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프라다를 입는다" 패션쇼에 등장한 노조 조끼?
[임병도 기자]
▲ 프라다 2024 맨즈웨어 컬렉션에 등장한 일부 작품. 흡사 한국에서 보는 노조 조끼와 비슷해 보인다. |
ⓒ 프라다홈페이지 갈무리 |
유명 브랜드 패션쇼에 등장한 남성 의류가 흡사 노조 조합원들이 입는 투쟁 조끼와 비슷해 화제이다.
2023년 6월 18일 프라다가 SS24 맨즈웨어 컬렉션을 공개했다. 다양한 작품이 선보인 가운데 두 명의 남성 모델이 빨간색과 하늘색 조끼를 입고 등장했다. 모델이 입은 조끼를 본 한국인들 대다수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바로 노조 조합원들이 주로 입고 다니는 투쟁 조끼였다.
실제로 한 노조원은 자신의 SNS에 빨간색 조끼를 입은 노조 간부의 사진과 함께 '노조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SNS에서는 '투쟁', '** 노조' 등의 문구를 합성한 이미지가 올라오기도 했다.
온라인커뮤니티에서도 화제였다. 사진과 함께 "어딘가 친숙한 2024 S/S 프라다 맨즈 웨어", "어디서 많이 본 패션이네요", "제가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패션만큼은 엄청나게 익숙하네요. 당장 어디 나가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패션", "파업 중인가 싶은 2024 프라다 SS 패션쇼" 등의 댓글이 달렸다.
페이스북 사용자 '희***'은 "프라다를 입은 한국의 노동자들, 이래서 우익놈들이 귀족노조, 귀족노조하는가 보다"라는 촌철살인의 글을 남겼다.
일각에서는 디자이너가 한국의 노조 투쟁 현장에서 영감을 얻고 디자인한 거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바는 없다.
이런 추측이 나온 이유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사례 때문이다. 2018년 한국을 방문한 그는 동묘의 거리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는 동묘에 등장한 아재들의 패션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고 그의 패션쇼에는 마치 동묘 아재들의 패션과 흡사한 작품들이 선보이기도 했다.
▲ 부산지하철노조가 부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 임병도 |
노동조합에 속한 조합원들은 자체 행사나 집회는 물론이고 시위 현장에서도 조끼를 입는다. 단체복의 특성을 살려 조합원에게는 소속감을, 외부에는 조직의 세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노조 조끼'를 '투쟁 조끼'라고 부르는 이유는 집회와 시위, 파업 현장 등에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노조가 모이는 대규모 집회에서는 조끼 색깔을 통해 어느 노조의 조합원이 가장 많이 참여했는지 추산하기도 한다.
과거 '투쟁 조끼'의 색상은 '빨간색'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너무 눈에 띄는 원색보다는 위화감이 없고 실생활에서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색상과 디자인을 선택하는 노조도 많다.
▲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이동희 버스노조 서울지부 수석부지부장이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운행을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
ⓒ YTN 유튜브 갈무리 |
'노조 조끼'는 '투쟁'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억압'을 받기도 한다. 특히 법원과 국회 등에서는 노조 조끼를 입을 경우 출입을 금지하기도 한다.
국회는 정치적인 문구가 새겨진 조끼를 입을 경우 정문조차 통과할 수 없다. 가장 정치적인 국회에서 정치적인 문구를 막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은 판결문을 받기 위해 남부지법 종합민원실을 찾았다. 그러나 청사출입문 검색대 앞에서 제지당했다. 차 지회장이 입은 조끼에 새겨진 '아사히 글라스 불법파견 엄중 처벌! 모든 해고 금지! 노조할 권리 쟁취! 비정규직 철폐!'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차 지회장은 30여 분간의 실랑이 끝에 가방으로 조끼 뒷면을 가리고서야 판결문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시는 최근 버스 회사가 지급하는 근무복 이외 다른 옷을 착용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정 단체, 특정 색깔 (붉은색) 조끼를 착용할 경우 적발 대상이자 친절도 평가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도이다.
차상우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기획국장은 YTN과 한 인터뷰에서 "붉은색과 특정 단체명이 표시돼 있는 조끼를 단속하겠다고 하는 것은 서울시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탄압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라며 서울시의 노조 옥죄기로 의심했다.
'노조 조끼'가 누군가에게는 패션쇼에 등장한 멋진 작품과 비슷할 수 있겠지만 땡볕에 목소리가 쉬도록 '단결'을 외쳤던 노조원들에게는 투쟁과 억압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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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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