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국민 초콜릿'까지 버렸다…'400년 원수'에 분노한 나라 [지도를 보자]

박소영 2023. 7.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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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 모양의 이곳은 어디일까요?"

김경진 기자

추가 정보를 드리자면,

■ 힌트

「 ① 영화 '가스등' '카사블랑카' 등에 나온 잉그리드 버그먼(1915~82년) 출생지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② 저렴하고 실용적인 세계적인 가구 업체 이케아(IKEA)의 나라
③ '우승 청부사' 축구스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내가 곧 OOO 축구"

주변 지도를 살펴볼까요.

김경진 기자

정답은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쪽에 있는 스웨덴입니다. 한반도 면적보다 2배나 크지만, 인구는 한국(5200만명)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죠. 그만큼 내수시장이 크지 않아 수출주도형 국가로 성장했고, 볼보(자동차)·일렉트로룩스(가전제품)·이케아(가구)·H&M(의류)·에릭슨(통신장비)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나왔습니다.

김경진 기자

이런 기업들이 고용과 복지비용을 부담하면서, 스웨덴은 요람보다 한 단계 전인 엄마 뱃속(자궁)부터 무덤까지 복지를 누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여느 유럽 국가에 비해 반(反)기업 정서가 덜하다고 하네요.


"러시아 지원 초콜릿? 불매하자"

스웨덴에서 국민 초콜릿으로 불리는 마라보우 불매운동이 지난 6월 초부터 거세게 일고 있다. 마라보우는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하지 않은 미국 제과기업 몬델레즈가 소유한 브랜드다. 사진 트위터 캡처

그런데 지난달 초 스웨덴에선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대형 제과회사 몬델레즈(Mondelez)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스웨덴에선 오레오·리츠·호올스 등 몬델레즈 제품이 많이 팔리고 있었는데, 모두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죠.

몬델레즈의 인기상품 중엔 마라보우(Marabou)라는 초콜릿이 있습니다. 마라보우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스웨덴의 ‘국민 초콜릿’인데, 인수·합병을 거쳐 몬델레즈에 넘어왔죠. 그런데 마라보우마저 몬델레즈에 속한 브랜드라는 이유로 스웨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작은 수퍼마켓이 나서서 진열대에서 몬델레즈 제품을 치우기 시작하면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불매운동이 확산됐습니다. 급기야 이케아 내 식료품 코너와 대형마트에서 몬델레즈 과자가 사라졌습니다. 이어 페리를 운영하는 스테나 라인과 스칸디나비아 항공(SAS), 그리고 스웨덴의 주요 놀이공원까지 몬델레즈 제품을 매대에서 치웠습니다.

한때 몬델레즈 제품이 있던 빈 매대 옆에는 이런 문구가 담긴 안내문이 게시됩니다. "몬델레즈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기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지합니다"라고 적혀있죠. 스웨덴 군, 스웨덴 축구협회, 스웨덴 제2의 도시인 예테보리시(市) 등도 몬델레즈 구매와 협력을 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스웨덴의 한 마트 진열대에서 몬델레즈 상품이 전부 빠져 있다. 그 앞에는 몬델레즈가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하지 않았고, 마트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공지가 있다. 사진 트위터 캡처


스웨덴 국민이 문제삼는 건 몬델레즈의 러시아 사업입니다. 몬델레즈는 지난 5월 말 우크라이나 부패방지기구(NAPC)가 발표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여러 서방 기업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죠. 하지만 몬델레즈는 여전히 현지 사업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몬델레즈가 지난해 러시아에서 올린 매출은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수익은 3억3900만 달러(약 4400억원)에 이릅니다. 러시아에 납부한 세금은 약 6100만 달러(약 800억원)로 추정됩니다. 몬델레즈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 회사가 러시아 정부에 낸 수백억원이 '우크라이나 영토와 국민을 짓밟는 전쟁자금'으로 쓰였다며 분노합니다.

미국 제과회사 몬델레즈가 소유한 브랜드 모음. 사진 트위터 캡처
김경진 기자

예테보리대의 에바 오시안손 경영학 교수는 “많은 기업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슈가 사라졌다고 여겼지만, 사람들은 아직 잊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스웨덴 정부도 우크라이나에 꾸준히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답니다. 지난 5월까지 169억 스웨덴 크로나(약 2조60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스웨덴의 뿌리깊은 '루소포비아'

스웨덴 국민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스웨덴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중세부터 스웨덴은 동쪽으로, 러시아는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자주 충돌했습니다.

17세기~18세기 초 스웨덴은 현재의 핀란드,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을 지배하면서 발트해의 맹주이자 북유럽의 패권 국가로 성장했는데요.

