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 무대 오른 첫 국가기관, "소수자 정책없다" 정부 비판
[김성욱, 권우성 기자]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2가를 출발해, 명동역, 한국은행앞, 서울광장, 종로를 지나는 도심행진을 벌이고 있다. |
ⓒ 권우성 |
"여러분 우리가 밀려났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더욱더 넓고, 더 크게 피어났습니다! 진짜 사랑은 여기 있습니다!" (이동환 목사)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2가를 출발해, 명동역, 한국은행앞, 서울광장, 종로를 지나는 도심행진을 벌이고 있다. |
ⓒ 권우성 |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
ⓒ 권우성 |
서울 퀴어퍼레이드 집행위원회 측은 "서울광장 사용이 불허됐을 때 공원이나 경기장에서 행사를 진행해도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자긍심 행진의 의미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드러내겠다는 것"이라며 을지로 일대에서 개최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간 서울광장에 설치됐던 수십 개의 부스는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에서 청계천 베를린광장으로 이어지는 'ㄱ'자 차도 세 차로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를 비판했다. 정혜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왜 축제조차 누군가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고 투쟁의 현장이 돼야 하나"라고 했다. 현주 서울 퀴어퍼레이드 집행위원장은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다면,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불허한다"고 했다. 대학가 무지개행진 기획단은 "혐오는 우리의 광장을 넓힐 뿐"이라고 했다.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2가를 출발해, 명동역, 한국은행앞, 서울광장, 종로를 지나는 도심행진을 벌이고 있다.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종교단체와 보수단체가 서울시청과 광화문네거리 주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가며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
ⓒ 권우성 |
서울퀴어퍼레이드 때면 늘 열리는 수구·기독교 단체들의 맞불 혐오 집회도 어김없이 있었다. 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된 을지로입구역 도로 건너편에선 '온세상경배찬양단'이라는 단체가 빨간 해병대 옷을 입고 단체로 북을 치며 "동성애 죄악" "하나님의 심판" 등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는 중구 덕수궁 앞에서 '2023 통합국민대회 거룩한 방파제'를 개최했다. 명동성당과 종각 앞에서도 일부 기독교 단체들이 행진하는 성소수자들을 향해 "동성애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충돌은 없었다. 성소수자들은 "저들의 방파제를 넘자", "웃음과 사랑으로 이기자"고 했다. 행진 도중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동성애 반대 집회 기도 소리를 들은 참가자들은 "저도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동성애 교육 결사 반대'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마주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한 어머니는 '응 내 자식 퀴어', '자랑스런 내 자식 퀴어'라고 적힌 피켓을 더 높이 치켜들었다.
"25세 멋진 게이의 아빠"라고 소개한 조아무개씨는 무대에 올라 "오늘 우리 게이 남자 며느리 구하러 나왔다"고 해 좌중을 웃겼다. 차도에서 프리허그를 진행한 부모들과 품에 안긴 10대 성소수자들은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2가를 출발해, 명동역, 한국은행앞, 서울광장, 종로를 지나는 도심행진을 벌이고 있다. |
ⓒ 권우성 |
연대도 이어졌다.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1시간 30여 분간 이어진 거리 행진 내내 맨 앞에서 성소수자들과 함께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문제다", "성소수자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문제다"라고 소리쳤다.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2가를 출발해, 명동역, 한국은행앞, 서울광장, 종로를 지나는 도심행진을 벌이고 있다. |
ⓒ 권우성 |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서 나온 스님들은 행진하는 성소수자들에게 오색실을 묶어주기도 했다. 수녀님들은 무지개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국이 더 포용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아갈수록 우리 두 나라는 더 굳건히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중구 세종호텔 앞 농성장에 머무는 해고 노동자들은 '피어나라 퀴어나라,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도 지지합니다'란 피켓을 흔들며 성소수자 행진을 맞았다. 명동의 외국인 관광객들도 박수를 보냈다. 행진은 을지로 2가 사거리에서 출발해 명동, 시청 앞, 종로를 거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이었다.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축제장에 외국 대사관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
ⓒ 권우성 |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 중 유일하게 행사에 참가했다. 더 나아가 사상 처음으로 인권위 관계자가 서울 퀴어퍼레이드 무대에 올라 연대 발언을 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염형국 인권위 차별 시정 국장은 무대에 올라 윤석열 정부의 성소수자 정책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존재 자체로 부정돼선 안 된다. 혐오와 차별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라며 "현재 우리 정부의 성소수자 정책은 딱히 없다. 어떤 관련 정책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2가를 출발해, 명동역, 한국은행앞, 서울광장, 종로를 지나는 도심행진을 벌이고 있다. |
ⓒ 권우성 |
다음은 이날 염 국장의 발언 전체를 기록한 것이다.
"24회를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20년 넘는 이 순간 오기까지 애쓰신 모든 분들께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서울 퀴어문화축제는 평등을 확인할 수 있는 인권의 현장입니다. 퀴어 축제가 개최되는 순간까지, 또 오늘 퀴어축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우리는 혐오와 차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로 7년째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희 인권위가 국가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이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 뭘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그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존재 자체로 부정되어선 안 됩니다. 혐오와 차별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 참석자들이 을지로 2가를 출발해, 명동역, 한국은행, 서울광장, 종로를 지나는 도심행진을 벌이고 있다. |
ⓒ 권우성 |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6년, 인권위는 정부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지난 2020년 6월 법률안 시안을 만들어서 다시 한번 평등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발의된 평등법 제정안들은 지금 논의되지 않은 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멈춰 서있습니다.
평등법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사이, 서울과 대구 등에서의 퀴어문화축제 반대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고, 이슬람사원 건축 현장 앞에는 돼지머리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혐오 표현 또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행여 누군가로부터 혐오, 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모욕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바로 어제, 국회에서 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토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우리 국회의원님들은 본회의를 이유로, 한 분도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토론회에서 목사님이 오셔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과잉대표 돼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기독교인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국회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20년째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회적 합의와 신중한 논의는 그런데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국가인권위원회는 멈추지 않겠습니다. 혐오와 차별을 배제하고 평등의 가치로 연대하고자 합니다. 오늘, 1년에 딱 한 번인 평등의 축제에서, 우리 안에 감춰둔 유쾌함을 최대한 꺼내보십시오. 이러한 유쾌한 에너지를 모아 혐오와 차별을 함께 없애나갑시다. 어느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평등한 삶을 함께 누립시다. 혐오와 차별을 넘어, 모두가 마주 볼 수 있는 그날까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은 통일부를 없애고 싶은 건가
- "가장 황당한 공문"... 광주 교육청은 생각도 없나
- "방통위는 용산 대통령실 출장소 아냐, 김효재는 직권남용"
- 황금보다 비쌌던 파란색 가루, 하녀의 앞치마에 숨겨진 이야기
- [영상] 김대중의 100만 장충단 연설 "독재는 가짜반공"
-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무료입니다"
- "실록을 쓰듯 만들어낸 한글 잡지 제작 33년"
- [오마이포토2023] '피어나라 퀴어나라' 내·외국인 수만명 퀴어퍼레이드
- '하얀 전쟁' 쓴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 별세… 향년 82세
- 미 외교전문지 "윤 정부 무고죄 처벌 강화, 성폭력 피해자 침묵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