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지만 한 뿌리… 구한말 정치를 떠올리다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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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두 그루인데 가까이 가보면 뿌리가 붙어 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나와 헌법재판소 정문에 연락처를 남기고 출입증을 받으면 눈앞에서 백송의 고고한 자태를 만난다.
백송 언덕 일대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자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한 박규수(1807~1877)의 집터다.
두 갈래이지만 한 뿌리인 백송을 바라보며 서로를 향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현실에 맞는 정치를 펼쳤더라면 조선은 망국의 운명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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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두 그루인데 가까이 가보면 뿌리가 붙어 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경내의 ‘V’자 백송(白松)의 모습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나와 헌법재판소 정문에 연락처를 남기고 출입증을 받으면 눈앞에서 백송의 고고한 자태를 만난다. 백송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충남 예산 추사 김정희 고택 등 국내에 몇 그루 없다.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에 의해 북학파 등 소수에게만 묘목 형태의 선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백송 언덕 일대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자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한 박규수(1807~1877)의 집터다. 박규수는 관찰사 재직 시절 평양 주민들을 향해 대포를 발사하던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 스타일의 연환계를 써 척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사실 박규수는 서구 열강 특히 미국과 교류를 주장했던 개화파였다. 그의 서울 종로구 재동 백송집은 북촌 일대 개화를 주장한 선비들의 사랑방이었다.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척살 당한 홍영식의 집터가 바로 옆이고 혈흔이 낭자하던 그곳에서 선교사 알렌은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제중원 개명)의 문을 연다. 기독교 민족지도자 월남 이상재 선생의 집터도 이곳이다.
구한말 개화파와 척화파의 두 갈래로 나뉘어 멸문지화의 피를 뿌렸지만, 사실 한 뿌리다. 두 갈래이지만 한 뿌리인 백송을 바라보며 서로를 향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현실에 맞는 정치를 펼쳤더라면 조선은 망국의 운명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이어진 식민 지배와 6·25 같은 내전은 모두 우리가 한 뿌리라는 점을 망각한 결과다. 오늘날 숱한 갈등을 다루고 있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백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헌법재판소를 나와 백인제가옥 계동감리교회 중앙고등학교를 돌아본다. 기독교를 통해 근대의 문을 활짝 열었던 곳들이다. 특히 중앙고 옛 숙직실인 삼일당은 3·1 독립만세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발화점이다. 당시 일본 도쿄 유학생이던 송계백이 삼일당에서 현상윤 교사와 송진우 교장을 만나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하면서부터 육당 최남선, 남강 이승훈 등이 합류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를 모으기 시작했다.
북촌 한옥마을 전체를 조망하려면 ‘가회 2층 전망대’를 찾아간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3000원 입장료를 내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커피 유자차 에이드 등을 맛보게 된다. 고향집 할머니댁 사랑방의 그 느낌 그대로 잠시 다리 쉼을 하는 곳이다. ‘골목길 역사산책: 서울편’을 저술한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은 이곳에서 가회동 한옥마을을 내려다보며 이를 만든 건축왕 정세권을 이야기했다.
“일제 강점기 경성 사람들이 왕이라고 부른 세 사람이 있습니다. 광산왕 최창학, 유통왕 박흥식, 건축왕 정세권. 경성에서 제일 부자였던 사람들입니다. 광산왕은 일제에 비행기와 무기를 바친 사람이고 유통왕은 반민특위에 1호로 잡힌 사람인데, 정세권은 독립운동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부동산개발회사인 건양사를 설립해 일본인 건설업자들을 물리치고 북촌 일대에 조선집을 짓습니다. 정세권이 지은 113동 조선집 가운데 90동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북촌 화동에 조선어학회 회관을 짓고 ‘우리말 큰 사전’을 출간한 이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뚝섬 일대 땅을 강탈당한 이도 바로 그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역사 교회인 안동교회(황영태 목사)와 윤보선 가옥 바로 위쪽에 조선어학회 터가 남아있다. 광복 후 한글학회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안동교회 예배당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올려다보며 한 뿌리임을 기억하는 기도로 오늘의 걷기를 마무리한다.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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