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쇼크웨이브](20)"AI의 'A'도 꺼내지 마라"…애플은 왜 AI를 감추려 하는가

백종민 2023. 7. 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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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AI대신 머신러닝이라 불러
WWDC23서 소개한 다양한 신기능은 AI 기반
클라우드 기반 생성형AI에 온디바이스 AI로 대응
애플 실리콘 탑재 뉴럴코어로 반도체 차원에서부터 준비
매년 AI연구에 MS의 오픈AI 투자금 쓰는 큰 손

편집자주 - [애플 쇼크웨이브]는 애플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며 벌어진 격변의 현장을 살펴보는 콘텐츠입니다. 애플이 웬 반도체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애플은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노력 끝에 애플은 모바일 기기에 사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설계해 냈습니다. PC 시대에 인텔이 있었다면, 애플은 모바일 시대 반도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 위기와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 설비 투자가 이뤄지는 지금, 애플 실리콘이 불러온 반도체 시장의 격변과 전망을 꼼꼼히 살펴 독자 여러분의 혜안을 넓혀 드리겠습니다. 애플 쇼크웨이브는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40회 이상 연재 후에는 책으로 출간합니다.

'A 워드를 피해라'

"애플이 WWDC 2023에서 예고한 새로운 AI관련 기능들은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맛보는 전채일 것이다."(댄 아이브스 웨드부시증권 애널리스트)

미국에서는 대화 중 'F***', 즉 'F워드'를 피하라는 암묵적 규율이 있다. 애플에서도 비슷한 원칙이 관측된다. AI를 언급하지 말라는 "A워드' 금지령이다. 실제로 애플(Apple)이 이런 지침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왜 애플이 이런 행동에 나서고 있는지를 살펴볼 이유가 충분하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는 금리 인상과 함께 식어가던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에게는 희망의 단어다. 구글에 밀려나던 마이크로소프트도 챗GPT를 만들어낸 '오픈AI'라는 특효약을 마시고 부활에 성공했다. 5만전자의 오명을 벗어낸 삼성전자도 AI테마에 동참했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부사장이 WWDC2023 행사에서 머신러닝을 활용해 새롭게 선보일 아이폰의 기능을 소개하고 있다.

AI 붐의 정점은 엔비디아(Nvidia)라는 평이 많다. 대량의 학습을 하기 위한 반도체 수요가 늘며 AI학습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엔비디아는 실적이 치솟아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은 기업이 있다. 애플이다. 애플은 AI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한다. 그럼에도 애플은 미국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대에 진입했다. 애플이 오는 2025년까지 시가총액 4조달러에 도달 할 것이라는 월가의 진단도 나왔다.


애플의 주가 상승은 AI의 힘을 빌지 않았다. 그런데도 애플 주가는 질주를 이어갔다.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의 등장이 주가 상승동력이 됐지만 엔비디아의 성과와 비교하기 어렵다.


연초만 해도 애플이 AI를 외면한다는 소문이 많았다. 애플의 AI 인력이 이탈하고 있다는 설도 이어졌다. 애플은 과연 AI를 하지 않고 있는 걸까. 과연 그럴까.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분석이라는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플은 여전히 AI를 연구하고 있지만 AI로 포장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 AI는 경쟁사에 비해 사용처도 다르다. 애플은 운영체제(OS), 기기, 반도체 등 토탈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해 클라우드 상에서 운영되는 생성형 AI보다는 소비자들이 자신이 소유한 애플 기기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생활 속의 AI를 만드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애플 A16 칩의 내부 구조도. 뉴럴엔진이 AI 지원 기능을 담당한다.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다. 아이폰에 쓰이는 A, 맥컴퓨터에 쓰이는 M칩은 AI 지원 기능을 가지고 있다. 뉴럴엔진(Neural Engine)이다. 애플은 시스템온칩(SoC)에 AI용 코어를 넣어 AI에 대응한다. 애플 아이폰14 프로에 들어가는 A16은 16개의 뉴럴 엔진 코어를 가지고 있다. M2 칩에도 16코어 뉴럴 엔진이 들어있다.


애플이 뉴럴엔진을 A칩에 넣은 후 SoC나 CPU에 AI엔진을 넣으려는 시도가 확산하고 있다. 애플 A칩과 경쟁하는 퀄컴(Qualcomm)의 스냅드래곤(Snapdragon) 칩에도 AI엔진이 탑재되고 있다. 최근에는 AMD, 인텔은 PC용 CPU에 AI엔진을 탑재하기로 했다.


뉴럴엔진은 챗GPT와 같은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 애플은 단순 연산과 병열 연산에 효과적인 뉴럴엔진을 통해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인공 지능 알고리즘을 구현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각종 사진 보정, 음성 인식시 잡음 제거, 필기 인식, 이미지속의 특정 영역 텍스트 추출, 단문메시지 작성시 오타 자동 수정 등이 애플의 AI가 반영되는 부분이다.


WWDC에서 사라진 AI

정보기술 매체 매셔블은 최근 실리콘 밸리에는 두가지 밸리가 있다고 진단한다. AI에 집중하는 구글이 속한 밸리(MS는 시애틀이 본사 소재지이며 실리콘 밸리 기업으로 분류되지 않는다)와 그렇지 않은 밸리다. 쿠퍼티노에 자리잡은 애플은 후자다.


