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년차 축구인, 낯선 여성이 말을 겁니다 [언젠가 축구왕]
살면서 단 한 번도 공을 만져본 일 없던 여성이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축구하면서 접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함께하면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다고, 당신도 같이 하자고요. <기자말>
[이지은 기자]
지금의 축구팀과 코치님은 내게 충분히 완벽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공을 차는 것으로는 실력을 쌓기에 한없이 부족하다.
"아, 성장하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조기축구 아저씨들도 일주일에 한 번 하던데?"라고 묻는데, 그건 중학생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줄곧 축구를 놓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제 1년 6개월 된 나로서는 사정이 다르다.
축구교실에 가봤지만
'축구에 진심이라면서 어떻게 일주일에 한 번만 차요? 축구하지 않는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아까워!' 심정인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빨리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큰 친구 연지와 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가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우리 축구교실이라도 알아볼까?"
그렇게 축구교실을 전전하기 시작한 지 한 달째. 아직도 우리에게 적당한 곳을 만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 친구들의 풋살화 |
ⓒ 오정훈 |
한 달간의 축구교실 투어 끝에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어떻게 차야 공이 앞으로 뻗어 나가는지조차 모르던 내가 이제는 어느덧 '어떻게 하면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친구는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오더니 "저 아까 경기할 때 고칠 점 없었나요? 피드백 좀 주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저도 배우는 사람이라 잘 모르는데요? 남에게 피드백 드릴 수준이 아닌데요?"라고 손사래 쳤다가도 문득 마음을 고쳐 먹고 아는 선에서 최대한 조언해주었다.
▲ 형형색색 조끼 나눠 입고 시합 중. |
ⓒ 오정훈 |
축구를 취미로 삼은 지 1년 반, 어느덧 어엿한 2년차 축구인이 되었다. 처음에 들어간 팀은 내가 느끼기에 실력의 벽이 너무나도 높았다. 다른 이들은 공을 찬 지 만 1년이 넘었고, 나는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의 차이도 잘 모르던 상태. 초보자에게 1년은 말도 못하게 거대하다. 내가 뭐 하나라도 비슷하게 흉내내면 "나이스, 나이스" 외쳐주는 친구들의 외침이, 내가 정말 잘해서가 아닌 일종의 추임새임을 모르지 않았다.
인생의 모토 중에 하나가 '남에게 폐 끼치지 말자'인 내게 '민폐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축구 인생은 도통 적응되지 않았다. 팀에 가입한 지 2개월차, 한번 내린 결정을 쉽게 번복하지 않는 나로서는 큰 결심을 했다. 팀의 걸림돌이 되지 말고 그냥 내 그릇에 맞는 곳을 찾아 나서자. 주장 황소에게 독대를 신청한 뒤에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나를 가만히 앉혀놓고 이야기했다.
"언니, '행복 축구(즐기는 수준에서 하는 축구)'는 다른 데에서도 할 수 있잖아. 우리랑은 진짜 축구를 하자. 내가 도와줄게."
▲ 시합 중인 친구들. |
ⓒ 오정훈 |
언젠가 황소는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는 성공 법칙을 담은 이미지 하나를 내게 보냈다. 제목은 "성공은 실패를 버틴 사람에게 온다." 우리 상상 속 성공의 모습은 노력과 시간이 100퍼센트 반영되어 성공 쪽으로 45도 직선 우상향하는 그래프이지만 실제로는 노력+실패+끈기가 모이는 한없이 꼬인 실 같은 어질어질한 형태의 우상향 그래프라는 내용이었다.
후자의 그래프는 꼬임이 심한 롤러코스터처럼 바닥을 쳤다가 공중에서 휘몰아쳤다가 한바탕 난리가 난다. 그 좌충우돌 대소동을 거치고 나면 나는 어느 순간 몇 계단 위쪽에 올라타 있는 것이다.
▲ 기본기 연습 중 |
ⓒ 오정훈 |
그날 나는 황소의 마음에 빙의되어 최선을 다해 내가 아는 지식들을 그에게 건네었다. 나와 황소의 관계와 달리 그와 나는 다시 만날 수 없을 확률이 높겠지만, 축구인이라는 큰 바운더리 아래 공을 차는 초보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앞날을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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