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GPT가 쇼 노트를 작성한다면? AI와 패션이 조우한 순간 3
발렌시아가를 입은 해리포터부터 몽클레르 패딩을 걸친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미드저니’가 무분별하게 양산해 낸 AI 이미지의 인기도 어느새 한풀 꺾인 듯한 모양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AI 이미지 게시물에는 ‘사진 속 인물들이 ‘진짜’가 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냐?’, ‘AI 이미지 좀 그만 보고 싶다’라는 댓글이 쇄도하고 있죠. 전 세계를 휩쓴 AI 이미지 열풍이 불과 반년 만에 사그라지기 시작한 건데요. 지나칠 만큼 빠르게 뜨고 지는 각종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베트멍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 안티-AI’ 정신을 최신 컬렉션에 녹여냈습니다.
마치 AI가 정교한 3D 효과로 완성한 듯한 마네킹이 베트멍 2024 SS 컬렉션을 수놓았는데요. 알고 보니 이들의 정체는 천으로 얼굴을 감싼 실제 모델들이었죠. 구람 바잘리아는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여기에 베트멍 특유의 과장된 오버사이즈 실루엣을 담아냈습니다.
한편 마크 제이콥스의 런웨이는 단 3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모델들이 피날레를 장식하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죠. 평균 약 10분에서 20분가량 진행되는 여타의 런웨이에 비하면 눈 깜짝할 새 끝난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순식간에 지나간 총 29개의 룩에는 1980년대의 현란한 나이트클럽 신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향한 찬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타이츠과 흰 양말, 스틸레토 플랫의 절묘한 조화도 빼놓을 수 없었죠.
게다가 쇼 노트 또한 오늘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챗 GPT로 작성되어 눈길을 끌었는데요. 서론으로 물꼬를 튼 이후 ‘플랫 슈즈와 블랙 타이츠의 조화’, ‘흑백의 힘’ 등의 소제목을 거쳐 컬렉션 전반의 소개를 담은 결론까지, 언뜻 보기엔 탄탄한 짜임새로 완성된 듯하지만 지나치게 경직되고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알고 보니 이는 숏폼에 익숙해진 현대인과 지나치게 급변하는 패션 트렌드를 꼬집기 위함이었다고 하죠.
만약 AI가 사람의 형체를 갖추게 된다면 이런 모습일까요? 더블렛의 2024 SS 컬렉션 런웨이에서 모델들은 목, 배, 갈비뼈, 손등, 종아리 등에 USB 포트를 장착한 채 등장했습니다. 게다가 몇몇 모델은 보드를 탄 채 런웨이를 질주하기도 했죠. 이노 마사유키 또한 보드에 올라탄 채 호기롭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매 시즌 실험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더블렛의 이노 마사유키는 이번 시즌, AI에 잔뜩 심취한 듯 보입니다. 쇼 당일 객석에는 “최근 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더라. 왜지? 내가 너희들의 일자리를 뺏어갈 것만 같니?”라고 적힌 AI의 위트 넘치는 메시지가 놓여있었죠. 실버와 핑크 컬러의 메탈릭 포일 데님, ‘I♡3D’가 적힌 톱, 과학자를 연상케 하는 화이트 가운 등 미래지향적인 무드 또한 줄을 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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