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랴부랴 킬러문항 걸러낼 사람부터 찾는 교육부

신정섭 2023. 6. 3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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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29일 긴급 공문 "30일까지 수능출제점검위 추천"... 킬러문항 기준부터 제시하라

[신정섭 기자]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및 모의평가에서 '킬러 문항'을 걸러낼 '공정수능출제점검위원회'(아래 출제점검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위원으로 위촉되는 교사들은 당장 올해 9월 모의평가부터 출제 및 검토위원과 함께 합숙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위상이 불분명한 데다가 졸속으로 꾸려진 출제점검위원회가 과연 제역할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단 하루만에... 점검위원 인력풀 추천 완료

각 시·도교육청은 29일 '긴급'이라는 머리말을 달아,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점검위원 인력풀 추천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아래 공문 이미지 참조). 대부분의 학교는 다음날인 30일 아침에 해당 공문을 접수했다. 그런데 추천 기한이 30일 오후 5시다. 교육부는 단 하루만에 인력풀 추천을 받고, 해당 인력풀 중 최종 선발하는 절차를 다음 주까지 마무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각 시·도교육청이 6월 29일 발송한 '[긴급]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점검위원 인력풀 추천 요청' 공문. 추천기한은 공문 발송 6월 30일이다.
ⓒ 신정섭
 
9월 모의평가 출제가 7월에 이뤄지는 탓에 시간이 촉박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정이 급하다고 해도, 이렇게 졸속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붙임1]의 자격요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비공개 문서), 29일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수능 출제 및 검토, 사설문제집 발간 경험이 없는 교육경력 10년 이상의 고등학교 교원"이라고 한다.

검토위원과 점검위원, 사실상 하는 일이 같다

교육과정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문항 검토 역량을 가진 교사가 얼마나 지원할지 미지수지만, 더 큰 문제는 출제점검위원회의 위상이 불분명해 실효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출제점검위원회는 국어, 영어, 수학 각 3명과 사탐, 과탐 각 8명 등 총 25명 규모로 알려졌다. 출제위원이 만든 문제를 검토위원이 1차로 살펴보면, 점검위원들이 2차로 고교 교육과정에 위반되는 킬러문항이 있는지 검토하게 된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났거나 지나치게 까다로운 킬러문항을 거르는 일은 본래 검토위원의 몫이다. 똑같은 임무를 점검위원에게도 맡기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검토위원은 문항의 타당도와 신뢰도, 난이도까지 두루 살피지만 점검위원은 킬러문항을 걸러내는 일에만 집중한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똑같은 과업이다. 

전형적인 옥상옥이다. 국어사전에서 '옥상옥(屋上屋)'을 찾아보면, "지붕 위에 지붕을 거듭 얹는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쓸데없이 거듭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실상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데, 굳이 별도의 인력과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점검위원과 검토위원이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크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출제 시스템상 둘은 사실상 같은 과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점검위원이 검토위원과는 다른 독립적 위상을 갖기는 매우 어렵다. 게다가 킬러문항 여부를 둘러싸고 점검위원과 검토위원의 의견이 다를 경우,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난망하다. 검토위원의 수가 점검위원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국영수 교과의 점검위원은 각각 3명에 불과한데, 검토위원은 각각 8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출제위원은 교사에 비해 교수가 2배 정도 많다. 검토위원은 출제위원 규모의 절반 정도다. 점검위원은 검토위원 수의 절반 이하로 알려져 있다. 수능 출제 오류 중 상당수가 검토위원회의 목소리를 출제위원들이 잘 듣지 않아 발생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비슷한 혼선과 갈등이 검토위원과 점검위원 간에도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엎질러진 물이지만 후속 대책은 필요하다

2024학년도 수능 9월 모의평가가 이제 두 달 정도밖에 안 남았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조차, 대한민국에서 '킬러문항'의 정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육과정에서 벗어났거나, 교육과정 안에 있어도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고도의 추론이 필요하거나,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 뒤섞여 있거나, 2개 이상 교과의 융합지식이 필요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킬러문항에 대한 자의적 기준 탓에 수험생과 학부모, 현장교사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 킬러문항 배제는 기정사실로 굳어졌고 조만간 출제점검위원회도 꾸려질 예정이다.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가 겪는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지금이라도 킬러문항의 기준부터 명확히 정해 발표해야 한다. 아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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