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비바람에 쓰러졌다...410년 마을 지킨 수호신의 재탄생

박진호 2023. 7. 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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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의 영원한 안식의 의미를 담은 ‘꽃잠식’이 거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 횡성군]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횡성 느릅나무'


오래된 마을엔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주로 은행나무와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이다. 옛 주민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쯤으로 여겼다. 마을 초입에서 악귀를 쫓아주길 바랐다. 수호신 나무들은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왔음에도 수형(나무 모양)이 꽤 아름답단 특징도 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바람에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 수호신 나무에 보답하듯 마을 주민들이 나무 지키기에 나선다. 강원도 횡성군 느릅나무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8일 오전 횡성군 둔내면 두원리에서 수령 410년가량의 느릅나무가 결국 부러졌다. 이 나무는 1982년 횡성군이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해 왔다. 높이 23m, 둘레 6m에 이른다. 가지가 무성하다. 혹여 가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질까봐 지지대까지 설치했지만 많은 비가 내리면서 소용 없게 됐다.
지난달 28일 강원 횡성군 둔내면 두원리에서 수령 410년가량의 느릅나무가 부러진 모습. [사진 횡성군]


횡성 누릅나무에 얽힌 전설


이 나무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두 전설이 있다. 이곳을 지나던 한 노승이 땅에 느릅나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거목이 됐다고 한다. 또 어느 해인가 느릅나무가 잎이 피지 않고 시들해져 갔는데 경북 풍기에서 한 소년이 병으로 죽으면서 어머니에게 “제가 보고 싶으면 횡성 두원리에 있는 느릅나무를 찾아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후 어머니가 느릅나무를 찾아오자 죽어가던 나무에 잎이 다시 피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구전을 바탕으로 느릅나무에 서낭신을 모시고 매년 제례를 올려왔다.
이처럼 수백 년간 마을을 지켜 온 수호신 나무가 쓰러지면서 주민들의 아쉬움과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에 주민들은 지난 8일 느릅나무의 영원한 안식의 의미를 담은 ‘꽃잠식’을 거행했다. 꽃잠은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잠자리’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2018년 6월 비바람이 몰아쳐 부러진 경기도 수원시 영통 느티나무의 현재 모습. [사진 수원시]


목재 활용해 작품 제작, 건조에 '3~4년' 걸려


횡성 누릅나무는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조각 기능대회 은상 수상자 등 둔내 출신이거나 둔내에 거주하는 지역 예술인들이 재능 기부에 나섰다. 장비를 직접 가져오고, 비용도 자체적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이 나무의 경우 둘레가 6m에 달한다. 절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인 데다 나무 건조에도 3∼4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단 의미다.
김병혁 횡성군 산림녹지과장은 “살아서 400여년을 두원리 마을과 희로애락을 함께했고 죽어서도 주민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해 줄 느릅나무는 진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틀림없다”며 “횡성군의 자랑이 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2018년 수원 영통 느티나무가 부러지자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수원시]


수원 영통 느티나무 '조형물'로 제작


앞서 2018년 거센 비바람에 부러졌던 ‘수원 영통 느티나무’는 5년이 지난 현재 다시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수원 영통신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느티나무사거리에는 3m가량의 느티나무 밑동과 부러진 나무로 만든 조형물이 있다. 이 나무 밑동은 수령이 540년으로 자연적으로 탈락하는 수피를 제거하고, 지속해서 방수 및 방부 처리를 하며 보존한 덕분에 마치 예술 작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나무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됐다. 부러지기 전까지 높이 23m, 둘레 8.2m에 달했다. 2017년 산림청이 전국의 노거수와 명목 등을 평가해 선정한 으뜸 보호수 100주에 선정됐고, 보호수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의 표지에 실렸을 정도로 수려한 모습을 자랑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과 함께 장기판이 펼쳐지는 주민들의 쉼터, 매년 단옷날 청명산 약수터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와 당산제와 동네잔치를 여는 소통의 장소이기도 했다. 2018년 6월 비바람에 나무가 부러지자 수원시는 즉각 대책을 마련했다. 느티나무의 남은 부분을 보호하는 방법과 복원할 방법을 찾기 위해 나무병원 등 전문가와 머리를 맞댔다. 현재 조직배양을 통해 후계목 20주를 증식하는 데 성공했고 주변에 자라고 있는 나무 중 우량목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600년의 세월 동안 부산 구포동을 지켜온 팽나무도 2017년 고사한 뒤 보존돼왔다. 하지만 2021년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높이 18.2m, 둘레 5.8m의 나무가 쓰러졌다. 이에 부산시는 주민들이 신성시해 온 이 나무의 밑동을 남겨 보존하고 있다.

횡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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