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대통령 아들 5명이 고문, 이번엔 다르다…이승만기념관 추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1875년~1965년)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과 마지막 주석을 거쳐 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1948년~1960년)을 지냈지만, 사후 60년 가까이 이승만 기념관이 건립되지 못했다. 공과(功過)에 대한 진영 간 평가가 크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발족한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면면을 보면 좌우를 가리지 않은 인사가 대거 모였다. 이 전 대통령의 양자(養子)인 이인수 박사를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 EG 대표이사,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이사장 등 전직 대통령 아들 5명이 고문으로 참여했다.
민주당 계열에선 한화갑 전 대표와 4·19 학생 운동을 주도한 이영일 전 의원, 이 전 대통령의 정적(政敵)이라는 죽산 조봉암(1898년~1959년) 기념사업회의 주대환 부회장도 추진위에 참여했다. 주 부회장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라면서도 “호오(好惡)를 떠나 이 전 대통령 정도 되는 사람이 기념관 하나 없다는 건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추진위가 만들어진 데엔 김황식 위원장의 노력이 컸다. 김 위원장은 3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많은 분이 노력을 해왔는데 성과가 없어 안타까웠다”며 “이번엔 여러 사람이 합심해서 힘을 모으기로 한 만큼, 성과를 확실히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Q : 여러 배경의 사람이 모였다.
A : “국가 통합을 위해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진영 논리로 배척만 할 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 정확한 사실관계를 가려 국민께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이영일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에겐 공과가 있는데, 대학생 시절 과(過)만 보고 이 전 대통령 축출에 앞장섰던 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Q : 이 전 대통령의 공과는 무엇인가.
A :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국회를 열고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를 기초로 하는 헌법을 만들었다. 한국 전쟁 땐 유엔(UN)과 미국을 끌어들여 국토를 방어하고 이후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한·미 동맹을 맺었다. 3·15 부정선거는 분명 잘못한 게 맞다. 중요한 건 공과를 균형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다.”
'이승만 재평가' 기류는 현 정부의 기조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내비친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연설과 4월 방미 연설 등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언급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이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선구적인 역사적 업적과 위상은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영일 전 의원 등 4·19 혁명의 주역 50여명이 지난 3월 국립서울현충원의 이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한 건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건국 대통령에 씌워진 독재 프레임을 벗겨드리고, 국민적 화해의 차원에서 4·19세대가 먼저 참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념관건립추진위 발족에 국민의힘은 “기념관 건립은 이 전 대통령의 공과를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이자, 역사적 화해와 통합의 시작이 될 것”(김민수 대변인)이라는 논평을 냈다. 김 대변인은 “그간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이룬 수많은 ‘공’은 부정당하고 정치적, 이념적 이유로 ‘과’만 강조되었다”라고도 했다.
국가보훈부에선 일찍이 기념관 건립을 대비해 예산 460억원도 책정해놓은 상태다. 박민식 장관은 수차례 “이승만기념관 건립은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했다. 전직대통령예우법에 따르면 기념관 건립에 정부는 전체사업비의 30%까지만 지원할 수 있는데, 보훈부는 전액 지원을 위해 예산 편성 근거를 전직대통령예우법이 아닌 독립유공자법에서 찾았다.
이는 이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독립유공자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조치다. 이 전 대통령은 항일 독립운동의 공로로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서훈됐다. 독립유공자법을 적용하면 김구·안중근 의사 기념관처럼 이승만 기념관도 전액 국가 예산 지원으로 지을 수 있다.
Q : 정부는 기념관 건립을 전액 지원하겠다는데.
A :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는 건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 대통령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하기 위해 기념관을 지으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대통령예우법에 따라 추진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30%만 지원받고 나머지 70%는 국민 성금을 모금해 지을 것이다.”
Q : 쉬운 길이 있는데 왜 어렵게 가나.
A :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은 역사적인 일인데, 이 전 대통령을 독립유공자로 다루는 건 참된 예우가 아니다. 다른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들도 모두 전직대통령예우법에 근거해 만들었다. 정부 예산과 함께 국민 성금도 모여야 진정한 대통령 기념관으로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제 막 발족한 터라 기념관 부지나 건물 규모, 건립 비용 등은 정해진 게 없다. 김 위원장은 “우선은 필요한 조직 체계를 만들고 이제 차근차근 부지 위치나 모금 과정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개별적인 움직임이긴 하지만 민주당 출신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지난 5월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와 함께 “독재자를 부활시키려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 왜곡 행보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일각의 반대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도 당연히 필요한 의견이며, 다 들어가며 묵묵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이 전 대통령은 내란죄 수괴”라며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데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시작되면 국민은 그런 발언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며느리로 추진위에 참여한 조혜자 여사의 말을 전했다. “과거 프란체스카 여사(이 전 대통령 부인)는 제게 ‘한국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이승만 대통령을 제대로 평가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런 날이 오는 것 같다. 그래서 기쁘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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