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허용 않은 언론의 '무단 사진게재'에 이렇게 맞섰다 [이게 이슈]
[김소라 기자]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지난 2019년 6월 1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 권우성 |
뉴스에 스쳐 지나가는 시민들의 유쾌한 순간이 화제가 되는 때가 있다. 취재 현장의 배경이 되면서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는 경우이다. 기사 사진으로 우연히 찍힌 모습이 지인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거 너 아냐?" 하며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런데 내가 성소수자이고,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모습이 나도 모르게 찍혔다면 어떨까? 그 사진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공포다. 가족 혹은 지인에게 자신이 퀴어라고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특히 성소수자의 존재에 반대하는 일부 교회와 같은 공동체에서 정체성을 숨기고 지내는 사람이면 더더욱 일상에 위협이 된다.
"이거 너 아냐?" 지난해 여름, 어느 사진 한 장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2022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끝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사진 속 나는 뒷모습 뿐이었지만 친구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시청광장으로 돌아와 팔을 높이 들고 춤을 추고 있는 사진이었다.
퀴어 퍼레이드 참가했을 뿐인데... '선정적'이라니
사진이 어디에서 났냐고 물으니 트위터에서 빠르게 돌고 있는 기사링크라고 했다. 그 언론의 기사는 퀴어퍼레이드에서 찍은 사진들을 통해 퀴어가 '선정적'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퍼뜨리고 있었다. 나야 종교 공동체에 속한 적이 없고,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기 때문에 웃어넘길 수 있다고 해도, 기사 사진에 너무 많은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무작위로 노출되어 있는 게 문제였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지인들이 알음알음 모였다. 본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끼리는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다는 사진이 오가도 상관이 없지만,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지인들에게까지 무작위로 노출되는 것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알고 보니 해당 기자는 소속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취재 출입증을 발급해서 기사를 작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로 비에 젖어 무거워진 바지가 골반까지 내려간 것을 두고 '선정적'이라고 묘사했다. 자극적인 사진을 선택적으로 활용한 이러한 기사는 성소수자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고, 혐오를 부추긴다.
대응을 하기로 했다. 이런 기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네 명의 지인이 모여 대응팀을 꾸렸다. 무단 사진 게재 대응은 서울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출발했다. 안내문에는 초상권 침해 언론매체에 대응하는 방법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언론사에 직접 전화를 해서 기사삭제를 요구한 것이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아래는 대응 과정을 요약한 내용이다. 취재 금지 언론사가 퀴어퍼레이드에 침입해서 악의적인 무단 촬영을 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지만, 아웃팅의 위험 등 난감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이전 대응 사례를 참고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아카이브로 남겨두었다. 이 가이드라인이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의 즐겁고 안전한 축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언론중재위원회 |
ⓒ 연합뉴스 |
1. (초상권 등) 보호를 위해 언론사를 대상으로 수정 및 삭제 요구를 하는 것은 당사자가 직접 진행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언론사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언론중재위원회를 찾으면 된다.
2. 언론중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잘못된 보도의 유형을 확인한 후, 전화상담을 통해 전자접수를 한다.
- 언론중재위원회 언론피해상담 02-397-3000
- 언론중재위원회 전자접수 (링크)
3. 정정보도청구, 반론보도청구, 추후보도청구, 손해배상청구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에는 전화상담을 통해 안내 및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조정의 목적이 기사삭제였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 후 '조정과정에서 삭제요청'을 하면 된다고 안내를 받았다.
4. 피해를 입은 기사의 제목과 발행날짜 등의 정보, 그리고 피해사실을 서술하는 글과 사진 등의 자료(지인이 알아보고 보낸 문자 캡처본 등)를 첨부한다. 접수한 모든 글과 사진은 피신청인(기자)에게도 전달된다.
5. 기각 사유가 있는지 검토 후 접수가 완료된다. 중재부 배정 문자가 오면 정해진 날짜에 출석하면 된다. 출석이라 함은 대면 조정 과정에 참석하는 것이다. 조정일에 참석이 불가능한 경우 한 달 정도 후인 2차 조정일에 참석할 수 있다. 조정날짜에 본인 참석이 힘들 경우 '위임장 및 대리허가 신청서' 작성 후 대리인이 참석 가능하니 안심하자.
6. 필요한 경우 입증자료를 대면 조정일 전에 서면으로 제출할 수 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자료를 메일로 제출했다.
-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의견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프레스카드를 발급했다는 사실 등을 입증
- 인권보도준칙 인용: 제8장 성적 소수자 인권, 제4장 성 평등
- 조정인 개별 피해사실: 트위터 리트윗 캡처본, 지인의 "이거 너 아냐?"와 같은 메시지 캡처본, 피해자의 심적 부담감에 관한 주변인 진술서 등
7. 조정일에 참석한다. 신청인 측과 피신청인 측이 각각 발언을 한다. 중재위에서 신청인측에 먼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취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준다. 피신청인까지 발언이 끝나면 중재위의 질문에 양측에서 답변을 한다. 이후 중재위의 진행에 따라 최후 조정을 진행한다. 우리 보수언론 무단사진게재 대응팀은 결과적으로 기자의 사과를 받았고, 기사 제목에 악의적 문구를 정정할 것과 신청인 당사자들의 사진을 삭제할 것을 약속받았다.
8. 합의사항을 일주일 내에 이행하지 않을시 피신청인이 신청인에게 1일 50만원씩 지급할 것과 조정합의시 본 건으로 이의제기가 없을 것을 약속한 후 조정 성립이 선언된다. 이렇게 중재위는 종료된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공지사항에는 누군가 취재·촬영을 하려고 할 때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프레스카드와 소속, 목적, 명함 혹은 연락처를 받아둘 것을 권장하고 있다. 카메라를 경계하지 않고도 축제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제는 논란을 부추기는 기사가 아니라 성소수자의 인권과 평등한 사회를 위한 퀴어퍼레이드 취재 기사를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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