김경진 기자

그러나 대북방 전쟁(1700~1721년)에서 러시아에 패배하면서 세력이 약화됩니다. 이후 스웨덴은 위상을 되찾기 위해 러시아와 전쟁을 수차례 벌였지만, 결국 1809년 핀란드 일대를 러시아에 넘겨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 지역에 거주하던 수천명이 러시아에 강제 이주되는 고통을 겪기도 하고요. 이 때부터 스웨덴 사람들은 러시아군을 '피에 굶주린 야만인'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러시아가 한층 힘을 키워 확장하면서 스웨덴의 분노는 공포로 변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당시엔 구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해 핀란드 영토의 11%를 가져갔고요.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앞바다에 소련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수 차례 목격되는 사건도 있었죠. 당시 스웨덴 아이들은 발트해를 바라보며 소련 잠수함 찾는 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전쟁에 대비해 가장 가까운 방공호 위치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고 해요.

스웨덴 징집병들이 미군, 영국군, 프랑스군, 독일군 등과 함께 지난 5월 6일 스웨덴 남부 크리스티안스타드 외곽에서 오로라 23 방어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991년 구소련 붕괴로 한동안 잠잠했던 스웨덴의 경계심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등장으로 다시 커졌습니다. 옛 소련 시절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푸틴 대통령은 2008년 조지아(2008년), 2014년 크림반도(2014년)를 각각 침공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2월 말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스웨덴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지난해 스웨덴 공영방송 SVT의 설문조사 결과 스웨덴인 59%가 '러시아가 두렵다'고 답했다고 해요.

스웨덴 정치평론가 매트 크누슨은 SVT에 "'루소포비아(Rysskräck)'는 스웨덴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스웨덴인들은 러시아에 대해 느끼는 우려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러시아가 점점 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설명이죠.

'러시아 공포증', '러시아 혐오' 등으로 번역되는 루소포비아(Russophobia, Russia+phobia)는 18~19세기 러시아 제국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돼 20세기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서방 각국의 러시아, 러시아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물론 스웨덴이 그저 떨고 있는 건 아닙니다. 스웨덴은 지난 2017년 징병제를 재개하고, 이듬해엔 여성도 징집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앞서 2010년 중도우파 정부에 의해 모병제로 전환했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계기로 국방력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징병제를 재도입한거죠.

신재민 기자

또 발트해 한가운데 위치한 고틀란드 섬에 병력을 재배치했습니다. 고틀란드는 러시아의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의 발트함대 사령부에서 북쪽으로 불과 330㎞ 떨어져 있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최근엔 군사적 긴장이 한층 심화되고 있습니다 . 지난해 3월 러시아 전투기가 고틀란드 동쪽까지 비행해 스웨덴 영공을 침범했습니다. 당시 스웨덴 언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침범한 러시아 전투기에 핵무기가 장착돼 있었다고 보도했죠.

지난달 18일 스웨덴 의회 국방위원회가 낸 보고서는 "러시아 지상군이 우크라이나에 묶여 있지만, 스웨덴에 대한 다른 유형의 군사 공격을 배제할 수 없다"며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나토 가입이 살길"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왼쪽)까 지난 3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만나 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웨덴은 300년 넘게 계속된 러시아 공포증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택했습니다. 200년 이상 유지해온 중립국 지위, '군사 비동맹주의'를 버리는 대신 미국 주도의 나토에 가입하려는 거죠.

나토는 '집단방위체제'를 운용합니다. 회원국 중 한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동맹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무력을 포함한 원조를 제공합니다. 스웨덴 입장에선 회원국이 되면, 혹 러시아의 침공을 받을 때 미국 등의 지원을 받게 되는 거죠.

스웨덴은 지난해 5월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 신청서를 냈습니다. 핀란드는 세 달 전 30개 회원국 모두부터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고 나토에 가입했습니다.

김영옥 기자

그런데 스웨덴은 핀란드와 달리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원국 중 튀르키예와 헝가리가 아직 최종 동의를 하지 않았거든요. 튀르키예는 스웨덴이 자국이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 등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헝가리는 스웨덴 정치인들이 헝가리의 국내 정치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는 이유로 유보하고 있어요.

스웨덴은 나토 정상회의(11~12일) 전까지 무조건 가입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지난달 28일 스톡홀름 이슬람 사원 앞에서 또 이슬람교 경전 코란을 소각하는 시위가 벌어져 튀르키예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데요. 100년 넘은 '국민 초콜릿'까지 버린 스웨덴의 애타는 마음을 튀르키예와 헝가리가 언제쯤 받아들일까요.

「 용어사전 > 지도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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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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