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는 용산 대통령실 출장소 아냐, 김효재는 직권남용"
[신상호, 권우성 기자]
▲ 김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
ⓒ 권우성 |
"방송통신위원회가 용산 대통령실 출장소입니까?"
지난 29일 찾은 김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상임위원(차관급, 민주당 추천)의 과천청사 사무실. 책상에는 각종 서류와 법령 검토 자료들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방통위가 추진하는 TV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 관련 서류들이었다. 김 위원은 "아무도 정리를 하지 않으니, 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현 방통위는 여당 측 위원 2명(김효재, 이상인), 야당 측 위원 1명(김현)으로 구성돼있다.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에 민주당 추천 최민희 상임위원 내정자 임명이 미뤄진 여파다. 3인 체제 하에서 김 위원은 내부적으로는 시행령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언론에 수차례 입장문을 내면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여당 측 위원이 이번 주에 강행하려던 TV수신료 시행령 의결이 미뤄진 것도 김 위원 역할이 컸다.
김 위원은 "그동안 분리징수와 관련해 방통위에 민원 자체가 들어온 게 없고, 방통위 내부에서도 분리징수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시행령을 개정해서 분리징수를 하겠다면서 의견수렴과 법률검토 등의 절차를 사실상 건너뛰고 있다, 이건 직권남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천억에 달하는 공영방송 재원 문제를 그렇게 단기간에 처리하는 것이 맞나"라고 반문하면서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정치적 중립 입장에서 사안을 검토하고 처리해야 하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방통위가 '용산 출장소'와 다를 게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아래는 김현 위원과의 일문일답.
▲ 김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
ⓒ 권우성 |
- 지난 5월부터 아홉 차례나 김현 상임위원 명의로 방통위 관련 입장문을 냈다.
"방통위는 상임위원 5인 합의 기구다. 지난 2008년 설립된 이래 상임위원 4명 이상이 모여 협의를 하고,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에만 표결을 했다. 법이나 시행령을 개정, 제정하는 일은 상당 기간에 걸쳐 진행해왔다. 지금 방통위는 상임위원 3명만 남았다. 상임위원 3명 중에 연장자 1명을 권한대행으로 하고 TV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을 표결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그러니까 입장문을 내서 국민들에게 상황을 알릴 수밖에 없다."
- 입장문에서 합의제 기구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운영을 요구했다. 지금 방통위는 어떤가.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하는 자리이고 권한대행(김효재 상임위원)도 마찬가지다. 대표한다는 말은, 개인 의견을 밀어붙이기보다 합의 기구 성격에 맞춰 위원회를 운영하라는 거다. 상임위원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고, 지적되는 부분은 계속 보완해나가는 것이 방통위 설립 취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TV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추진 과정에서 제대로 된 법률 검토도 없었고, KBS와 EBS 등 이해당사자 의견 진술도 거치지 않았다. 여당 측 위원들은 그런 검토도 없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하고자 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상임위원들은 정치적 중립 입장에서 사안을 검토하고 처리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방통위가 '용산 출장소'와 다를 게 무엇인가."
- 분리징수 시행령이 급작스레 추진되면서, 절차적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현재 TV 수신료는 전기료와 합산해 의무적으로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통위의 분리징수 시행령은 전기료 합산고지를 못하게 강제하는 것이라, 한편으로는 규제 완화로도 볼 수 있다. 시행령을 고치면 수백만 국민들이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심도 있는 규제영향평가를 받아야 하고, 입법 예고 기간도 40일 이상은 돼야 한다. 그런데 방통위는 '긴급하다'는 요건을 달아서, 법제처 유권해석을 받아 입법 예고도 10일로 줄이고 단 하루 만에 규제개혁위원회 입장 받아서 진행하겠다는 거다. 수천억에 달하는 공영방송 재원 문제를 단기간에 처리하는 것이 맞나. 이건 직권 남용으로 문제가 된다."
- 김효재 권한대행이 입법예고 기간에 반대 의견이 높게 나오자 "일반 국민들은 바빠서 의견 낼 시간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 방통위 전체회의 참석하는 김효재 직무대행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지난 21일 오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다음주에도 시행령 방통위 의결 못한다"
- 여당 측 위원들이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을 이번주 전체회의에서 서둘러 의결하려 했지만 김 위원이 강력하게 문제제기해 미뤄졌다.
