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사회적 분열 심각... 전 세계 파장 몰고 올 수도"

박정우 2023. 7.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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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나더 경제사> 저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②

[박정우 기자]

*1편에서 이어집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 홍기빈
     
- <어나더 경제사>(책소개 영상 바로보기)를 보면 지금 인류가 처한 수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지난 300년 동안 벌어진 것이라고 했는데, 대체 300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이때 벌어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경제에 대한 관점 자체의 변화입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경제의 본래 의미에서 보면 외계인 같은 거예요. 고대부터 약 일만 년 동안 경제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대략 300년 전부터 바뀐 겁니다. 이 세상에 무한히 성장하는 게 있나요? 모든 만사만물은 일정 정도가 되면 성장을 멈추잖아요. 그런데 이즈음부터 생겨난 경제 체제와 경제 사상의 최대 목적은 무한한 성장과 무한한 축적이 되어버렸어요. 그 맥락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 시스템 또한 거시적으로든,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든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축적해서 더 많이 쓴다는 원리로 돌아가고 있지요. 우리가 보통 산업혁명 같은 것을 바라볼 때 대부분 증기기관이니, 방적기니, 제직기니 하는 기계 장치에만 집중하는데 진짜 본질은 이런 인류 문명적인 태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현재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작년 말,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홍기빈 클럽에서 2023년을 두고 해도에 없는 바다로 들어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도 벌써 절반 가까이 지나왔는데 현재 시점에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제가 해도에 없는 바다로 들어간다고 말한 건 밋밋한 한 해가 될 거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딱히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거나, 큰 재앙이 닥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해도에 없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거라는 말입니다. 한편으로 그 사이에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그걸 우리가 감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는데요. 지금 국제 질서를 보면 위기가 시작이 되긴 했지만,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 건 아니에요. 정치 시스템, 경제 시스템, 산업 시스템, 등등 기존의 시스템이 건재하기 때문에 어떤 위기가 닥쳐도 단기적으로는 그걸 막아내긴 합니다. 옛날처럼 큰 재앙으로 번지거나 하는 일은 없죠. 대신 다른 형태로 누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3월, 4월에 은행 위기가 왔지만 금방 안정됐죠. 그러면 사람들은 금세 까먹습니다. 사실 은행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돈 찍으면 끝나요. 한편으로 대형 은행들이 나서서 위기에 있는 은행을 인수하기도 했고요.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이 무너질 때도 바로 시스템이 작동됐죠. 하지만 이런 게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제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더 큰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발생하는 은행 위기의 가장 밑바닥에는 90년대 이후 전 세계 모든 은행이 가진 유동성 창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을 보면 여기에 대응한 건 아니에요. 다시 말해 표면적인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그 근저에 있는 유동성 창출 문제는 계속 쌓이고 있지요. 이게 비트코인의 폭등으로 나타날지, 대안적 화폐로 나타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문제가 계속 누적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경제 정책 바라보는 시각, 철학 80년대 그대로 되풀이... 이건 문제"

