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섬김으로 작고 낮은 곳 찾아 부흥·자립에 힘을 더하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이치와 비슷하달까. 물줄기가 아래로 흘러가며 도랑을 이루고 강물이 되는 것처럼 섬김의 문법도 이와 유사하다.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이를 돕고, 돈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전형을 깨고 사랑을 나누는 ‘작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이들은 가진 게 충분하진 않고 힘은 없지만, 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준다. 국민일보가 만난 ‘작은 사람들’은 남을 돕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과 동역한다고 했다.
주일인 지난 11일 오전 11시 30분. 경기도 남양주의 한 빌딩. 상가 2층 당구장 앞 식당 옆에 30평 규모의 공간을 사용하는 참목자교회가 평소 주일과 달리 북적였다. 4명의 찬양 인도자와 피아노 기타 드럼 퍼커션 연주자까지. 방송 촬영을 방불케 하는 카메라와 조명 장비도 여러 대 설치됐다.
이날 참목자교회를 찾은 이들은 ‘딜리버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개그맨 이정규씨가 자신이 속한 밴드 딜리버에 먼저 제안했고 이후 음향감독, 가수 범키, PD 등이 합류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할 이들이지만, 전문 사역단체 소속은 아니다. 작은 교회에 찬양 집회를 선물한다는 같은 뜻을 품었을 뿐이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주일, 시간을 쪼개 작은 교회에서 찬양 예배를 이끌며 영상을 담는다.
이날은 참목자교회 이전 기념이자 후원자 감사 예배였다. 참목자교회는 최근까지 한 어학원에서 예배를 드렸다. 목사 가족 6명이 전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작은 교회다. 청년 1명, 장년 2명이 재적 성도로 있지만 출석은 들쑥날쑥하다고 한다.
이날 예배에는 70여명이 참석해 함께 찬양했다. 담임 곽기욱 목사는 “작은 교회라 음향 설비가 하나도 없는데 교회에 사전 방문한 ‘딜리버리 프로젝트’팀이 ‘우리가 장비까지 다 들고 올 테니 전기만 빌려달라’고 말하더라”고 웃었다. 곽 목사 가족은 컵밥에 과일, 커피를 손수 준비하며 감사를 표했다.
촬영·편집을 담당하는 서재원 PD는 “개척교회는 기업으로 치면 스타트업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우리 주변의 많은 교회가 주일에 뜨겁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딜리버리 프로젝트’는 지난 5개월 동안 이렇게 다섯 군데 교회를 인스타를 통해 대중에게 알렸다.
쌍둥이 자매 전도사 정화영, 주영씨도 개척교회에서 찬양 봉사를 하고 있다. 자매는 지난해 5월부터 여성 듀엣 ‘클레시스’로 활동하면서 사례비 부담으로 찬양사역자를 부르지 못하는 작은 교회를 찾아가고 있다. 클레시스는 고대 그리스어(헬라어)로 ‘소명’을 뜻한다.
교회에서 따로 사역하던 자매는 동생 주영씨의 급성 심부전증 투병 후 동역하게 됐다.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주영씨는 몸이 좋아지면 찬양 사역이 필요한 곳을 섬기겠다고 서원했고, 의료진의 예상을 깨고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자매는 이후 알음알음 들어오는 찬양 봉사 요청을 받아 가정집에서 예배하는 교회를, 성도 한 명 없던 목회자 등을 위로하고 있다. 화영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작은 교회가 정말 힘들지 않았냐”며 “집회 후 ‘찬양 듣고 힘이 났다’는 반응을 들을 때 우리도 덩달아 힘이 났다”고 했다.
이들이 한 번 찬양 인도를 했다고 교회에 큰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위로하는 것, 나아가 이름도 빛도 없이 사역하는 작은 교회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 귀하다.
경기도 시흥 은계나눔교회는 2017년 3월 설립돼 현재 90여명이 출석한다. 이 교회는 올 초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의 작은 교회 양육 프로젝트에 선정돼 재정과 목회 멘토링 등 다양한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지원을 받는 이 교회는 적지 않은 후원금을 다시 또 다른 사역지로 흘려보내고 있다. 담임 이용호 목사는 “(후원 규모가) 크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교회 설립부터 실천하는 선교와 구제 나눔은 주변의 귀감을 살 만했다.
교회는 현재 미얀마와 러시아에서 활동 중인 선교사, 일본을 비롯한 충주와 강릉의 교회, 캠퍼스 사역단체인 솔라캠미션 등 6곳에 매달 일정 금액을 후원한다. 성도 10~15명 내외의 사역지 교회에 직접 가서 식사를 나누기도 한다.
절기에 모인 100여만원의 헌금은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과 미혼모 시설에 최근 전달했다. 주민센터를 통해 독거노인이나 한부모 가정에 100만~150만원을 주기적으로 후원도 하고 있다.
이 목사는 “우리 재정도 풍성하지 않고 심지어 교회 설립으로 생긴 빚도 있지만, 더 많은 곳에 좀 더 후원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라며 “재정이 많아지면 그때 돕지 하는 마음을 버리고, 조금이라도 있을 때 나눠야 한다는 의견에 많은 성도가 동의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 목사의 설명처럼 ‘작은 사람들’은 가진 게 넘쳐 주변에 흘려보내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평소 많은 수고와 헌신이 필요하다. ‘딜리버리 프로젝트’ 촬영팀의 대학생 전은서씨는 매번 광주광역시에서 서울이나 경기도에 오기 위해 KTX를 탄다. 딜리버리 프로젝트에서 드럼을 치는 최진우씨는 딜리버리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500만원짜리 드럼 세트를 샀다.
그는 “차에 짐을 챙기는 순간부터 내가 쓰임을 받는다는 생각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같은 활동을 하는 가수 범키는 “찬양팀으로 회중을 인도하는 것은 처음이라 생각보다 연습할 부분이 많더라”면서도 “내가 하는 것이 봉사가 아니라 은혜가 되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작은 사람들’은 자신을 작은 교회를 위한 사역자가 아닌 동역자라고 입을 모았다. 이 목사는 “우리가 그들보다 크면 얼마나 크겠냐”며 “우리가 돕는 것 같지만 정작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딜리버리 프로젝트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개그맨 이정규씨는 “작은 교회를 섬긴다는 표현 자체가 머쓱하다”며 “늘 함께 예배드리러 가자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성경에는 약자를 돌보라는 말씀이 많이 등장한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라는 야고보서 1장 27절이 대표적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적은 헌금을 칭찬했다.(막 12:41~44) “약한 사람들을 돕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와 같은 말씀도 있다.
작은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진다. 참목자교회는 지난 감사예배에 모인 헌금을 기반으로 사정이 어려운 학생을 돕기 위해 지역의 기독 교사 모임과 한국설리번센터에 일정 금액을 1년 동안 후원하기로 작정했다.
김회권 숭실대(기독교학과) 교수는 “예수님이 헌금에 의존해 살면서도 가난한 사람을 끊임없이 도왔듯 풍족지 않은 사람이 더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은 본받아야 할 성경적 정신”이라며 “작은 교회가 더 작은 교회를 돕는 등 섬김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은 환영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신은정 양민경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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