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인생" 김종민의 20년 롱런, 비결은 이거였다
[김상화 기자]
▲ 지난 6월 30일 공개된 '나영석의 나불나불 - 종미니랑 2부'의 주요 장면 |
ⓒ 에그이즈커밍 |
최근 나영석 PD가 속한 제작사 '에그이즈커밍'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 왔다. 과거 나PD가 담당했던 KBS 2TV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여걸식스> <준비됐어요> < 1박2일 > 시즌1에 이르는 2000년대 예능 고정 멤버 김종민이 모처럼 그와 마주 앉은 것.
가수 겸 예능인 김종민은 방송가에서 독특한 위치의 인물이다. 댄서를 거쳐 인기 그룹 코요태의 새 멤버로 합류해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에 돌입한 이래 늘 한결같은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누군가처럼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어느 순간 차갑게 식어버리면서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침 없이 꾸준함으로 20년이 넘도록 주말 TV 예능의 중심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고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김종민을 두고 나영석 PD, 김대주 작가는 6월 30일 공개된 영상 '나영석의 나불나불-종미니랑2'를 통해 영화 <여고괴담>에 비유하기도 하기도 한다. 수많은 MC들이 나왔다 사라져도 김종민은 늘 거기에 있었기에 "그냥 그 학교 3학년 2반에 계속 있는거야. 선생님도 바뀌고 친구들도 바뀌는데 종민이는 계속 거기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어"라는 말로 그의 오랜 기간 활약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 지난 6월 30일 공개된 '나영석의 나불나불 - 종미니랑 2부'의 주요 장면 |
ⓒ 에그이즈커밍 |
최근 케이블TV, OTT를 중심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예능 장르는 '연애 예능'이다. 그런데 이미 20여 년 전 당시 지상파 3사의 주력 프로그램들도 역시 연애 예능이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것을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김종민이 늘 존재했다.
<산장미팅>과 SBS <연애편지>, 그리고 버라이어티 예능이면서 연애 코드를 수시로 강조했던 <엑스맨>에서 김종민은 빼놓을 수 없던 인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2020년 TV조선 <연애의 맛> 시즌1에 이르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김종민은 한 획을 그었다. 이날 함께 자리한 이우정 작가는 김종민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때 주말 예능의 판도를 SBS가 꽉 잡고 있었을 때 당시 본인이 맡았던 KBS 예능을 뿌리치지 않고 꾸준히 함께해준 점을 지금도 잊지 않았다. 그 시절의 흐름에 대해 나PD는 이렇게 회상했다.
"제일 센 사람들이 SBS 일요일에 가. MBC는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어. 그 안에서 크는 (김)용만이 형을 비롯해서, 그 다음 센 사람이 KBS 2TV 일요일에 와. 그 다음이 KBS 2TV 토요일이야!"
▲ 지난 6월 30일 공개된 '나영석의 나불나불 - 종미니랑 2부'의 주요 장면 |
ⓒ 에그이즈커밍 |
지금은 국민 예능의 대열에 올라선 < 1박2일 >이지만 그 직전 나영석 PD는 <여걸식스>를 거쳐 2개월여 만에 단명한 <준비됐어요>를 이명한 PD(현 에그이즈커밍 대표, 전 티빙 대표)와 연출을 맡았다. 강호동-이수근-은지원 등 < 1박2일 >시즌1 주요 멤버들이 등장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좀처럼 시청자들의 관심, 시청률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이 실패한 예능이 결과적으로는 < 1박2일 >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어줬다. 바로 복불복 시스템을 처음 선보인 것이 <준비됐어요>였기 때문이다. 캡사이신을 이용해 엄청 매운 고기를 미끼 삼아 내놓든가, 빈 수박을 고르면 벌칙을 받는 초창기 복불복의 원조였던 것이다. 그때를 회상하는 나PD와 김종민, 이우정 작가의 이야기는 별 다른 도구 없이도 쏠쏠한 재미를 구독자들에게 안겨줬다.
때마침 전화로 연결된 당시 <여걸식스> 연출자였던 신원호 PD와의 대화를 통해선 그 시절 추억도 잠시 떠올리는 등 2000년대 초중반에 걸친 KBS 예능 속 뒷 이야기가 속속 전해지면서 나PD가 진행하는 일종의 예능 역사 강의(?)도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 지난 6월 30일 공개된 '나영석의 나불나불 - 종미니랑 2부'의 주요 장면 |
ⓒ 에그이즈커밍 |
모처럼의 만남이 가져온 즐거움으로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나PD는 이런 구상을 언급해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종민이를 교육시켜 데뷔 3년 차 아래 직종을 불문한 연예인을 대상으로 '2박3일 캠프 아카데미'를 열면 어떨까?"라는 것이었다. 연예계 꾸준함의 상징인 김종민을 강사로 초빙해 그들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시간을 가져본다는 하나의 구상이었다.
이에 김종민 본인 역시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면서 역시 공감을 표시한다. 다만 "설명을 못하겠어요"라면서 특유의 어눌한 화법으로 주변 사람들과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면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평소 허술하고 빈틈 많은 인물처럼 여겨지던 김종민의 진가가 발휘된다. 이우정 작가는 일종의 상황극 설정으로 김종민에게 가상의 고민을 토로한다. 이때 등장한 그의 대답은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19살에 데뷔해서 막 스타가 되었는데 무슨 사건이 생겼어. 사람들이 나를 욕해. 그러면 은퇴해야 돼?"(이작가)
"은퇴요? 은퇴할 필요 없죠. 오히려 터질 때까지 기다려라. 먼저 움직이지 마라."(김종민)
"근데 그 기간이 아마 굉장히 고통스러울 거에요. 쥐 죽은 듯이 있어라."(김종민)
"억울함? 그거 며칠이다. 며칠 지나면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김종민)
▲ 지난 6월 30일 공개된 '나영석의 나불나불 - 종미니랑 2부'의 주요 장면 |
ⓒ 에그이즈커밍 |
동문서답 같지만 의외로 현명한 상담 의견을 내놓자 이우정 작가는 이를 두고 "김종민의 미지근한 인생"이라고 언급해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뜨겁거나 차가운 것보다 나을 수 있는 미지근함에 그를 비유한 건 어찌보면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뜨겁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금방 식을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반면 미지근함은 꾸준함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예능인 김종민이 20여 년을 한결같이 우리 곁에 있어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비록 어느 한 순간 대세를 뒤흔든 인물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각종 연애 예능과 < 1박2일 > <미운우리새끼> 등으로 20여 년 주말 황금시간대를 책임져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김종민은 충분히 대접받고 존경받을 만한 예능인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동안 나PD의 tvN 예능 성격과 < 1박2일 >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보니 부득이 그동안 부르지 못해 미안하다는 제작진의 말에도 김종민은 결코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되려 고마웠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나를 부르면 잘할 것 같지 않은거야"라며 되려 미안함을 표하는 것이다.
이런 점이야 말로 예능인 김종민이 지금껏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방송에 임해왔다. 김종민은 모처럼 재회한 나영석 PD-이우정 작가 등과의 대화를 통해 미지근한 예능 인생이 충분히 값어치 있음을 우리에게 전달해줬다. 이쯤 되면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PD-김종민의 예능 신작 등장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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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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