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배우 손석구, 연극에선 어떨까… ‘나무 위의 군대’ 도전장
실제 대학로 연극 통해 데뷔
출연 소식에 개막 전부터 매진
지난해부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영화 ‘범죄도시2’ 그리고 웹드라마 ‘카지노’ 시리즈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대세 배우가 된 손석구가 연극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 20일 LG아트센터 서울의 U+스테이지에서 개막한 연극 ‘나무 위의 군대’를 통해서다. 당초 8월 5일까지 상연이 예정됐지만, 손석구의 출연으로 개막 전부터 매진 행렬을 이어가자 최근 8월 12일까지로 기간이 연장됐다.
‘나무 위의 군대’는 1945년 4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오키나와에서 미군의 공격을 피해 올라간 나무 위에서 종전을 모른 채 2년을 숨어 지낸 두 일본 군인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전쟁에 질 것을 알고 있었던 본토 출신 상관과 자신의 고향인 섬을 지키기 위해 입대한 신병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 인간의 존엄성,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 등을 담았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종종 웃음이 나오는 등 어둡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나무 위의 군대’는 반전주의자였던 일본의 국민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1934∼2010)가 말년에 준비했던 작품이다. 이노우에는 1985년 신문에서 두 군인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뒤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1장짜리 스케치만 남긴 채 폐암으로 타계했다. 이후 이노우에가 이끌던 극단 고마쓰좌가 젊은 작가 호라이 류타에게 희곡을 의뢰한 것이다. 이노우에는 두 군인과 함께 오키나와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3인극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호라이는 조선인 노동자 대신 나무의 정령이자 극중 해설자인 여인을 추가한 3인극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2016년 ‘연극열전’의 하나로 처음 소개된 바 있다. 창작진과 출연진 모두 바뀐 올해 공연은 민새롬이 연출을 맡고 신병 역에 손석구, 여인 역에 최희서가 나오며 상관 역으로 이도엽과 김용준이 더블 캐스팅됐다. 일본 원작은 오키나와 민요가 나오거나 여인이 유카타를 입는 등 토속적 느낌이 강하지만, 이번 한국 공연에선 서양식 드레스를 입은 여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무대 뒤 합판 등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요소가 더해졌다. 작품이 내포한 역사적 상흔을 모르더라도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손석구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예전에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함께 연기했던 이도엽 형이 출연한 연극을 보러 다니면서 나도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면서 “그 후 연극 대본을 많이 읽었는데, ‘나무 위의 군대’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며 출연 배경을 밝혔다.
사실 손석구는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캐나다 유학 시절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에서도 2011년 대학로 연극 ‘오이디푸스’로 데뷔했다. 이후 단편영화 ‘난자완스’ ‘접점’ 등에 출연한 그는 2014년 배우 최희서와 함께 연극 ‘사랑이 불탄다’를 출연했다. 당시 무명배우였던 두 사람은 출연은 물론 스태프를 겸하면서 제작비도 각각 100만원씩 냈다. 그런데, 5일이라는 짧은 공연 기간이었지만 우연히 연극을 본 미드 ‘센스 8’ 캐스팅 담당자가 손석구에게 오디션을 권했다. ‘센스 8’은 대중의 눈도장을 받은 손석구가 배우로 도약하는 토대가 됐다. 최희서도 이후 영화 ‘박열’의 여주인공 후미코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손석구가 9년 만에 출연하는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에 최희서가 출연한 것도 이런 오랜 친분 때문이다. 최희서는 “예전에 연극을 정말 재밌게 했다. 이후 서로 바빠졌지만 ‘언젠가 연극을 함께하자’고 말하곤 했는데, 이번에 연락을 받고 출연하게 됐다”는 캐스팅 비화를 전했다.
손석구가 연기하는 신병은 대의명분이 중요한 상관과 달리 그저 소중한 삶의 터전인 섬을 지키고 싶은 인물이다.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진 상관과 대척점에 있다. 손석구는 “신병 캐릭터가 너무 맑고 순수해서 연습 초반엔 나처럼 때 묻은 사람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면서 “이 작품에서 전쟁이나 군대 같은 부분을 빼고 신병과 상관의 관계를 보면 가족과 직장, 학교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신병은 상관이 옳다고 믿지만,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 내 경우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나무 위의 군대’는 LG아트센터 서울이 블랙박스 씨어터인 U+스테이지를 액자형 무대로 활용하는 첫 번째 공연이다. 객석 320석의 소극장이지만 배우들은 마이크를 착용하고 연기한다. 그래서 낮게 웅얼거리듯 말하는 손석구의 딕션이 드라마처럼 섬세하게 전달된다. 손석구는 드라마나 영화 등 매체 연기와 무대 연기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차이가 없다. 내가 예전에 연극을 그만둔 이유가 바로 무대에서 사랑을 속삭여야 하는데 속삭이면 안 되는 가짜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무대에서 내 연기 스타일이 연극에서 가능한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연기 방식을 바꿔야 한다면 내가 연극을 하는 목적 중 하나를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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