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조 관련 논란이 드러낸 것 [하재근의 이슈분석]
최근 황의조 선수의 사생활 영상을 폭로하겠다는 게시물이 등장해 큰 논란으로 비화했는데, 이 사건으로 우리사회의 고질병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6월 25일 오후 인스타그램 계정에 '국가대표 축구선수 황의조의 사생활'이란 글과 함께 어떤 영상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 글 작성자는 “저는 황의조와 만났던 여자입니다”라며 황의조의 사생활 내용이라고 하는 몇 가지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이건 그 작성자의 주장일 뿐이다. 이 게시글만 보고는 작성자가 누구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도 매우 많은 이들이 그 게시글 내용을 덮어놓고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 작성자가 폭로하는 내용이 리벤지 포르노라고 규정하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리벤지 포르노는 교제했던 이가 헤어진 후 사적인 내용을 폭로하며 보복하는 걸 말한다. 게시글 작성자가 정말 황의조와 교제했던 사람인지, 심지어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알 수 없고, 또 설사 황의조와 교제했던 사람이 맞다 해도 그 사람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덮어놓고 리벤지 포르노라고 규정한 것이다.
리벤지 포르노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작성자가 황의조의 전 여자친구이고 이별에 앙심을 품고 보복했다는 걸 믿는 게 된다. 아무런 사실관계 확인 없이 말이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선 게시글 작성자가 황의조 전 여자친구라고 전제하고 그 작성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황의조와 관계 정립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 의지로 성관계를 해놓고 이제 와서 왜 황의조를 탓하느냐며 비난한 것이다. 이 모든 게 확인되지 않은 주장인데도 불구하고 그 게시글의 내용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런 게 한국사회 고질병이다. 누군가가 충격적인 주장을 하면 일단 믿고 시작한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서 신중하게 결론을 내야 하는데 결론부터 내고 시작하는 것이다. 과거 티아라 멤버들이 한 명을 왕따시켰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많은 이들이 덮어놓고 그 주장을 믿으면서 티아라 멤버들을 마녀사냥했다. 그 바람에 당시 한국에서 잘 나갔던 티아라는 국내 기반을 완전히 잃고 중국으로 떠나야 했다. 나중에 왕따 주장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반성이 나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김보름 선수가 다른 선수를 왕따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돼 김보름 선수에게 공분을 들끓었었다. 당시 김보름 선수는 집단공격을 당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 됐고 평생 준비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만약 그런 공격을 받지 않았다면 금메달이 매우 유력했다. 나중에 왕따 주장이 지나쳤었다는 반성이 나왔지만 때는 늦었다.
티아라 논란 때도, 김보름 논란 때도 모두 사실관계가 분명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덮어놓고 왕따 소문을 믿었다. 이렇게 성급한 단정의 문제가 반복되는데 이번엔 황의조 관련 정체불명의 게시물에 대한 믿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황의조 측에선 누군지 모를 사람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으며, 게시물 내용은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정확히 어디서 어디까지 허위라는 건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여튼 전 여자친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작성자가 본인 이름이라고 주장하면서 한 이름을 댔는데 황의조는 그 이름도 처음 듣는다고 했다고 한다.
보통 이런 식으로 쓰면 ‘황의조 말은 어떻게 믿느냐?’, ‘그럼 진실이 뭐란 말이냐?’ 이런 항의가 제기된다.
최초 의혹의 반론을 소개한다고 해서 꼭 반론을 믿는 게 아니다. 두 가지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나중에 황의조 주장이 거짓이고 게시물이 진실이라고 드러날 수도 있는데 그건 그때 가서의 문제다.
진실이 뭐냐고 답답해하는데 이 세상일은 원래 확실하지 않을 때가 많다. 모호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확신의 근거를 찾아나가는 게 성숙한 태도다. 그런데 우리 인터넷 공론장에선 논란이 터진 후 곧바로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여기면서, 덮어놓고 한 쪽을 믿고 단죄부터 하려고 한다. 아직 속단해선 안 된다고 하면 화를 낸다. 이런 고질병이 있는 한 앞으로 피해자가 계속 나올 것이다.
이번 일도 아직 진실을 모르는 사안이다. 게시물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황의조 측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두 모른다. 이럴 땐 단정부터 하지 말고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매번 후련하게 속시원한 결론이 주어지지 않는다. 답답한 상태를 참을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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