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색’ 달라질까

이동환 2023. 7. 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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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제3세력 연대 ‘혁신 재창당’ 실험
게티이미지


정의당이 노동·녹색 등 제3의 정치세력과 통합·연대해 ‘혁신 재창당’을 하겠다고 밝혔다. 재창당 실험이 내년 총선에서 정의당의 ‘돌풍’으로 이어질지, 단지 ‘미풍’에 그칠지 주목된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25일 “노동과 녹색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민사회, 제3정치세력과 통합과 연대를 모색할 것”이라며 당 전국위원회에서 의결한 재창당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정의당은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당대회를 열어 재창당 방안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외부의 제3세력과 통합해 당을 새로 만들자는 ‘신당론’은 장혜영·류호정 의원 등이 주도하는 정치그룹 ‘세 번째 권력’을 비롯한 당내 일부 세력이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도부는 노동·녹색 등 그동안 당이 선도해온 영역을 정치세력화하고 통합해 지지 기반을 다지자는 ‘자강론’을 고수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 25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혁신 재창당’ 추진 방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재창당 추진 방향은 제3세력을 통합 대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정의당이 ‘제3지대론’의 불을 지피는 금태섭 전 의원의 신당,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신당과의 통합까지도 고려하는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정의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살아온 궤적과 정당을 선택해온 과정을 보면 그분들(금태섭·양향자)과 함께하는 것은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당내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도부가 전국위에서는 신당론 주장 세력의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 재창당 방안에 제3세력을 명시해 안건을 가결한 뒤, 제3세력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를 해석할 때는 범위를 좁혀 결국 자강론을 관철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신당론을 주장하는 당 관계자는 “정의당의 가치에 동의하는 제3세력과는 함께 갈 수 있다는 게 전국위 채택안이었는데, 지도부가 벌써부터 범위를 좁히는 발언을 하고 있다”며 “이번 혁신도 지난 20년의 되풀이로 끝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 정의당 전국위원은 “전국위에서도 많은 위원이 제3세력이라는 용어 자체를 빼자고 주장했다. 진보를 포기할 것이냐는 항의였다”면서 “금 전 의원과 양 의원이 노동의 가치를 우리와 동일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은데 그들과 통합하자는 주장은 해당 행위”라고 비판했다.

“문호 넓히자” vs “중도는 허상”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당이 처한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신당론을 펴는 쪽은 정의당이 대변해온 전통적인 진보의 범위를 넓히지 않으면 당의 생존이 어렵다고 진단한다. 30% 정도로 추산되는 중도 무당층에까지 문호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권력’을 이끄는 장혜영 의원은 지난달 16일 YTN라디오에서 “정의당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안타깝게도 끝났다”며 “움직이지 않는 지지율이 그런 평가를 보여주는 뼈아픈 기준”이라고 말했다. 이 그룹의 다른 관계자도 “교섭단체가 되지 못해 중요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되고, 10석도 못 얻어 법안 발의조차 못하는 게 정의당의 현실”이라며 “총선만 바라본 기획정당을 만들자는 건 아니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에 동의하는 세력을 모아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양당제를 타파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지도부는 ‘집토끼’인 전통적 진보세력을 잡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김종필 전 총리나 안철수 의원의 (제3지대) 시도도 실패했다. 중도라는 것은 허상”이라며 “오랜 시간 지지받을 수 있었던 ‘정의당만의 가치’를 저버리면 당장 몇 석을 더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4년 후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 전 의원은 “정의당 내부에서 신당 방향성을 고민하는 분들의 결단을 존중한다”며 통합 가능성을 열어뒀다. 양 의원도 “어떤 가능성도 지금부터 끊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신당·자강, 어느 쪽이든 쉽지 않다”

신당론과 자강론 중 어느 쪽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재창당 방향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진단이 엇갈린다. 다만 정의당이 처한 현실을 고려할 때 어느 쪽으로 가든 내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탈산업사회에선 진보적 가치가 노동·환경·젠더 등으로 세분돼 과거처럼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주장만으로 뭉칠 수는 없다”며 “정의당이 지금처럼 이념만 강조하는 폐쇄적인 노동자 중심 정당으로 남아 권력구조·선거제도 개편만 기다린다면 ‘민주당 2중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가치를 통합적으로 추구하는 정책정당으로서 지지 기반을 넓혀야 앞으로 승산이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채 교수는 “노동·젠더·녹색 등이 모두 굉장히 이념적이라 재창당 이후 정의당의 틀 안에서 계파 간 공존이 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국 사태 이후 의석을 많이 잃은 데다 내년 총선에서 선거제도가 바뀔 기미도 없자, 정의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당내에 많은 것 같다. 정의당이 제3세력까지 찾고 있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금 전 의원, 양 의원이나 정의당이 무당층 30%를 블루오션으로 보고 잡으려는 것 같은데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쉽지 않다”며 “내년 총선에서 진보 진영은 ‘윤석열정부 심판’으로 규합될 텐데, 정의당이 다른 곳을 기웃대다가 전통적 지지층인 ‘의미 있는 10%’마저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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