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희생양 싫다"…인스타 없앤 '인싸 브랜드' 러쉬의 전략 [트랜D]
길거리나 쇼핑몰을 걷다 보면 갑자기 코를 찌르는 좋은 향기를 맡게 됩니다. 둘러보면 글로벌 코스메틱 브랜드인 러쉬(LUSH) 매장이 보입니다. 러쉬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전부 극히 강한 외향적 성향을 지닌 이른바 '인싸'들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직접 손님의 머리도 감겨주고 두피 마사지도 해주죠. 흥미로운 사실은 러쉬의 이러한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향을 회사의 디지털 혁신 전략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스메틱 브랜드가 디지털 리포트를?
러쉬는 천연 화장품과 입욕제 등을 판매하는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입니다. 러쉬는 최근 '디지털 참여: 사회적 미래(Digital Engagement: A Social future)'란 제목의 리포트를 발간했습니다. 리포트엔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러쉬의 방향과 윤리적 선언 등이 담겨 있습니다.
리포트는 향후 예측, 디지털로 가기 위한 원동력, 소셜 프레임워크, 디지털 인게이지먼트의 미래 등 5개 파트로 구성돼 있습니다. 리포트에 따르면 러쉬는 디지털 권리가 곧 인권이며, 의식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이러한 권리가 훼손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16년엔 자체적인 디지털 윤리 정책을 수립, 디지털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구축 또는 출시할 때마다 이러한 정책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러쉬가 바라보는 미래의 디지털 세상은 웹 2의 선구자이자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의 의도와 유사한 탈중앙화된 개방형 웹입니다. 개방형 웹은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세계의 결합을 통해 즐거움과 독특함이 포함된 더 풍부한 경험을 창출합니다. 러쉬는 앞으로는 큰돈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금전적 가치가 중요한 세상에서 벗어나 탈중앙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선한 가치가 금전적 가치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러쉬는 웹 3를 언급하면서 '웹 3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거버넌스, 가치 창출, 이해관계자 참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된 웹 3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돼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디지털 공간·데이터의 소유자이자 커뮤니티의 참여자가 되는 디지털 미래를 만들 기회가 생깁니다. 마크 콘스탄틴 러쉬 최고경영자(CEO)는 "거대 기술 기업의 힘에 맞서려면 때때로 장난을 쳐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러쉬는 웹 3 기반의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급진적인 업무수행 방식이 이러한 장난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음을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러쉬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이러한 관점에서 러쉬는 뜻밖의 선택을 합니다. 바로 빅 테크 플랫폼에 돈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배경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더는 플랫폼 알고리즘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용자들의 피드에 노출되기 위해 광고비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겁니다. 또 소셜미디어가 사용자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고려했습니다.
2021년 11월, 러쉬는 자사가 진출한 모든 국가에서 SNS를 운영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틱톡·스냅챗 등의 소셜미디어 계정도 폐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체 커뮤니티 운영과 확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웹 3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전용 디스코드(Discord) 채널을 개설했고,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에서 8만2000명이 가입한 상위 5%에 속하는 자체 게시판과 커뮤니티를 지속해서 육성합니다.
웹 3와 새로운 디지털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인 러쉬는 메타버스·디지털 트윈·로봇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문화·미디어·테크 행사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서 러쉬는 디센트럴랜드라는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에 다양한 요소를 담은 게임화된 디지털 트윈을 공개했습니다.
러쉬는 행사에서 목욕을 도와주는 작은 로봇, '배스봇(Bath Bot)'도 선보였습니다. 러쉬의 상징적인 배스 밤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독특한 돔형 볼록 스피커를 통해 180도 사운드를 재생합니다. 다양한 색상의 조명을 통해 사용자의 목욕 경험을 맞춤화할 수 있는 콘텐트를 제공합니다. 모바일 앱과 연결하면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데, 새로운 목욕 경험을 위해 디지털과 연결한 시도가 눈에 띕니다.
세계적인 콘텐트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는 협업을 통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슈퍼마리오의 대표적인 블록인 '물음표(?)' 블록 모양의 목욕 배스 밤을 깨뜨리거나 욕조에서 사용하면 슈퍼마리오의 아이템 형상의 비누가 나타납니다. 이를 러쉬 모바일 앱에서 스캔하여 디지털 지갑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여섯 개를 모두 모으면 여섯 개를 모두 모은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한정 제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러쉬는 디지털 영역에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러쉬 렌즈는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기반 디지털 패키징 앱입니다. 카메라로 제품을 비추면 제품 설명, 성분, 가격, 사용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러쉬의 디지털 혁신은 계속된다
러쉬는 소셜미디어와 빅 테크 플랫폼에 종속되기보다는 사람들이 직접 소유할 수 있는 데이터와 함께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만들 기회가 열려 있다고 여깁니다. 러쉬가 발간한 디지털 리포트와 CEO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미 러쉬는 웹 3 시대를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기술을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러쉬는 코스메틱 브랜드임에도 마치 정보기술(IT) 기업처럼 오픈소스 정책을 장려하는 것도 독특합니다. 이미 러쉬는 디자인, 개발, 제품 출시 등에 오픈소스를 장려합니다. 애나벨 베이커 러쉬 디렉터는 "오픈소스는 항상 우리 비즈니스의 일부였다.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나아갈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웹 2에서 웹 3로 전환하는 데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러쉬의 디지털 혁신이 웹 3를 향하면서 AI, 블록체인, 메타버스, 로봇 등 얼마나 더 다양한 IT 기술을 활용할지 궁금합니다. 러쉬의 시도가 어떠한 새로운 고객 경험을 만들어 낼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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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탁 비트블루 CSO는 웹3 전문 기업인 비트블루를 공동창업했다. SK플래닛, 한국IBM 등에서 근무했으며 뉴욕대학교에서 기술경영 석사를 취득했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에 관심이 많고 웹3.0과 디지털 경제 등 IT 분야에 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
윤준탁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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