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후'가 보여주는 안방 SF의 가능성
[김성호 기자]
사람들은 흔히 SF는 엄청난 자본이 있어야만 찍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많은 SF영화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제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한국에서 SF 콘텐츠를 쉽게 제작하지 못하는 이유라고들 말한다.
근래 만들어진 한국산 SF영화 <승리호>와 <정이>가 200억 원 내외의 비용을 들여 만들어졌다는 점을 떠올리면 SF란 이정도 자본이 없다면 도전할 수 없는 장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 <닥터 후: 죽음의 행성> 포스터 |
ⓒ BBC |
제작비 상승이 더 나은 작품을 만들까
정확한 액수가 공개된 건 아니지만 <닥터 후> 뉴 시리즈는 편당 제작비가 10억 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같은 방송국의 대작 드라마와 비교한다면 결코 비싼 축에 들지 못한다. 촬영 상당부분을 간결하게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찍고 기본적인 수준의 CG며 장비를 활용하는 덕분이다. 연기력을 따질 뿐 톱스타를 캐스팅하는 일도 피하니 제작비가 샐 구멍을 효과적으로 막는다고 하겠다.
생각할 지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영국이 한국에 비해 SF를 제작하기 더 좋은 환경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도 적잖이 흥미롭다. <승리호>와 <정이> 등에서 보듯 CG기술이야 한국이 영국보다 앞서면 앞서지 뒤지지는 않는다. 작품에 활용되는 각종 소품 또한 한국에서도 쉬이 구할 수 있는 것뿐이다. 결국 부족한 건 담아낼 내용이지 그릇이 아니란 뜻이다.
▲ <닥터 후: 죽음의 행성> 스틸컷 |
ⓒ BBC |
눈 앞에서 사라진 버스, 그리고 우주
드라마는 런던 도심 야경을 조감하며 시작된다. 밤의 런던, 한 박물관에 도둑이 든다. 도둑은 매력적인 젊은 여성으로, 그녀는 마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동작으로 금으로 만들어진 컵을 훔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다. 이내 알람이 울리고 그녀는 허겁지겁 인근을 지나는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엔 다른 사람들도 여럿 타고 있는데, 그중에 바로 닥터(데이비드 테넌트 분)가 있다.
이야기는 한순간에 전환된다. 범인이 탔다는 걸 눈치챈 경찰이 버스를 뒤쫓는 가운데, 지하터널로 접어들던 버스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버스가 지나간 공간은 텅 비어있으니, 그곳에 바로 웜홀이 있다.
▲ <닥터 후: 죽음의 행성> 스틸컷 |
ⓒ BBC |
한국에선 찾기 어려운 SF드라마
드라마는 런던 한복판에 나타난 웜홀과 그곳을 뚫고 낯선 행성에 떨어진 버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세상에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다. 대단한 기술이 활용되지 않은 평이한 SF이지만 이를 본 시청자 상당수는 만족하여 박수를 쳤다.
그건 이 드라마가 긴박한 연출로 이야기의 맛을 살렸고, 드라마의 매력인 캐릭터 또한 잘 살아났으며, 무엇보다 영상과 이야기, 내용과 형식이 서로 어긋나거나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닥터 후: 죽음의 행성>은 다른 여러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생명력을 얻었다.
이와 비슷한 무엇을 한국 TV에서 거의 만나본 적 없다는 사실은 적잖이 아쉽게 다가온다. 엄청난 기술력이나 대단한 배우가 없더라도 착상과 구성으로 SF드라마가 승부할 수 있음을 이러한 시리즈가 입증하고 있는데 말이다. 시도는 더 나은 시도로 이어지는 법이다. 무엇보다 전성기에 돌입한 한국 콘텐츠 제작환경은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갖추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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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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