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최저가 시대에 학생들 사로잡은 가게 "우린 파는 게 달라요"

월간 옥이네 2023. 7. 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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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문방구] 자신만의 철학 지켜가는 학우문구센터·알파옥천점

[월간 옥이네]

[이전기사]
동네 마지막 문방구 지키려고... 사장님이 팔기 시작한 물건 https://omn.kr/24ko9

[옥천읍 '학우문구센터 향수기프트'] 선물을 전하는 마음으로
 
 옥천 학우문구센터 향수기프트 외관
ⓒ 월간 옥이네
     
옥천읍 중심가에서 삼양초등학교, 옥천우체국, 옥천역을 가려면 지나야 하는 길이 있다. 주중, 주말할 것 없이 항상 사람과 차가 있는 그 길에 기다란 간판 두 개를 이은 문방구가 있다. 유재구(61)씨가 이곳을 인수한 지도 어느새 5년. 인수 전에도 70대 부부가 40년 가까이 운영했던 곳이라고 하니 그 역사가 벌써 반세기에 가까운 셈이다. 긴 세월을 지나 이제는 유재구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학우문구센터'가 궁금하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제본까지 하는 문구점을 본 적이 있어요. 규모가 제법 커서 문구점도 저렇게 운영할 수 있구나 새롭게 보였죠. 그때 생긴 관심이 이어져 옥천에서 문방구를 인수했는데 2019년부터 전국적으로 문구점 수가 줄기 시작했어요. 학생 수 감소 영향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자상거래가 발달했잖아요. 최저가 경쟁도 치열하니 오프라인에서 물건 구매하는 손님이 줄 수밖에 없죠."

20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오래전 가슴에 품고 있던 문방구를 시작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큰돈을 들여 광고할 수도 없기에 유재구씨만의 방법으로 학우문구센터를 가꿔나가야 했다.

그가 처음으로 고민한 것은 방향성이다. 학우문구센터만의 특성을 생각하는 데 2년이 걸렸다.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문방구를 운영하며 심사숙고한 결과 학우문구센터 이름에 '향수기프트'를 더했다. 향수는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 '향수'에서 따왔다. 문방구에 지역을 담은 이름은 어떤 물건이든 고향을 함께 선물하고 싶다는 그만의 운영 철학을 담았다.

학우문구센터에 들어서면 진열대 모서리와 천장에 붙어 있는 글귀가 눈에 띈다. 계절에 어울리는 글과 응원의 말을 곳곳에 붙여놓은 것. 이것 또한 문방구를 가꿔가기 위해 그가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저 물건을 판매하는 곳으로만 남고 싶지 않아요. 오가는 손님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가정의 달, 호국보훈의 달과 같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함께 기억하자고 알리는 거죠. 매월, 계절이 달라질 때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고민하는데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되길 바라요." 

문방구 이름부터 공간을 가득 채운 문장까지, 아직도 손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말하는 유재구씨다.

학우문구센터에는 캐릭터 카드, 물총, 슬라임 등 다양한 놀거리 역시 가득하다. 사무용품을 사러 온 어른들도 시선을 붙들 만큼 제법 화려한 장난감이 많다. 어른들도 멈칫하게 만드는 장난감, 어린이의 마음은 단번에 사로잡지 않을까?

"최근에 어린이날, 어버이날로 꽃이나 선물을 사 가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런데 문방구는 기념일이라고 해서 다른 날보다 손님이 많거나 하지 않아요. 다른 문방구에 비해 장난감 수가 많아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워낙 소매이니까요. 간혹 선물이 급해서 오시는 손님이 구매하는 경우가 전부죠."
 
 옥천 학우문구센터 향수기프트 유재구씨
ⓒ 월간 옥이네
 
 "지금처럼 운영하다 보면 문방구 추억을 가진 손님이 한 명이라도 생기지 않을까요(웃음)."
ⓒ 월간 옥이네
    
대체로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추세라지만 하교하는 학생들의 눈길을 붙드는 데는 성공이다. 두세 명 무리를 지은 학생들은 "재밌는 거 있는지 볼까?" 하며 문방구를 둘러보기도 하고, 나 홀로 필기류 코너에서 펜을 고르는 데 고심하기도 한다. 학생들로 시끌벅적한 문방구 모습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특별한 목적 없이 방문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몇 안 되는 공간임은 분명해 보였다.

손님이 필요한 물건을 단번에 찾을 만큼 문방구를 가득 채운 물품을 전부 기억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먼지를 쓸어내는 유재구씨. 쉬는 날 없이 매일 같은 시간 공간을 열어두는 것에는 그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

"문방구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이 줄어가고 있다지만 먼저 문방구가 있어야 추억도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지금처럼 운영하다 보면 문방구 추억을 가진 손님이 한 명이라도 생기지 않을까요(웃음). 지역에 있는 문방구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문방구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요."

