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범죄 몰리는 남부지검, 소소한 '족구대회' 연 까닭
최근 서울남부지검(지검장 양석조)에선 본관 옥상 체육시설 단장 기념으로 열린 검사장배 족구대회가 소소한 화제였다. 각 부·과에서 5명씩 팀을 이뤄 점심시간을 이용해 토너먼트 경기를 펼쳤는데, 지난달 27일 열린 결승전에서 집행과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를 2대 0으로 꺾고 최종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전날 열린 3, 4위전에선 형사 2, 3부 연합팀이 총무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사무국·2차장·1차장 산하 부서가 1·2·3위를 골고루 차지하는 해피엔딩이었다고 한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 정권교체 이후 숱한 현안 사건으로 격무에 시달린 소속 직원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추진됐다고 한다. 실제 남부지검은 지난해 5월 양 검사장 부임과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 단성한) 부활 이후 여의도 저승사자를 넘어 서울중앙지검 못지않은 사법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통한 주가조작부터 암호화폐(이하 코인)를 미끼로 한 금융사기 사건까지 모든 경제범죄의 집산지인 데다, 신종 병역비리나 정치권 로비 사건으로도 꾸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금융·증권범죄합수부는 테라·루나 폭락 사건 수사에 착수, 한국에선 최초로 코인을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해 관련 범죄에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입법 미비 상태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합수부는 이 밖에도 에디슨모터스·PHC 주가조작 사건,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의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사건,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조작 사건 등 굵직한 경제범죄를 수사해 관련자를 모두 구속기소했다. 최근엔 지난 1월부터 착수한 옵티머스·라임·디스커버리 펀드사기 관련 잔여 범죄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초 원주·홍성지청에서 파견 온 검사 2명도 모두 이 수사팀에 배치됐다고 한다.
금융조사1부는 가상자산 비리 수사팀을 꾸린 뒤 암호화폐거래소 코인원 상장 비리를 파헤쳐 베일에 가려져 있던 코인 상장 브로커를 법정에 세웠다. 이후에도 코인 발행사와 시세조종(MM·Market Making) 업자가 결탁한 일반 투자자 대상 사기 의혹, 위믹스 발행사 위메이드의 허위 유통량 공시 의혹 등 코인 관련 신종 경제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금융조사2부(부장 채희만)는 빗썸 관계사 주가조작·횡령·배임 사건 수사를 일단락 지은 뒤 그 배후로 지목된 원영식 초록뱀미디어 회장을 지난달 29일 441억원대 배임 등 혐의로 구속했다. 가상자산운용사 델리오와 하루인베스트의 출금 중단 사태와 관련해 경영진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합수부와 금조1, 2부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불공정거래 행위를 적발해 패스트트랙으로 검찰에 통보하는 사건도 수사를 지휘하거나 직접 수사하고 있다. 최근 기소된 불법 리딩방 운영자와 주식 유튜버의 종목 추천 사기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에코프로 임직원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의혹,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의혹 사건도 남부지검의 지휘로 금융위·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형사6부(부장 이준동)도 일복이 터진 부서다. 부장검사를 제외한 7명의 검사가 반부패·공공수사·마약 관련 영장·송치사건은 물론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수십억원대 코인 보유, 대우조선해양건설 임금체불,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사기·유사수신 및 변호인 위증교사, 항공업계 브로커의 취업 청탁 의혹 수사까지 산적한 현안 사건을 함께 또는 나눠서 맡고 있다. 여론의 관심이 높은 김봉현 전 회장의 정치인 로비 사건이나 KBS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명예훼손 사건의 공소유지에 참여하는 것도 형사6부의 몫이다. 극한 인력난에 형사6부도 지난달 초 강릉지청으로부터 검사 1명을 파견받았다. 1차장 산하의 형사5부(부장 박은혜)도 올 초 병무청과 합동수사팀을 꾸려 뇌전증 병역면탈 사건을 수사한 탓에 날마다 드나드는 사건 관계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남부지검에 사건이 넘쳐나면서 부동산 자산운용사 관련 비리 등 일부 금융범죄들은 서울동부지검 등에 분산 할당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남부지검에 걸린 사건 수도 많지만 각 사건의 난이도도 높은 게 사실”이라며 “지난 정부의 합수단 폐지 조치 등으로 손대지 못한 코인·증권 관련 범죄들이 쏟아진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가상자산범죄합수단 등 직제가 신설돼 인원이 확충된다면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바퀴벌레 수천 마리와 산다, 멀쩡한 대기업 청년의 비극 | 중앙일보
- '춘천 실종 초등생' 데려간 50대…알고보니 범행 4번 더 있었다 | 중앙일보
- 기상캐스터 노출 있는 옷차림, 날씨 놓친다?…놀라운 실험 결과 | 중앙일보
- 배 나온 적 없는데…53세 톱모델 "아들 태어났다" 깜짝 발표 | 중앙일보
- [단독] '황제도피' 배상윤 숨통 조인다…가수 출신 아내 출국금지 | 중앙일보
- "한우 좋아해요"…강남 고깃집 간 톰 크루즈, 500만원 긁었다 | 중앙일보
- 100년 '국민 초콜릿'까지 버렸다…'400년 원수'에 분노한 나라 [지도를 보자] | 중앙일보
- 플라스틱 용기에 물 넣어, 전자레인지 돌리니…폭탄처럼 나온 물질 | 중앙일보
- 100만 무슬림 관광객도 홀린다…리무진 뒷편 '별 커튼'의 비밀 | 중앙일보
- "방음했는데" 항의 받은 BTS 정국…소음 못 듣는 방법 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