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하며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는 도서의 출간을 기획했다. 그렇게 오마이뉴스 기자들과 협업하여 국내 최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투어가이드북 <임정로드 4000km>라는 책을 세상에 내놨다.
 
 2019년 1월 1일, 효창원(효창공원)을 찾아 백범 김구 주석 묘역에 <임정로드 4000km>를 헌정하는 기자의 모습
ⓒ 김경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백범 김구 선생 혼자 이끌어 간 건 아니란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으나, 막상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낯선 이름들을 많이 마주했다. 책이 강조하고자 했던 지점도 김구와 같은 간판격 인물보다 뒤에서 묵묵히 활동하며 임시정부를 지탱해갔던 제2, 제3의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책을 만들고 다시 책의 내용을 콘텐츠로 재구성하여 독자들에게 홍보하는 과정에서 삶의 보람과 활력을 느꼈다. 역사의 그림자로 남은 이들의 존재를 독자들이 새로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뿌듯함과 희열을 느낀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꿈이 생겼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내 손으로 발굴해 널리 알리고 싶다는 꿈 말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니고 있던 출판사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사학과 석사과정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문일민을 만나다

대학원에 진학한 목표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알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원래는 안중근 의사의 동지였던 우덕순과 김좌진 장군의 친척동생으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김종진 등의 삶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인물들에 대한 흥미와는 별개로 논문을 쓸 만큼의 자료들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현충원에 조성된 독립유공자 묘역을 답사하며 그곳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의 묘비를 꼼꼼하게 살폈다. 묘비에 적힌 약력들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 흥미로운 이력을 가진 이들의 명단을 따로 체크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 해당 인물에 대한 선행 연구 유무와 논문을 쓸 만큼의 사료가 있는지 2차 조사에 돌입했다.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느라 슬슬 진이 빠질 무렵 내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10월 25일 오전 11시 40분 국민의회 대의원 문일민 씨는 서울 중앙청 2층 식당 좌측 마당에서 돌연히 면도칼로 할복하여 유혈이 극심한 채 혼수 상태에 잇는 것이 발견되엇는대 가지고 잇는 유서에 의하면 계획젹 자살이 판명되엇다한다...... 현장에 달녀온 긔자의 뭇는 말에 문씨는 자살 원인에 대하여야 38년이나 해외에서 조국 광복 운동을 하엿스나 독립이 되지 안음으로 죽으려한다고 힘 업시 말하엿더라." - <독립 체언 통탄하고 문일민씨 자살계획>, 《독립》, 1947.12.10.

한 독립운동가의 공훈록에 수록되어 있던 기사였다. 그가 바로 문일민(1894~1968)이었다. 해방된 나라에서 독립을 호소하며 할복 자결을 시도한 독립투사라니.
 
 무강 문일민 (1894~1968)
ⓒ 문일민 후손 제공
 
곧바로 문일민이 어떤 인물인지 꼼꼼하게 살펴봤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광복군총영 소속으로 국내에 특파, 평남도청에 폭탄 투척, 상하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이승만 탄핵운동 주도, 만주 정의부에서 독립군 양성, 중국혁명군 소속으로 북벌 참여, 충칭 임시정부 활동 등. 그는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붙잡히지 않고,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으면서 만주 벌판과 중국 대륙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일제가 물러난 뒤에도 한반도가 외세에 의해 남과 북으로 나뉜 채 독립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에 분개해 미군정(중앙청)에서 할복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문일민으로 석사논문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이 '중앙청 할복 의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일민 선생의 묘역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김경준
 
자료 찾아 삼만 리

살아생전 이렇듯 다양한 단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줄기차게 투쟁했음에도 문일민 선생에 대해 주목한 선행 연구는 없었다. '내 손으로 선생의 불꽃 같았던 삶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라는 꿈이 생겼다.

그렇게 열심히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선생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임시정부 기록·신문기사·일본 외무성 기록 등 다양한 사료들 속에서 문일민이라는 이름이 발견됐다.

그러나 단편적인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선생의 삶과 사상을 온전히 그려내려면 보다 구체적인 활동상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렇게 세밀하게 묘사된 기록을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것이 역사 속에서 잊힌 독립운동가들의 숙명일까.

특히 선생은 해방 후까지도 생존해 있었건만 정작 당신의 삶을 기록한 회고록이나 일기 등을 남겼다는 기록도 보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했던 동지들의 회고록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의 이름은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백범일지>에서조차 그의 이름 한 줄 드러나지 않았다. 괜히 김구 선생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국가보훈부(당시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토대로 국내외 사료들을 이 잡듯이 뒤졌다. 특히 천안 독립기념관 수장고에 선생이 동지들과 함께 쓴 성명서 원본이 소장돼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한달음에 달려가 확인했다. 선생의 손때 묻은 성명서를 어루만졌을 때의 감격이란.
 
 2021년 7월 14일 천안 독립기념관 자료실을 방문하여 문일민 선생 관련 자료를 열람하는 기자의 모습
ⓒ 김경준
 
이처럼 자료가 많지 않았기에, 가뭄에 콩 나듯이 예상치 못한 데서 문일민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특히 임시의정원 회의록에는 선생의 발언이 구어체로 실려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선생의 발언을 읽을 때면 선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흐릿하기만 했던 문일민이라는 한 사람의 상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나는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선생의 후손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 에필로그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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