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얼굴 ‘포샵’이 재밌다고?…AI 편집 어디까지
생성형 AI로 왜곡하고 “예쁘다”
“처벌은 하수의 방법, AI리터러시 필요”
부산 ‘또래 살인’ 피의자 정유정(23)의 신상이 지난달 1일 공개된 후 온라인 커뮤니티엔 정유정의 증명사진을 ‘포샵’한 누리꾼의 게시물이 속속 올라왔다.
사진 속 정유정은 안경을 벗고 치아를 드러내 활짝 웃거나, 화장을 한 채 긴 생머리로 둔갑한 모습 등이었다. 대부분 인공지능 기반의 사진 편집 애플리케이션 ‘페이스앱’을 거친 사진이다. 일부 누리꾼은 정유정의 얼굴을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평가했다. 더 나아가 ‘살을 빼면 예쁘겠다’ ‘안경을 벗기면 어떨까’ 등 엽기적인 상상을 내놓더니 앱을 동원해 이를 실현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정유정을 우스꽝스럽게 편집한 사진도 있었다. 망치로 얼굴을 내리치거나, 화마에 둘러싸인 듯 표현한 것이다. 아예 과도한 화장과 헤어 스타일로 연출한 모습도 있었다. 가장 많은 조회 수를 얻은 게시물은 10만 회에 육박했다. 2010년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26명의 얼굴이 공개됐지만 피의자의 얼굴 사진을 편집하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진 것은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유행을 온라인상의 ‘놀이문화’로 진단한다. 정유정이 저지른 끔찍한 살인 사건이 온라인에서 이목을 끌자, 피의자 정유정의 얼굴 사진을 왜곡하는 것이 일종의 놀이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사이버범죄를 연구하는 이원상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1일 “온라인에서 노는 요즘 세대의 놀이문화는 순식간에 바뀌는 특성이 있다”며 “과거 다른 범죄자 때와는 다른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일례로 2019년 신상 공개가 결정된 첫 여성 범죄자 고유정 사건 때도 인터넷에 얼굴 사진이 여러 장 퍼졌지만, ‘포토샵’이 유행처럼 번지는 일은 없었다. 이 교수는 “요즘 정유정의 얼굴 사진을 편집하는 세대에게는 고유정 사건도 이미 상당한 기간이 지난 일”이라며 “그새 얼굴 사진을 편집하고 온라인으로 유포하는 일이 새로운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했다.
고유정 사건 이후 4년 만에 이런 현상을 불러온 배경엔 생성형 AI라는 ‘장난감’의 등장이 있다. 생성형 AI는 이용자가 지시한 특정 요구에 따라 결과를 생성해내는 인공지능 기술을 말한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대화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 지시하는 대로 그림을 그려주는 ‘미드저니(Midjourney)’ 등이 대표적이다.
정유정의 얼굴을 편집한 누리꾼들은 대부분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편집 앱인 ‘페이스앱’의 얼굴 보정 기능을 사용했다.
AI 관련 법제를 연구하는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기존 사진 편집 앱들도 인공지능을 활용하긴 했지만 챗지피티 등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사진 편집 기술이 ‘다음 단계’로 발전했다”고 했다. 과거에는 개인의 프로그램 활용 능력에 따라 사진 편집 기술이 달라졌다면, 이제는 누구나 고도의 인공지능을 통해 사진 편집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생성형 AI로 이미지를 편집할 때 편집 대상이나 정도에 대한 윤리적인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사진 편집 앱 ‘스노우’가 최근 선보인 ‘AI 프로필’은 얼굴 사진 20~30장이면 하루 만에 완벽한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 낸다. 누리꾼들은 본인 얼굴뿐 아니라 좋아하는 아이돌의 AI 프로필도 만들어보면서 이를 일종의 놀이로 즐기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정유정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연예인이나 자기 얼굴이 아니라 공익적 목적을 위해 신상이 공개된 살인 사건 피의자의 얼굴이다. 정유정을 편집한 사진 중에는 온라인 기사에 실린 정유정의 사진을 그대로 캡처한 뒤 ‘페이스앱’으로 가공해 혼동을 주는 이미지들도 있다. 정유정을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 행태 자체가 정유정의 범죄로 희생된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2차 가해로 느껴질 소지도 다분하다.
최 교수는 “이런 ‘포토샵 놀이’에 참여한 누리꾼의 공통된 동기가 IT 기술 활용에 대한 윤리 의식의 부족”이라고 진단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도 “타인의 신체 이미지를 손쉽게 편집·제작·유포하는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며 “이미지 편집의 대상이 범죄자라고 해서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유정이 ‘20대 여성’이라는 점이 누리꾼의 호기심을 촉발한 측면도 있다. 잔혹한 살인 사건 내용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젊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해 주목도를 더 높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송효종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유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운 상황이라서 20대 여성인 정유정을 성적 대상화 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편집된 사진을 유포하고 공유할 때 도덕심이 더욱더 둔감해진다는 점도 지적됐다. 송 교수는 “현실 세계에서는 도덕에 관한 기준과 규범이 오랫동안 정립돼왔지만, 온라인 공간은 역사도 짧은 만큼 이런 기준이 희미해 아주 약한 도덕성만이 발휘된다”고 평가했다.
정유정의 얼굴을 편집하고 관련 내용을 유포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현행 법률로는 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 사진을 편집하는 행위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 정유정이 명예훼손으로 게시자들을 고소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기존에 허용되던 놀이문화에 형벌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가장 하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사회적 논의를 통해 AI 기술 사용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타인의 신체 이미지를 조작하고 가공하는 ‘놀이문화’ 자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저작권’이나 ‘초상권’ 등 법적 용어로만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온라인 문화의 일부로 이미지 편집이 일상화된 시대에 편집 기술에 익숙한 세대들이 윤리적 관점에서 이미지 편집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AI 리터러시’ 교육이 해법의 하나로 제시된다. ‘인공지능 대응능력’을 뜻하는 AI 리터러시는 구체적으로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고, 인공지능이 인간과 사회에 미칠 윤리적인 영향을 고려해 일상에서 활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최경진 교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처럼 이젠 새롭게 나타난 AI 기술 활용에 관한 AI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영은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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