[옥천읍 '알파옥천점'] 계속 부지런한 문방구로 남고 싶어요
 
 알파옥천점 외부
ⓒ 월간 옥이네
 
먹자골목을 지나 충북도립대학교 가는 길목, 옥천에서 가장 큰 문구점이 있다. 약 70여 개 학교, 회사, 관공서를 상대로 운영하는 '알파옥천점'은 거래량만큼 매일 새로운 물품이 들어온다. 사무용품부터 장난감과 식료품까지, 넓은 공간에 수많은 물품이 일렬로 정리된 모습이 꼭 마트를 보는 듯하다. 

이곳이 생긴 지도 어느덧 15년이 됐다. 박미숙(56)·이용수(59)씨 부부는 2000년 책과 만화책을 대여해 주는 '열린글방'을 운영하다 2008년 문구점으로 업종을 바꿨다. 2013년에는 현 위치(옥천읍 금구리)로 옮겨 '알파옥천점' 자리를 잡았다. 현재 직원 한 명과 함께 운영하고 있지만 손이 모자라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재고는 전산으로 관리해 수월하지만 워낙 수가 많아서 옮기고 정리하는 데 시간도, 힘도 많이 들어요. 동시에 손님 응대도 해야 하니 정말 쉴 틈이 없어요."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이 관공서, 학교, 회사에 판매된다. 그만큼 배달 요청도 많다.

"배달은 면 지역으로도 가요. 요즘은 온라인으로 많이 주문한다지만 급할 때는 저희한테 연락하시지요. 면 지역에는 문방구가 없으니까 더 가야겠다고 생각해요."

면 지역 배달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경 쓴다고 말하는 박미숙·이용수씨. 부부는 옥천 토박이로 각각 안내면, 청성면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동네'에 학교와 문방구가 없어지는 모습을 봐서인지 더욱 마음이 쓰인다고. 

"저는 안내면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때 대동초등학교(안내면 동대리, 1993년 폐교) 앞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어요. 학용품을 사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장소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작았지만 부족함은 없었죠." (박미숙씨)

"그때는 돈이 없어서 학용품도 마음대로 못 샀죠. 청성면에는 청성초등학교, 화성초등학교, 능월초등학교, 묘금초등학교 4개 학교가 있었어요. 저는 능월초를 다녔는데 전교생이 800명이었어요. 학생이 많으니 학교 앞 문방구도 두 곳이나 됐고요. 집처럼 마루가 있는 문방구였는데, 친구들끼리 아래점빵(동네 작은 가게), 윗점빵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요." (이용수씨)

알파옥천점에도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은 모습이 있다. 어린이날, 생일 같이 일 년에 몇 없는 특별한 날, 학부모들이 학급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그렇다.

"예전에는 학급 선물 주문이 많이 들어왔어요. 100개가 들어오면 새벽 2시까지 포장만 했죠. 그런데 똑같은 물건을 100개, 50개씩 구비해 두지 않으니 급하게 물건을 떼와야 해서 시간이 배로 들었죠. 때마다 유행하던 캐릭터가 그려진 문구 세트, 샤프 같은 것이 선물로 많이 나갔어요."

새 학기가 되면 독특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새 학용품을 구입하려는 맞벌이 양육자들의 발길로 밤 11시까지 가게 불을 밝혀야 했던 것. 

"2011년 초등학생 학습준비물 지원이 있기 전에는 새 학기 때 필요한 학용품을 가정에서 준비해야 했죠. 그때는 새 학기마다 거의 2주를 씨름하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바쁜 게 3일도 안 가요. 학교에서 학용품을 제공해 주니 직접 문방구에 올 필요가 없어진 거죠."
 
 알파옥천점 내부
ⓒ 월간 옥이네
 
 박미숙·이용수씨 부부는 2000년 책과 만화책을 대여해 주는 '열린글방'을 운영하다 2008년 문구점으로 업종을 바꿨다.
ⓒ 월간 옥이네
 
문방구에 손님으로 가득했던, 1년에 몇 안 되는 날이 지나갔다. 대면보다 온라인으로, 주문 전화로 손님 보는 날이 많아졌지만 언제나 공간을 정돈하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등굣길에 들르는 손님들이 계세요. 문 여는 시간이라 어수선할 수 있는데 그래도 단정하게 보이면 좋잖아요. 조금 일찍 출근해서 한 번 더 쓸고 닦고 해요.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공간 운영은 저희가 부지런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매일 문을 열어요. 가능하다면 80세까지 운영하고 싶어요.(웃음)"

월간옥이네 통권 72호(2023년 6월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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