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서 만난 시리즈 역사상 가장 잔혹한 공포
[김준모 기자]
▲ <이블 데드 라이즈> 스틸컷 |
ⓒ 27th BIFAN |
슬래셔, 스플래터는 유독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공포장르다. <할로윈>, <스크림> 등 히트 시리즈의 후속편이 한국에서는 개봉 후 소리 소문도 없이 막을 내린 바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2023년 최고의 인기 호러영화 중 한 편인 <이블 데드 라이즈>는 국내 개봉을 포기하고 VOD 직행을 택했다. 이 아쉬움을 달래준 곳이 호러 팬들의 성지라 불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국내 첫 스크린 상영을 이뤄낸 <이블 데드 라이즈>는 전설적인 호러영화 시리즈 <이블 데드>의 후속편이다. 악마를 부르는 죽음의 책 네크로 노미콘과 전기톱 등 상징적인 소재는 가져오지만 2013년 리부트판처럼 이전 트릴로지와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동시에 리부트판과도 연관성을 지니지 않는다. 리 크로넨 감독은 색다른 질감의 <이블 데드>를 선보이기 위해 원작자 샘 레이미에게 한 가지를 허락 받았다고 한다.
▲ <이블 데드 라이즈> 스틸컷 |
ⓒ 27th BIFAN |
자매의 만남은 지진과 함께 균열이 생긴 아파트처럼 이들 사이에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를 보여준다. 이 문제를 깨우는 건 악령이다. 균열 속에서 죽음의 책을 발견한 엘리의 아들은 호기심에 함께 동봉된 LP판을 켠다. 그 순간 악마를 부르는 주문이 시작된다. <이블 데드 라이즈>가 시리즈 사상 가장 슬프고도 아픈 설정을 선보이는 건 엘리가 겪게 되는 고통에 있다. 아들이 깨운 악마는 엄마의 몸을 빼앗는다. 그리고 엄마는 자식들을 죽이고자 한다.
악령은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생각을 끄집어낸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오만가지 생각 중 가장 부정적인 것을 찾아 추악한 진실처럼 포장한다. 악마에 지배당한 엘리는 싱글맘으로 짊어져야 했던 자식들에 대한 부담을 말한다. 경제적인 빈곤 속에서도 모성애를 보여줬던 캐릭터의 붕괴를 통해 섬뜩함을 자아낸다. 외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심리적인 측면도 자극하는 저력을 선보인다.
▲ <이블 데드 라이즈> 스틸컷 |
ⓒ 27th BIFAN |
베스는 임신 후 자신이 어머니가 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악마는 이 내면의 갈등을 자극한다. 이런 유혹 속에서 베스의 분투는 새로운 자신이 되기 위한 사투에 가깝다. 가족의 붕괴, 주체적인 여성서사 등 현대적인 감각을 통해 고전호러를 윤색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도 <이블 데드> 시리즈가 지닌 장점을 확실하게 담아낸다. 바로 피칠갑 호러다.
무려 6500 리터의 가짜 피를 사용하며 시리즈 역사상 가장 잔인한 수위로 호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파트를 공간으로 한 만큼 다수의 인물들에게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공격을 가하는 독창적인 표현이 취향저격을 이끌어 낸다. 하이라이트는 <이블 데드> 시리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전기톱이다. 여기에 클라이맥스로 피 비린내가 풍기게 만드는 엄청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이블 데드 라이즈>는 클래식 킬러 콘텐츠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린 영화라 할 수 있다. 스플래터 장르가 줄 수 있는 피와 흐트러진 살점이 난무하는 장르적인 쾌감에 자매의 캐릭터 설정을 통해 심리적인 측면 역시 자극한다. 국내 시장의 한계상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는 이런 영화를 상영한다는 점이야 말로 아시아 최대의 장르영화제를 표방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지닌 가치가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