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이 정쟁법안? 유가족들이 누구와 정쟁하나"
[박현광, 이경태, 유성호 기자]
▲ 이태원 참사 특별법 신속처리 안건 통과에 눈물 터뜨린 유가족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동의의 건이 통과되자 기뻐하고 있다.ⓒ 유성호
▲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1일째 단식 농성 중인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씨와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동의의 건이 통과되자 기뻐하고 있다.ⓒ 유성호
'재적 185명, 가 184명, 부 1명'
김진표 국회의장이 표결 결과를 발표했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아래 이태원 특별법)' 신속처리안건 지정 동의 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이를 국회 본회의 참관석에서 듣고 있던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유가족들은 서로의 등을 토닥였고, 손을 맞잡고 울었다. 누군가는 기도하며 모았던 두 손을 활짝 들어 만세를 했고, 누군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양 볼로 눈물 줄기를 흘려보냈다.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참관석에서 금지된 박수를 쳤다. 마음 졸이며 표결 결과를 기다리던 유가족들을 지켜본 탓인지 국회 방호과 직원들조차 이를 적극 제지하지 못했다.
국회는 30일 본회의를 열고 이태원 특별법을 신속 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했다. 이날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특별법의 골자는 독립된 조사기구를 설치해 참사 희생자의 죽음 원인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만큼 특별법은 숙의를 거쳐 최장 330일 안에 처리돼야 한다.
야4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주도로 '이태원 특별법 신속 처리 안건 지정 동의 건'이 본회의에 상정됐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단체로 퇴장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날 단식 11일째를 맞은 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과 최선미 운영위원을 포함 이태원 참가 유가족 37명은 보라색 머플러와 티셔츠를 입고 참관석에서 방청했다.
여당 "참사의 정쟁화" vs 야당 "윤석열, 단 한 번 사과 안 해"
▲ 이태원 참사 특별법 신속처리 안건 통과에 눈물 터뜨린 유가족 ⓒ 유성호
▲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동의의 건이 통과를 되기를 기도하며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유성호
표결 전, 국회는 여야로 갈라져 '이태원 특별법 신속처리안건 지정 동의 건' 찬반 토론을 진행했다. 여당(이만희·조은희·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은 반대 의견을 냈고, 야당(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장혜영 정의당 의원·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찬성 의견을 냈다.
3번의 찬성 토론과 3번의 반대 토론은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진행됐다. 야당 의원들은 정부 책임론을 꺼내 들어 희생자 죽음의 경위를 밝혀내 또 다른 참사에 대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했고, 여당 의원들은 "참사의 정쟁화" "숨겨진 정치적 의도" 등의 언행으로 찬성 의견을 비난했다.
유가족에게 찬반 토론은 찬성과 반대 의견의 간극만큼 큰 감정의 파도에 올라탄 시간이었다.
첫 주자였던 이만희 의원이 "민주당의 위기 수습이란 정치적 의도가 있는 이 법에 분명히 동의할 수 없다"고 반대 토론을 시작하자, 누군가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자리에 일어서서 울분을 삼켰다.
이 의원은 "당시 희생자, 그분들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3촌 이내 혈족은 물론, 구조 활동 참여자, 단순히 체류했던 사람까지도 피해자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며 "다른 참사와 형평성 맞지 않다"고 했다.
조은희 의원이 "이 법안이 일방적으로 추진된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이자 참사의 정쟁화라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하자, 누군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또 누군가는 두 손에 고개를 파묻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이태원 참사 유족들을 찾아 진심 어린 사과나 위로를 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장혜영 의원의 찬성 토론이 끝났을 땐, 누군가는 박수 소리 없는 '헛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오히려 오열했다.
용혜인 의원은 "참사 당시 희생자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구조되고 이송되었으며, 어떤 조치를 받았는지, 그 과정은 적절했는지 알고 계시느냐"며 "유가족과 소통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영정 없는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피해자들의 명단조차 없다고 거짓말했던 대한민국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정에 대해 유가족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실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그러자 누군가는 앞서 반대 토론 때와는 다른 종류의 한숨을 내쉬었다.
찬반 토론이 끝나고 표결이 시작되자, 유가족들은 두 눈 질끈 감고 두 손 모아 어디론가 기도했다. 롤러코스터 끝에 소강상태에 이르자, 갑자기 오열을 시작하는 이도 있었다. 검표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20여 분 동안, 유가족들은 자리를 지켰다.
특별법이 정쟁? 유가족 "내 새끼 죽음, 알아 봐주는 사람에 말하는 게 당연"
▲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1일째 단식 농성 중인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씨와 유가족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동의의 건이 통과에 기뻐하며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유성호
▲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1일째 단식 농성 중인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동의의 건이 통과에 기뻐하며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유성호
결과 발표 후, 유가족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참관석을 나와 취재진과 만났다. 이날로 11일째 단식을 맞은 '가영이 엄마' 최선미 유가협 운영위원은 소회를 밝히는 과정에서 여당의 '야당의 숨겨진 정치적 의도' 주장을 반박했다.
최 운영위원은 "정부와 국민의힘은 '10.29 이태원 특별법'이 정쟁법안이라고 하는데, 유가족이 누구랑 정쟁을 하겠느냐"며 "내 새끼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 주려고 하는 사람한테 가서 얘기하는 것이 부모로서 인지상정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정부와 국민의힘은 유가족과 의견을 나눠봐야 정쟁인지 뭔지 알 거 아니냐"며 "유가족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정쟁이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내 새끼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봐달라는 게 특별법"이라며 "무엇을 은폐해야 하는지 우리 가영이 마지막 얼굴도 5분도 안 되는 동안 보라고 하고,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한 번도 안아보지도 못하게 해서 한을 남긴 것 아니냐"고 따졌다.
마찬가지로 이날로 11일째 단식한 '주영이 아빠' 이정민 유가협 대표직무대행은 "내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단지 곡기를 끊는 것밖에 없다니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며 울었다.
이어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며 "이 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 하고,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 저희는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 여러분, 자식 잃은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살펴주시고, 저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며 "이 법안이 통과돼 우리 아이들을 방치해서 죽인 그 책임있는 모든 자들이 죄의 대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회초리 들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태원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단식했던 두 분은 오늘 단식을 풀어주시고 병원 입원해달라는 원내대표의 당부가 있었다"며 "여러분이 건강해야 사랑하는 가족들의 한을 풀 수 있다. 저희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6월 8일부터 진행한 이태원 특별법 제정 촉구 159km 릴레이 시민행진과, 6월 12일부터 이어온 단식 농성을 중단하고, 이태원 특별법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통과를 목표로 싸우겠다고 밝혔다.
▲ 10.26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 통과를 환영하며 특별법 제정에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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