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것은 보호출산제가 아니다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병원에서 출생해 신생아 예방접종을 받았으나 출생 신고되지 않은 아동이 2236명 있는 것을 파악하고, 이 중 1%인 23명에 대해 집중 조사를 지시하였고, 그 결과 2023년 6월 22일 현재까지 23명 중 3명의 아동이 살해되거나 사망하였고 1명이 유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고한 아동의 생명을 담보로 10여 년 넘게 논의되어 오던 출생통보제는 30일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1년 후부터 출생통보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게 되었습니다.?이와함께 병원에서의 출산을 기피하는 산모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회원들은 연속기고를 통해 최근 논의되는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도입 및 정착을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기자말>
[소라미]
▲ 살인 및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피의자 30대 친모 A씨가 30일 오전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A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기를 출산하고 수 시간이 지나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시 장안구 소재 한 아파트 세대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2023.6.30 |
ⓒ 연합뉴스 |
2236명,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의 숫자이다. 2236명 중 1%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니 2명의 아동이 냉장고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이미 세 자녀가 있었던 친모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출산한 아동을 살해했다고 하였다.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친모의 남편이자 아동의 친부는 임신과 출산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사회적 공분이 일자 정부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을 전수조사 하겠다고 나섰고 국회에서 여야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겠다고 앞다투어 발표하였다.
안타까운 사건을 계기로 오랫동안 시민사회단체에서 도입을 촉구해 온 '출생통보제'의 추진에 불이 붙었다. 출생통보제란 출생신고를 부모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아동이 출생한 의료기관에도 신고의무를 부과해 출생신고의 누락을 막자는 취지의 제도이다.
기본권 보장의 출발점이 되는 출생등록될 권리가 드디어 구멍 없이 제대로 보장되는가 싶었으나, 이와 병행하여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보호출산제란 산모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이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출생신고를 기피하는 여성들이 병원 밖에서 출산할 것이므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익명 출산이 남긴 상처
하지만 해외 입양인 당사자, 미혼모 단체, 아동인권을 옹호하는 시민사회단체는 한목소리로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보호출산제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해외 입양인은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출생등록될 권리를 침해당한 당사자들이다. 과거 해외 입양 과정에서 간편하고 신속한 입양 절차를 위해 친생 부모가 있는 아동까지도 '고아' 호적으로 해외 입양을 보내는 관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대다수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하고 친생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원초적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고통 받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다 내가 괜찮은 줄 알죠. 그냥 학교 기숙사에서도 살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니까. 실제로는 그냥 떠다녀요".
해외 입양인들은 "끊임없이 느끼는 무소속감, 불안감"이 있다고, "안착할 곳 없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수백 명의 해외 입양인들이 자신의 입양 기록이 왜곡되고 조작되었다고 과거사위원회에 조사를 신청한 배경이기도 하다.
고아가 아닌데 고아로 만들고, 양부모인데 친생 부모라고 허위로 출생신고했던 과거 입양 관행에 대한 반성에서 2012년에 입양특례법이 개정되어 입양을 위해서는 출생 신고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는 보호출산제에는 친생모가 익명으로 출생 신고하고 그 아동을 입양절차로 연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입양을 보내고자 하는 부모는 실명으로 출생신고하도록 하는 현행 입양특례법을 무력화시킨다.
