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버섯 성인게임]①한달 생활비 하루에 '몰빵'…기초수급자 돈 빨아들이는 종로 불법게임장
동시에 10대 돌리는 사람도…쉬질 않는 게임기
'딱지장사꾼' 통해 환금…방치하는 게임장
"사행성 게임 악영향…철저한 단속 필요"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 오전 9시가 되기 전부터 노인들이 어느 건물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서성이는 곳은 'J게임랜드' 앞. J게임랜드는 돈을 넣고 일정 확률로 게임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성인게임장이다. 오전 9시 조금 전 문이 열리자 노인들이 J게임랜드에 우루루 들어갔다. 기자도 노인들을 따라 업장에 들어섰다. 직원들이 업장 내부를 돌며 게임기 전원을 켜기 시작했다. 노인 약 30명이 돈을 넣지 않고 궁합을 따지듯 꼼꼼하게 게임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날은 유난히 사람들이 성인게임장에 몰리는 날이다. 매월 20일은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위해 이곳을 찾은 김영태씨(61·남)는 "20일만 되면 기초생활수급자들로 탑골공원 인근 성인게임장은 바글바글하다"며 "점수가 터지는 맛에 중독된 나머지 얼마 없는 돈이 사라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자! 9시입니다. 돌립시다." "따닥!"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직원의 호령에 맞춰서 게임기 앞에 앉은 노인 30여명이 동시에 버튼을 손으로 내려쳤다. 그날의 게임이 시작됐다. 게임에는 별다른 조작이 필요하지 않다. 버튼을 누르면 용 한 마리가 나와 알을 차례로 깬다. 알에서는 네잎클로버와 하트 등이 그려진 트럼프 카드가 나와서 5칸 중 4칸을 먼저 채운다. 4칸에 그려진 카드는 일치한다. 하지만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5칸의 카드가 일치하는, 일명 '잭팟'이 터지려면 나머지 4칸과 똑같은 카드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용이 아무리 알을 깨도 유독 그 카드만 나오질 않는다. 그렇게 화면만 쳐다보다가 1000원에 6분짜리 게임 한 판이 끝난다.
오전 9시34분이 되자 그날의 첫 잭팟이 터졌다. 잭팟이 터진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됐다!"고 소리치면서 만세를 부르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잭팟이 터진다고 점수가 고정적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다. 그때부터 점수가 연달아 터지면서 30만점이 될 수도 있고 70만점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곳을 출입하는 노인들은 나름대로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잭팟을 부럽게 쳐다보던 한 노인은 갑자기 "내 행운의 자리는 66번이다. 내가 하루에 여기서 74만점을 땄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몇몇 노인은 게임장에서 바쁘게 뛰어다녔다. 한 번에 10개가 넘는 게임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 끝에 있는 게임기의 게임이 끝나면 뛰어가서 버튼을 내려쳤다. 이들 덕분에 J게임랜드의 게임기 110대가 쉬질 않고 돌아간다고 이 업장 종업원은 전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 100만원 가까이 성인게임장에 쓰는 사람도 있다. 올해 기준 기초생활수급비는 95만원 정도 나오는데 20일 하루 동안 전액을 이 게임장 기계에 모두 집어넣는 셈이다. 심각하게 중독된 사람은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으로 나오는 쌀 10㎏도 1만원에 팔아 게임에 쓴다고 한다. 자신을 '캐나다 정'이라고 소개한 정모씨(73·남)는 "항상 20명은 성인게임장에 있다고 보면 된다. 많으면 한 사람이 10대 넘는 게임기를 돌리기도 한다"며 "노인들이 갈 데가 어디 있겠나.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잭팟을 기다리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수급비를 게임기에 다 쓰는 사람도…탑골공원에 군집한 성인게임장
탑골공원 인근에는 이 같은 성인게임장이 J게임랜드를 비롯해 N게임랜드, P게임랜드, G게임랜드 등 4곳이 붙어 있다. J게임랜드와 P게임랜드는 같은 건물 반지하에 있고 다른 성인게임장 역시 도보로 5분도 채 안 떨어져 있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J게임랜드와 N게임랜드는 한 인물이 운영하고 있다. P게임랜드와 G게임랜드는 각각 다른 사업자가 운영하고 있지만 J게임랜드와 P게임랜드의 사업자는 서로 동업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J게임랜드를 운영하는 1명이 4개 업체 중에서 3개 업체를 관리하는 셈이다.
