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하버드 쉽게 갈까…하버드 출신 美대법원장이 외친 말

전수진 2023. 7.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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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버츠 대법원장.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모습니다. AP=연합뉴스


"삼가 '어퍼머티브 액션'의 명복을 빕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가 29일 게재한 기사 제목이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대학입시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이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제동을 건 것을 두고 붙인 제목이다.

'어퍼머티브 액션'이라는 말 자체는 인종뿐 아니라 성별ㆍ출신 등, 사람이 노력 아닌 태생으로 갖게 된 특질로 받는 차별을 철폐하자는 의미로 통용돼왔다. 미국에선 존 F 케네디(1961~1963 재임) 대통령 시절 행정명령으로 발의되어 이후 리처드 닉슨(1969~1974 재임) 대통령 시절 당시 법제화되면서 대학에서 소수 인종에 입학 혜택을 주는 근거가 마련됐다. 60년대 미국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민권 운동의 대표적 과실로 꼽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같은 이들이 이번 대법원의 위헌 결정에 반발하면서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이 없었다면 나는 하버드에 입학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반발한 배경이다.

하버드대 캠퍼스 전경. 구글 이미지.


이 이슈는 지난 몇 년 간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논쟁이었다.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 골자로 정리된다. 첫째, 이 정책으로 백인이 오히려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둘째, 소수 인종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흑인과 히스패닉과 같은 특정 인종만 특혜를 받으며, 아시아계엔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하버드 등 명문대에 적극 지원하는 아시아계의 숫자 및 성적이 다른 소수 인종을 압도한다는 건 통계로 확인된다. 성적 상위 10%에 속하는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보다 하위 40%에 속하는 아프리카계 학생들 중 하버드대 입학 확률이 더 높다는 통계가 대표적이다. 이번 위헌 결정은 '공정한 입학 학생 연대(Students for Fair AdmissionsㆍSFA)'가 제기한 헌법소원의 결과다. SFA는 이 소수인종 우대입학 제도가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하버드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왼쪽은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찬성, 오른쪽은 반대하는 시위대.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에선 "그래도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정책의 기조는 반대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낙태 vs 임신 중단의 논쟁처럼 미국을 첨예하게 갈라놓는 이슈인 셈. 이번 위헌 결정은 미국뿐 아니라 하버드대 등 미국 유수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는 한국인 학생 및 부모들에게도 민감하다.

이번 대법원의 위헌 결정문을 요약하자면 "대학들이 입학 기준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학습능력 등이 아닌 피부색을 삼아온 것은 잘못됐다"는 것. 위헌 결정 취지를 설명한 다수 의견서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학생들은 인종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썼다.

이번 위헌 결정의 캐스팅 보트는 로버츠 대법원장이 던졌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임명된 인물이다. 본인은 뚜렷한 보수 성향이지만 진보와도 척을 지지 않는 온건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도널드 트럼프(2017~2021년 재임) 대통령 당시엔 불법 이민자 보호나 임신 중절의 문제 이슈에서 백악관의 뜻을 거슬러 진보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도 다수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대법원을 향해 "'오바마 판사'들"이라며 비난하자 로버츠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대법원엔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부시 판사도 없다"고 직접 응수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보수의 편에 선 것.

미국 대법원의 9인. 미국 사회처럼 이념적으로 양극화해있다. 앞줄 가운데가 존 로버츠 대법원장. AP=연합뉴스


미국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가 팽팽히 대결하고 있다. 2020년 진보의 대모 격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하면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에이미 배럿 대법관을 임명했고, 보수 6인 vs 진보 3인으로 균형추가 기울었다.

백인인 로버츠 본인도 하버드대 출신이다. 제철소 기술자에서 경영자로 자수성가한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했고,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서 두각을 드러내 하버드대 역사학 전공으로 들어갔으나 미국 매체들에 보도된 동기생들의 언급을 종합하면 "여름 방학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 학비를 벌었다"고 한다. 1955년생인 그가 대학에 입학한 시기가 바로 각 대학이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적극 펼치기 시작했던 때다. 그는 한때 역사학도를 꿈꿨으나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고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로스쿨은 차석으로 졸업했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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