애플과 구글의 행사도 확연히 차이난다. 지난 5월에 개최된 구글IO행사 기조연설에서는 AI가 99회나 거론됐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15분간 기조연설을 하며 AI를 27번이나 말했다.


얼마 후 비전 프로를 발표한 애플 개발자회의(WWDC) 2023에서는 AI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팀 쿡은 AI 단어를 쓰지 않았다.


쿡은 실적발표회에서 AI에 대한 질문이 나왔어도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쿡은 생성형 AI가 흥미롭지만 애플은 심사숙고해 접근할 것이라고만 했다. 이후 애플이 데이터 유출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근무하는 직원에 대해 챗GPT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심지어 애플은 비전프로가 AI에 의해 작동한다고 말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게 매셔블의 판단이다. 애플은 대신 개선된 인코딩 디코딩 뉴럴(Neural Network)에 의해 비전 프로가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이쯤되면 AI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고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 WWDC에서는 머신러닝이라는 말이 연이어 사용됐다. 애플은 AI를 머신러닝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애플 소프트웨어 책임자인 크레이그 페더리기는 다양한 기능에서 머신러닝이 활용된다고 강조했다. 무선 이어폰 '에어팟프로2'(airpod pro2)가 소음을 감지해 완화하는 것도 머신러닝의 결과라는게 애플의 입장이다. 애플의 문자보내기 기능인 아이메시지에서 사용되는 자동 교정 기능도 머신러닝이라고 페데리기는 설명했다.


페더리기는 "iOS 17의 자동 수정과 받아쓰기 기능이 온디바이스(On Device) 머신러닝으로 발전해왔으며 애플실리콘의 힘"이라고 표현했다.


페더리기의 발언을 통해 변화될 AI기능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에어팟이다. 애플은 에어팟 프로2의 작동모드가 현재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캔슬링’, ‘주변음 허용’외에 주변 환경에 가장 적합한 소음제어 상태로 조정한 ‘적응형 오디오’ 기능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직원과 대화하는 소리는 정확히 전달하고 그외의 소음은 제한하는 식이다.


이런 기능은 AI의 지원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애플은 AI라고 말하지 않고 머신러닝이라고 한다. 물론 애플도 생성형 AI 인력을 확보하고 자체 생성형 AI를 만들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애플의 구인공고에도 AI인력 충원이 확인된다.


AI를 머신러닝으로 부르는 이유는?

애플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챗GPT의 성능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AI에 대한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 문명 종말을 야기한 스카이넷, 아이언맨의 파트너 자비스가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오픈AI에 초기 투자를 했던 일론 머스크도 구글의 전 회장인 에릭 슈미트도 AI 개발을 잠시 중단해야 한다고 제한했을 정도다.


백악관은 지난 4월 AI의 위험을 논의하기 위한 과학기술 고문 위원회 회의를 조 바이든 대통령 참석하에 열었다. 이 위원회 멤버인 리자 수 AMD 최고경영자(사진 맨 오른쪽)도 회의에 참석했다.

미 정치권도 같은 생각이다. 규제 움직임은 이미 감지된다.


이런 상황을 페더리기는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패스트컴퍼니와의 인터뷰에서 AI에 의한 딥페이크를 경계하며 "우리는 멀지 않은 미래에 딥페이크에 대해 경고를 보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딥페이크를 감지해 경고할 수 있는 수준이 돼서야 애플이 머신러닝을 AI라고 부를 것이라는 점을 드러낸 셈이다.


이런 전략은 애플에게는 익숙하다. 수십억대의 기기를 통해 애플이 개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경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애플은 최근에도 아이폰의 보안을 강조하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철저한 보안과 AI의 융합은 필수다. 애플은 사용자 정보 유용 가능성이 큰 클라우드 기반 AI보다는 온디바이스 AI를 선호하는 셈이다.


애플 홈페이지에는 AI와 머신러닝 전문가 채용 관련 코너가 운영되고 있다.

결국 분위기가 무르익었을때 애플은 인공지능을 인공지능이라고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가 되면 애플 시리(Siri)는 챗GPT 이상의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애플은 그때까지 머신러닝과 뉴럴 네트워킹을 통해 차근차근 미래의 변화에 대비한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정체중인 뉴럴엔진의 성능도 A16, M3 칩을 계기로 강화될 수 있다. 애플도 자체 생성형 AI를 준비하고 있으며 관련인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정황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애플은 AI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MS가 챗 GPT 개발사 오픈AI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보다도 크다. 애플 분석 전문가인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지난 4~5년간 매년 80억~100억달러를 AI에 투자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MS가 얼마전 오픈AI에 투자하기로 한 100억달러와 같은 금액을 매년 쓰고 있다는 뜻이다. 애플이 AI로 제대로 된 '한 방'을 터뜨기 위한 장기간의 대비를 하고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이브스는 이렇게 말한다. "애플이 WWDC 2023에서 예고한 새로운 AI관련 기능들은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맛보는 전채일 것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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