결국 보호출산제를 통해 보호되는 것은 '친생부모의 익명성'과 '아동 출생의 비밀'인데 이를 선택한 여성의 삶은 어떠할까. 익명 출산이 허용되어온 프랑스에서 익명 출산모는 '그림자 엄마'라고 불리는데 최근 언론과 출판 등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에 미성년자로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익명 출산을 하도록 강요받았으며, 이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 속에서 자책하며 살아야만 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임신·출산을 거친 여성이 이후에 아동을 포기·유기하겠다는 결정을 한다는 것이 어떠한 과정일지, 그 선택 이후 여성의 삶에 평생 드리우게 될 심적 고통과 트라우마가 어떠할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위기임신출산지원센터'를 시범적으로 운영했던 민간 여성단체는 익명 출산을 고민했던 여성들 대부분이 가족과 지인에게서 고립되어 있었고, 주거지가 불분명하거나 생계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전한다. 또 지원제도 등 정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상담 전에는 익명 출산을 원했던 여성 대부분이 상담 이후에는 출생 신고를 하고 직접 양육을 선택하거나 입양을 결정하였으며, 출생 신고를 하지 않고 아동을 유기한 경우는 단 2건뿐이었다고, 두 건 모두 기혼 여성이 혼인 외 출산을 한 경우였다고 한다.
이러한 지원 결과는 제대로 된 상담과 지원이 연계된다면 출생 신고를 기피하는 이유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이번 수원 영아 살해 사건도 임신·출산을 숨기고 싶어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소위 '정상' 가정이라 일컫는 혼인 가정 내에서 발생한 일이었으며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보호출산제가 있었다고 해서 아동의 살해를 막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즉,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산을 비밀로 부쳐주겠다는 보호출산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임산부를 지지하고 도울 수 있는 종합적인 위기임신출산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위기임신출산에 대한 지원체계 없이 당장 보호출산제를 성급하게 도입한다면 출생 신고를 기피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까지 '익명' 출산을 하도록 유도하게 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 임신·출산 지원하는 제도부터
보호출산제도는 '고아'를 양산하여 아동의 정체성과 알권리를 침해하고, '입양 아동'을 양산하여 원가정에서 양육될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그림자 엄마'들의 외침에서 알 수 있듯 '비밀 출산'을 보장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유엔은 보호출산제도의 도입은 예외적으로 최후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거듭 권고해 왔다. 보호출산제도 도입을 검토하기 이전에 우선 원치 않는 임신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중단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출산을 선택한 경우에는 안전하고 건강하게 임신과 출산 전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출산으로 인하여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익명 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이미 수십 년 동안 여성의 임신중단권이 보장되어 왔다. 프랑스의 경우 46년 전에 임신 중지를 합법화한 이래 의료보험 혜택을 적용하고 미성년자의 임신 중지를 지원하였으며 최근에는 임신 중지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도 도입하였다.
독일의 경우 1970년대부터 부분적인 임신 중단을 허용하여 낙태 시술 3일 전에 상담을 한 후 상담증명서를 발급받은 경우에는 임신 12주 이내에는 낙태가 허용되도록 하되, 의학적인 사유와 강간 및 성범죄인 경우에는 상담을 거칠 필요가 없도록 하고 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한국 사회에서 임신 중단은 비범죄화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과 병원의 거부 등으로 적절한 시기와 방식에 임신 중단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가 영아 살해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영아 살해 사건의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점과 더불어 출산을 원하지 않았지만 임신 중단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출산하게 되었다는 점이 명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임신 중단의 사유, 절차, 지원 방안 등에 대한 후속 입법 조치가 없어 산모 개인과 개별 병원에 맡겨진 결과이다.
아동의 사망으로 촉발된 출생등록될 권리를 보장해야한다는 사회적 공분을 단순하게 신원을 노출하지 않는 출산 방식에 대한 보장으로 한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위기 임신 출산을 위한 지원센터를 만들어 제대로 된 상담과 지원을 연계하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임신 중단 관련 제도가 도입된다면 보호출산제가 필요하다고 상정하는 상황의 대부분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보호출산제 도입은 미혼모에게 아동을 양육하기보다는 해외 입양 보내도록 사회적으로 강요했던 과거 해외 입양의 과오를 되풀이 할 수 있다. 또 친생부모가 있는 아동을 '고아'로 만들어 아동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원초적인 상처를 남기게 된다.
출생미신고 아동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하여 그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또 사회적 곤경에 처한 임산부들이 어떻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재생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인가의 논의로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 필자 소개: 글쓴이 소라미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이자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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