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다시 선생님이 되다

엄회승 2023. 7. 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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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다시 워킹맘으로... 아이와 함께 고비를 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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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회승 기자]

 한달간의 일정을 기록하는 교사수첩
ⓒ 엄회승
 
결혼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로 정신없이 바삐 지냈다. 결혼 후, 임신과 출산 7년간의 육아로 의도와는 상관없이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일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이는 아직 어리고 어린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학원을 재취업할까 고민도 했지만 학원 수업이 오후에 시작해 늦게까지 수업을 해야 하니, 어린 딸아이를 두고 다닐 수는 없었다.

육아 경력 7년이라는 시간은 과거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쌓아온 과거 경력을 마치 쓸모없는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 같아 상실감이 컸다.

결혼 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

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 직장과도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있어 입지조건도 좋았다. 아파트 근처에 큰 상가도 있어 유치원이 끝나면 아이를 픽업해 학원 보내기도 괜찮았다.

아이를 상가에 있는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에 데려다 주다 유명 학습지센터에 아이 학습 상담을 하러 갔다. 자연스레 과거 학원경력 얘기를 했고, 마침 시간제 교사를 구하고 있던 학습센터에서 덜컥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하지만 아이가 아직도 한참 손이 많이 가는 7살 유치원생이다. 결국 일하는 동안 아이를 같은 상가에 있는 여러 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봉급은 작았지만,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해 일을 시작했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2층 태권도학원을 간 후, 4층 피아노학원을 가고, 5층 미술학원을 마치면 내가 일하는 3층 학습지 센터로 내려와 1시간을 더 공부하고 난 후에야 나와 함께 퇴근했다.

일을 시작하니 챙겨야 할 것들은 더 많아졌다. 아르바이트이기는 하나,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아이도 챙겨야하며 집안 일도 해야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아이와 함께 매일 마라톤 풀코스를 뛰듯 뛰고 있었다. 마치 제2의 육아 전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 준비를 해 아이가 공부하는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서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조심히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좁은 교실에 독서실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칸막이가 있는 큰 책상에 7살짜리의 작은 체구의 아이가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쭈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본 순간, 그동안 꾹 눌러 참았던 감정이 왈칵 눈물로 쏟아지려던 걸 누가 볼까 애써 참았다. 아이의 손을 끌다시피 데리고 나와,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습지 센터 팀장님께 그만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러 상황 때문에 다음 달까지 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한 달을 더 풀코스로 다니고서야 그만둘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직접 공부방을 운영해야겠다고 말이다.

아르바이트로 경험한 학습지 외에 우리나라의 굵직한 몇 개의 학습지를 더 알아보고 난 후, 지난 1년간 경험을 해 본 유명학습지 브랜드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사한 지역은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곳이었다. 인맥도 없는 이곳에서 공부방을 하려니,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나 다시 아이를 매일 마라톤 풀코스를 뛰듯이 학원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먼저 학습지 회사 입사를 하기 위해 서울본부로 가서 면접에 시험까지 봤다. 입사 합격 통보를 받은 후에는 2주간의 교육도 받았다.

공부방에 필요한 물품과 인테리어를 준비했고, 교습소인가를 위한 서류절차로 개인과외 교습자신고서, 주민등록등본, 최종학력증명서 또는 졸업증명서, 증명사진, 경찰서에 어린이 관련 전과기록이 없다는 증명서류 등을 준비해 교육청에 신고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드디어 한 달여 만에 공부방을 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보람과 건강하게 자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 엄마 외에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그동안 상실감이 컸었다.

그토록 수많은 고민이 쌓여가던 그 시간이 이제 당당한 한 여성으로서의 출발점이 서 있는 것 같아 걱정도 많았지만 함께 설레임도 있었다. 드디어 7년여 만에 경력단절여성에서 워킹맘으로, 엄마에서 다시 선생님이 됐다.

 
딸아이가 아프다

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이다. 수업이 끝나려면 아직 한 타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학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애간장이 타다 못해 머릿속은 아픈 아이를 등에 업고 대문을 뛰어나가고 있었다. 학생이 들어오는 문을 노심초사하며 보다가도, 아이가 있는 안방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잠시 안방 문을 열고, 혹여 그새 공부방 학생이 들어올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한 타임만 하면 돼. 금방 끝나니깐 조그만 기다려."

아이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끝난다고 안심하도록 얘기했지만, 일곱 살짜리의 아이는 아픈 배를 자신의 손으로 꼭 움켜잡고는 혹여 엄마 수업에 방해될까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침대에 애처롭게 누워있었다. 엄마를 보자 눈에 그렁그렁했던 눈물은 어느새 하염없이 흘러 조그마한 얼굴을 온통 적시고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그만하자! 내가 무슨 때 돈을 번다고 어린 딸아이가 아픈데도 당장 병원에도 데리고 가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어야하나.'

그 사이 수업을 받는 학생이 도착해 마지막 수업을 했다. 수업 내내 머릿속은 온통 안방에 누워있는 딸아이 걱정에 상념이 많았다. 동시에 배우려고 열심히 뛰어온 이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책임감도 수업도 모두 내 머릿 속에서 지워버렸다. 부랴부랴 누워있는 딸아이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아이를 등에 없고 대문을 뛰쳐나와 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2시간 가까이 되는 고통을 홀로 참고 견딘 아이를 보며 죄책감, 미안함, 자책감,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화도 났다.

"선생님 아이는 괜찮나요?"

나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의사선생님께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로 딸아이를 진찰하고 배를 이리저리 만져보고는 금세 청진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컴퓨터로 처방을 내리며 가볍게 말했다.

"배에 변이 가득하네요."
"네! 변이요! 혹시 똥 말씀이세요?"
"네, 변을 제대로 못 본 거 같아요. 엉덩이에 넣는 좌약 하나 처방해드리고 같이 먹는 약도 처방해 드릴 테니 옆에 주사실에서 좌약 넣고, 잠시 기다리시다가 화장실에 가서 변 보고 가시면 돼요."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좌약 처방에 딸아이는 당황해하고 좀 힘들어는 했지만, 그 좌약 덕분에 금세 시원하게 변을 볼 수 있었다. 시원하게 변을 본 딸아이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엄마, 이제 배 안 아파."

아이의 말에 그제야 안도감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딸내미 그러게 엄마가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도 먹어야 된다고 했지. 고기만 먹으니깐 똥이 안 나와 배가 아프잖아. 이제 야채도 많이 먹을 거지."

아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엄마, 근데... 똥을 누니 배고프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병원을 올 때와는 다른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일이 어쩜 내게는 도전이고 모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일이 나를 갈등하게 하고 고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와 항상 함께할 수 있기에 그 어떤 일들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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