-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우선 뭐 비난하거나, 찬양할 의도는 없고요. 우려되는 점만 보자면 밀턴 프리드먼부터 시작해서 경제 정책 만드는 관료들도 자꾸 자유시장 얘기를 하는데, 참... 이런 게 좀 문제라고 봐요. 그래서 우리가 경제사 공부를 해야 되는 겁니다.(웃음) 그러니까 역사적인 국면이 바뀌어 가고 있는데 경제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철학이 80년대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법인세 인하 같은 조세 감면이나 혹은 규제 개혁을 통해 투자를 활성화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게 옛날 경제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입니다. 현실과 맞는 정책이 아니에요. 전 세계는 지금 보호무역주의와 국가 산업정책을 지원하는 쪽으로 쏠리고 있는데 이런 세계적인 변화의 추세를 좀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은 경제라고 하면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아파트나 코인을 생각합니다. 경제란, 결국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과정이라고 믿지요. 같은 맥락으로 좋은 경제학자란 어디 부동산에 투자해야 가장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 어느 종목의 주가가 상승할지를 잘 예측하는 사람이 되었고요. 이런 세상에서 선생님께서는 경제학자이면서 '좋은 삶'을 이야기합니다. 언뜻 좋은 삶과 경제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요.
"우선 19세기, 20세기 초에 어떤 종류의 경제 지식이 유의미한 것인가를 놓고 엄청난 학자들이 대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누구는 역사를 해명하는 것이라고 하고, 누구는 정책을 잘 세우는 것이라고 하고 심지어 누구는 혁명운동이라고까지 했어요. 즉, 경제적 지식이라는 게 다종다기하다는 걸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재테크가 어찌 보면 연금술의 연속이 아닐까 싶어요. 따지자면 목적이 같죠. 한 번도 제대로 안 맞는데 사람들이 계속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것도 그래요. 연금술 역사를 보면 황당한 게 당시에 '이게 실제로 가능해?'라는 질문을 아무도 안 던졌어요.(웃음) 재테크도 마찬가지죠. 아무리 대단한 재테크 전문가나 펀드 매니저라고 해도 시장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도 그게 가능하다고 믿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재테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쪽 연구도 계속 되어야 합니다. 부인하는 것 아니에요. 하지만 경제가 오직 재테크라고 믿는 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정책은 어떤지, 거시 경제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등 경제의 영역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런 경제학의 여러 종류의 지식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중에서도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좋은 삶은 무엇인가를 놓고 경제의 다양한 지식을 조직하는 게 경제가 나아갈 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경제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경제 때문에 생태가 파괴되는 이유도 결국 경제에서 좋은 삶이 빠져버리고 GDP 성장, 무한한 자산 증식을 경제의 최고 목표로 삼은 결과는 아닐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내 사회적 분열 아주 심각한 상황"
 
 <어나더 경제사1> 표지이미지
ⓒ 시월
 
- 올해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놓고 하반기를 전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한다면 AI의 등장을 꼽을 수 있을 텐데요. AI는 과연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인공지능이야 말로 정말 해도에 없는 바다인 셈인데요. AI로 시작된 산업의 변화가 어느 정도의 규모일지, 얼마만큼의 충격을 가져올지 지금으로선 예측이 안 됩니다. 이를테면 교육제도를 어떻게 바꿀 건지, 각종 직업과 산업이 어떻게 될지, 그 변화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어요. 다만 앞서 말한 대로 시스템이 아직 건재하기 때문에 AI라는 새로운 기술과의 충돌은 불가피합니다. 이 시스템이라는 것은 안정성을 주지만, AI 같은 경우를 보면 변화를 지체시키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AI라는 새로운 기술과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서로 출동하는 형국이기 때문에 올해는 자산 시장만 들끓을 것 같고 어떤 현실적 변화가 벌어질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게 1995년과 비슷한데요. 그때 인터넷이 세상을 다 바꿀 거라는 열망이 있었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쉽게 바뀌나요. 그러다 나중에 몇 년 있다가 버블 터지고 끝났잖아요."

- 또 하나는 역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장기전으로 가는 형국인데요?
"네. 아무래도 이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는 않고요.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아웃 오브 컨트롤' 될 위험입니다. 이것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굉장히 불안해하고, 빨리 평화 협정으로 가야 한다고 얘기해요. 미국도 푸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지는 않을지 주목해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제프리 색스(Jeffrey Sachs) 같은 경제학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해요."

- 그 외에 주목하는 것이 있다면요?
"미국 내 사회적 분열입니다. 이게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금 미국인들 중에 10년 안에 내란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 및 여론조사 기관인 유가브(YouGov)에서 2022년 8월에 여론 조사한 결과로 보면 무려 43%가 미국에서 10년 안에 내란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일반인만 그런 게 아니라 역사학자, 철학자, 정치학자 등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지금처럼 산업과 국제정치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잘못 맞물리면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습니다. 2024년의 미국 공화당 민주당의 후보 지명전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어나더 경제사>는 학문적으로 뭘 논증하려는 책은 아닙니다.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고, 동시에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관해 함께 의논해보고 싶은 책인 만큼 쉽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 공부하는 사람들은 학문적인 논증을 통해 동료 학자들과 학계에 영향을 주고, 그걸 통해 사회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저는 인류가 중요한 변곡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절박한 심정입니다. 이런 기로에서 제가 쓴 이 역사 이야기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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