"사실 막은 거다.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이 26일까지였고, 당초 여당 측 위원들이 전체회의 의결을 28일에 하려고 했다. 그날 방통위 전체회의 의결하고 29일 차관회의, 7월 5일 국무회의, 7월 12일 대통령 재가를 받겠다는 계획이었던 것 같다. 이후에 이동관 대통령실 특보를 방통위원장으로 앉혀서 KBS를 옥죄고, MBC를 목표물로 하려던 것 아니겠나.
내가 지난 21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입법예고 때 제출된 의견(26일)을 종합하고 분석하는 것이 하루 만에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날짜를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법예고 기간에 수천 건의 의견이 접수됐는데 이를 하루 만에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회의를 하고 며칠 뒤 위원장 대행이 '그날(28일) 못한다'고 통보해왔다."
- 여당 측 위원들은 어떻게든 시행령 의결을 밀어붙이려는 것 같다.
"내가 볼 때는 다음주에도 의결 못할 거다. 대통령실이 방통위에 한 권고는 두 가지였다.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과 함께 공영방송이 공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거. 그런데 공적 책임을 위한 제도 장치는 적절히 마련하지 않고, 시행령 개정안만 처리하려는 것 아닌가. 권고안 두 가지 중 하나만 할 수는 없을 거다."
- 직무대행의 직권 남용 소지가 너무 많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맞다. TV수신료 징수제도는 지난 1994년부터 시작돼 30년 동안 유지돼온 제도다. 지난 3월 대통령실에서 국민 제안으로 분리징수 투표를 올리면서, '국민 불편 호소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방통위에도 분리징수 해야 한다는 민원 자체가 들어온 게 없고, 방통위 내부에서도 분리징수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시행령을 개정하려면 타당한 법률 검토,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위원장 권한대행 지시로 이런 절차를 사실상 건너뛰고 있다. 이건 직권남용이다."
- 분리징수되면 수신료 안 낸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TV 수신료는 법적으로 TV를 가진 사람이면 꼭 내야 하고, 안 내면 가산금도 붙는데 이런 사실이 잘 안 알려지고 있다.
"수신료를 안 내도 된다고 착각하게 하는 포퓰리즘, 총선에서 표 얻기 위한 표퓰리즘이다. TV 수신료는 (방송법상) 시청자라면 내야 하는 돈이다. 수신료를 내지 않을 경우, 차후 가산금 3%까지 붙어서 청구될 수 있다는 것도 (대통령실에선) 얘기 안했다."
▲ 김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
ⓒ 권우성 |
- 방통위원장으로 이동관 대통령실 특보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방통위법은 공공성 및 공익성,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해 상임위원 선임에 있어 정파성을 배제하는 조항들을 두고 있다. 가령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이었던 사람은 위원직 신분 상실 이후 3년까지는 상임위원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동관 특보는 지난 2022년 대통령 당선인 특별 고문을 했고 지금은 대통령 특보(특별보좌관)로 있다.
방통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해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특보를 하던 사람이 방통위원장으로 오면 위원회가 온전하게 유지 되겠나. 내년에는 채널A 재승인 심사가 있어 동아일보 출신인 이동관 특보와의 이해충돌 소지도 매우 높다."
- 최근 방통위에 감사원, 경찰, 검찰수사관 등 9명이 한꺼번에 파견나왔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감사를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외적으로 공포감을 주는 것 같다. 감사원, 국세청에서 오고 검찰 수사관이 오니까 방통위가 다른 기관들에게 엄청난 권력을 행사할 것처럼 보이지 않나. 하지만 (정권의 의도대로) 공무원들이 쉽게 움직이진 않을 거라고 본다. 공무원들이 일을 하더라도 위법한 행위를 할 수 없지 않나. 나중에 본인들이 법적 심판을 받게 되는데, 위법한 지시를 따를 이유는 없다. 방통위 내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
- 한상혁 위원장 면직도 대통령 직권으로 하고, 왜 이렇게 윤석열 정부는 방통위에 관심이 많은 걸까?
"대통령실은 여론이 악화된 배경에 언론의 지형, 방송 때문이라고 인식한다. 국민의힘 측에선 지상파 라디오 패널들도 편향적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나. (자신들 뜻대로 안 되니) 답답할 거라고는 보여진다. 방통위를 독임제 기구(장관이 결정권을 갖는 기구, 현재 방통위는 합의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국민의힘 대선 공약으로 검토됐었다. 그런데 현재 야당 우위인 국회 구성상 법 개정이 안 되는 거다. 그러니까 시행령 개정으로 해보려는 건데,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불도저식으로 진행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되돌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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