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보이지 않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평생 투명인간처럼 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다. 우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남루하고 왜소하다. 도시 빌딩들 사잇길이나 지하도를 배회하며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이나 길바닥에 몸을 눕힌다. 씻지도 못하고 한 번 입은 옷은 몇 개월간 벗지도 않는다.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자전적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서 가난을 이렇게 표현했다. “독특한 비천함, 어쩔 수 없이 겪는 변화, 복잡스러운 쩨쩨함, 떨어진 빵을 털어서 먹는 일 따위이다.… 가난은 장래를 전멸시킨다.”
최근 우리 사회 문제로 부각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태어났으나 사라진 2000여명의 아기들이다. 미등록 영아들은 사망, 유기되기 일쑤였고 더딘 발달에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미등록 아기들의 장래는 이렇게 꺼져가는 불빛이었다. 언론은 아기들을 ‘유령’으로 묘사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 엘리베이터, 지하철 역사, 때때로 거리의 수많은 콘크리트 전봇대 위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종종 안전하지 못한 노동 환경 때문에 위험에 처하거나 고귀한 생명을 잃기도 한다. 근래 서울과 경기도 오산에서 승강기를 수리하다 추락해 숨진 사고가 있었다. 모두 홀로 작업을 하다 변을 당한 MZ세대 청년이었다. 2022년 11월엔 여주에서 하청 노동자가 전봇대에서 올라가 작업을 하다가 고압 전류에 감전돼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지난 5년간 최소 17명의 노동자가 전봇대에서 목숨을 빼앗겼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출근길에도 존재한다. 집을 나서 거리를 거닐 때 깨끗해진 골목과 인도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손길 덕분이다. 밤사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페트병, 지저분한 과자봉지와 포장지 등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청결함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면 출입문은 열려 있다. 누군가 빌딩 셔터를 올리고 청소를 하고 직원들을 맞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점심시간 사무실 인근 식당에서도 주방 요리사를 본 적은 없다. 간혹 주방이 개방된 식당의 경우는 그들의 손놀림이나 표정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제대로 만난 적은 없는 것 같다.
선행하는 이들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최근 고려대에 한 기부자가 630억원을 쾌척했다고 한다. 1905년 이 학교 개교 이래 최대 규모 기부액이라 한다. 그런데 기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대학 측은 “이번 기부는 익명을 전제로 이뤄졌다. 기부자의 신원에 대한 어떠한 질문에도 답변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엔 ‘얼굴 없는 천사’가 산다. 그는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주민센터에 총 8억원이 넘는 성금을 기부했다. 알려진 것이라곤 중년의 남성이라는 추정뿐. 그는 항상 돈다발과 편지를 놓고 사라진다. 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짐수레를 끄는 노인을 돕는 젊은 여성을 목격했다. 여성은 그 어떤 미스 유니버스나 미스 코리아, 슈퍼모델보다 아름다웠고 형언할 수 없는 고결함이 느껴졌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도 당시 유대인들에겐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외면한 강도 만난 사람을 구했다. 성경은 그의 행위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유대인은 ‘피하여 지나간’ 반면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데리고 가서 돌봤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이 그 전형을 보여주듯 나를 잘 보이려고 혈안이 된 시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돌보는 게 아닐까.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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