같은 건물 반지하에 위치한 J게임랜드와 P게임랜드는 각각 매달 1000만원씩의 임대료를 건물주에게 지급한다고 알려졌다. 두 성인게임장은 탑골공원 인근에서 가장 큰 도로인 '송해길' 도로변에 있다. 아울러 종로3가역에서도 걸어서 3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송해길 초입에 성인게임장이 들어서 있다. N게임랜드와 G게임랜드 역시 송해길 도로변에서 영업하고 있어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탑골공원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정모씨(70·남)는 "이곳에서 송해길 도로변만큼 높게 가치를 쳐주는 데가 없다. 사람들 눈에 쉽게 띄고 장사가 잘되기 때문"이라며 "송해길을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게 성인게임장이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환금 안 된다"지만…회색 조끼 입고 점수 사고파는 '딱지장사꾼'
성인게임장 직원들은 낯선 인물인 기자를 상당히 경계했다. 기자가 J게임랜드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다가와 아래위를 훑으며 "처음 온 것 같은데, 게임 어떻게 하는지 아시나요?"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여기는 환금이 안 되는 게임장입니다. 참고하세요"라고 설명했다. N게임랜드는 업주와 안면을 터야만 들어갈 수 있다. 기자가 들어가서 게임기 앞에 앉자 직원이 옆에 붙어서서 "처음 온 사람은 게임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직원 설명대로 환금이 안 될까? 업장마다 '회원간 점수를 사고파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현수막을 걸어놨지만, 실질적으로는 게임 점수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성인게임장마다 '딱지장사꾼'이 있기 때문이다. 딱지란 점수 1만점을 의미하는데 딱지장사꾼한테 가서 7000원에 팔 수 있다. 딱지장사꾼들은 이 딱지를 게임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7500원에 팔아서 500원을 남긴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날 잭팟이 터져 50만점을 얻으면 30~40만원 정도는 순식간에 벌 수 있다.
여기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직접 돈을 게임기에 넣기보다는 딱지를 찾는다. 현금 대신에 모아둔 점수로 게임을 할 수 있는데 현금으로 한 시간 게임을 하려면 1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똑같이 한 시간 게임을 할 수 있는 1만점을 딱지로 사면 7500원으로 2500원 더 싸다. 현금을 게임기에 넣는 사람은 '하수'로 분류된다. 정씨는 "딱지장사꾼들 하루에 10만원은 우습게 번다"며 "사람들이 한 번 딱지를 살 때 20~30장씩 쟁여놓는다"고 말했다.
딱지장사는 사실상 공공연히 이뤄진다. 회색 조끼를 입은 남성이 매일 성인게임장을 다니며 딱지를 판다. 점수를 팔거나 사고 싶으면 회색 조끼를 입은 남성에게 가면 된다. 해당 사업장과 직접적인 고용 관계는 아니지만, 회색 유니폼을 입고 사실상 직원처럼 행세하며 딱지 장사를 하고 있다. 딱지장사꾼에게 딱지를 산 후, 게임장 직원에게 가서 "점수가 생겼다"고 하면 게임기에 점수를 입력해 준다. 김씨는 "환금성이 없다는 것을 누가 믿겠나"며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나름 한 방을 노리기 위해 오는 곳이 탑골공원의 성인게임장이다"고 말했다.
환금성이 있다면 해당 게임은 사행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 가능하다.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에 따르면 사행성은 우연한 방법으로 득실을 결정해 재산상 이익 또는 손실을 보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 조작하지 않고 운으로 점수를 따면서 그 점수를 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도박이라는 의미다. 도박 관련 사업은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지자체는 불법도박 게임장 방치…"딱지 사고팔면 환금성 지녀"
관리 책임 있는 종로구청 등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게임장들을 방치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게임물 사업자는 영업장 안에서 1명이 동시에 2대 이상 게임물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딱지장사 등으로 환금성이 발생해 사실상 도박으로 판단된다면 이를 내버려 둬서는 안 되지만 이 모든 게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지자체는 이를 적발해 영업정지, 허가취소 등 행정조치할 수 있다. 이외 투명한 유리창을 설치해 외부에서 실내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성인게임장 4곳 가운데 3곳은 지하에 위치했고 J게임랜드는 유리창 대부분을 코팅해놓아 밖에서 안을 보기 어려워 이러한 규제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사행성 게임 관련 정기 단속 및 계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철우 게임 전문 변호사는 "과거 사행성 게임으로 홍역을 치렀던 '바다이야기'처럼 게임기에서 직접 현찰이나 상품권이 나오지 않더라도 점수를 딱지로 사고팔 경우 환금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며 "사행성 게임은 게임계를 넘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기에 철저한 단속을 통해 불법행위를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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