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땐 '과외 금지', 어기면 직장 해고...역대 사교육 전쟁史

김준영 2023. 7.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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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대입 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를 시작으로 사교육과의 전쟁에 나섰다. 사교육 위주의 기형적 형태로 발달해 공정성이 무너진 교육 분야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다.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사교육 감축과 공교육 정상화는 역대 정부의 공통 목표였다.

정부·여당이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을 제외하기로 한 가운데 지난달 20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에 킬러 문제 전문 학원 간판이 붙어 있다. 뉴스1


가장 강력하고 파격적인 정책은 1980년 전두환 정부 때 과외를 전면 금지한 ‘7·30 교육개혁 조치’였다. 과외 금지를 어기면 학생은 무기정학, 학부모는 직장 해고, 과외 교사는 형사 입건 등의 처벌을 받게 했다. 당시 관영 언론인 대한뉴스는 “초·중·고생 6%가 과외를 받고 있다. 교육이 학교 밖에서 주도된다면 큰일”이라고 배경 설명을 했다.

정책 시행 초반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차츰 단속을 피한 불법 과외가 기승을 부렸다. 결국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방학 중 학원 수강이 허용된 데 이어 1991년 학기 중 수강이 허용되면서 과외 금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0여년 만의 사교육 시장 활성화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전과를 갖게 돼 일반 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던 86 운동권 그룹에겐 블루오션과 같았다. 이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사교육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전두환 정부의 과외금지 조치가 곧바로 학원가에 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1980년 8월 6일 대한뉴스 장면. 사진 e영상역사관 캡처


김대중 정부도 과감한 교육 정책을 폈다.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1998년~1999년)인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이를 주도하며 ‘특기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구호와 함께 야간 자율학습과 모의고사를 폐지하고 수시 입시제를 도입했다. 정책이 실험적이었던 탓에 이 기간 수능을 치른 학생을 ‘이해찬 세대’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정부 말만 믿은 학생들의 학력 저하 현상이 발생했고 특히 2002년 수능이 난이도가 높은 ‘불수능’이 되면서 교육계엔 혼란이 벌어졌다. 수시가 도입됐지만 특기 하나만 잘해서 대학을 가는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이해찬 세대’라는 말은 정책 실패의 아이콘처럼 남게 됐다.

노무현 정부 땐 정책이 1회 시행 만에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해 수능 절대평가를 폐지하고 상대평가 9등급제를 도입했는데, 수능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내신 경쟁이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수능 등급제는 2008년도 수능에서 딱 한 번 시행 후 이듬해 이명박 정부에서 곧장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을 잡기 위해 심야 학원 교습 제한을 추진했지만 학원계 반발로 법제화는 무산됐다.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겠다는 취지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지만 대학별 입학사정관 선발 기준에 맞추기 위한 신종 사교육이 성행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엔 ‘선행학습 금지법’(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별도 처벌 조항이 없어 사실상 사문화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 정책을 설계한 이해찬 교육부 장관. 중앙포토


킬러 문항이 사교육 원흉으로 꼽힌 건 문재인 정부 때였다. 문재인 정부 말기인 지난해 2월 23일 수능을 출제하고 관리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수능 출제 개선안 시안’엔 ‘고난도 문항 검토단 구성 및 고난도 문항 검토 단계 신설’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됐다. 이를 통해 평가원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범위에서 출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지난해 3월 22일 평가원은 ‘2023학년도 수능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킬러 문항 축소를 다시 강조했다. “초고난도 문항의 출제를 지양하는 기존의 출제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출제·검토위원이 정답률이 낮다고 판단한 문항”을 대상으로 적정성을 따지겠다고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능 출제 기간도 기존 36일에서 38일로 확대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보기에 평가원의 계획은 올해 6월 모의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이규민 전 원장은 지난달 19일 이를 책임지고 사퇴했다. 정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달 22일 “그동안 수능 출제 당국은 손쉽게 변별력을 확보하고자 소위 킬러 문항을 만들어냈고 대형 입시학원들이 교묘히 이를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킬러 문항 근절이 되지 않은 탓을 “사교육 이권 카르텔”로 돌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해 3월 2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기본계획’ 중 킬러 문항 관련 정책. 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캡처


역대 정부의 교육 정책 실패가 반복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기본적으로 교육 열망이 높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도 뿌리 깊게 박힌 까닭이다. 근본적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였던 셈이다. 일각에선 평가원이 교육부가 아닌 국무조정실 산하에 있는 특이한 구조가 허술한 수능 관리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대학이 곧 미래를 결정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 원인임에도 역대 정부는 수능 비중을 바꾸는 등의 헛다리만 짚어 실패했다”며 “구조를 바꾸지 않은 한 어떤 정책이든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선회 중부대 교수(교육학)도 “그간 정책을 보면 사교육을 잡겠다는 억제책만 많았다”며 “공교육 교사의 연봉 인상이나 재량권 강화 등 공교육이 사교육을 이길만한 시스템을 보장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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