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수사' 강화한 중국…정작 美·日은 中 '산업 스파이'에 골치
"중국 스파이는 미국 대도시에서 작은 마을까지, 포천 100대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다 있다…항공·인공지능(AI)·제약 등 모든 산업계를 기웃거린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산업 스파이 활동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음달 1일 '신(新)방첩법(반간첩법 개정안)' 시행을 계기로 중국은 '외국 스파이'에 대한 본격적인 단속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세계 각국은 중국 측의 다양한 산업 스파이 활동으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중국 산업 스파이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과 중국 산업계를 뒤흔든 쉬옌쥔 사건이다. 미국 CNBC 다큐멘터리 '중국의 산업스파이 전쟁'에 따르면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이던 쉬옌쥔(42)은 2013년부터 장쑤(江蘇)성 과학기술증진협회 관계자 등으로 위장해 미국 항공우주 기업 직원들과 접촉했다.
쉬는 "중국 대학에서 프레젠테이션(PT)을 해달라", "아이디어 교환하자"며 엔지니어를 중국에 초청하고 관련 경비를 대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러던 2017년 쉬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자회사인 GE 항공의 중국인 기술자를 꼬드겨 제트 엔진 기술을 빼내려 했다. 이를 알아챈 FBI은 쉬의 타깃이 된 기술자와 접촉해 이중 스파이를 제안했다.
결국 이중첩자에 속아 체포된 쉬는 지난해 미국 오하이오주 연방 법원에서 중국 스파이로는 최초로 미국 재판에 출두해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유죄 평결 직후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며 스파이 행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중국의 산업스파이 활동이 활발한 산업은 반도체 분야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계 매출 1위인 미 반도체 장비 기업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는 현재 중국계 기업인 맷슨과 산업 스파이 건으로 소송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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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보니 잘 썼더라" 접근해 정보원 삼아
국내에서도 중국인에 의한 기술 유출 사건이 빈번한 편이다. 최근 경찰은 한국 대형병원 연구소에서 일하던 40대 중국인 연구원을 첨단 의료 로봇 기술과 관련된 파일 1만여 건을 중국으로 무단 반출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가 유출한 기술은 상용화를 앞두고 있었고 시장 가치만 6000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중국에 빼돌린 혐의로 최근 기소된 한국인 최 모(65)씨는 중국 자본을 유치해 적극 기술 유출에 나선 경우다. 검찰은 중국 정부의 투자를 받던 그가 한국 반도체 공장 자체를 복제해 중국 시안(西安)에 지으려 시도했다고 봤다. 그는 청두(成都)시에서 4600억원을 투자받아 세운 합작법인을 통해 반도체 시제품 양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선 국립 산업기술종합연구소에서 일하던 중국인 취안헝다오(權恒道·59)가 불소화합물 합성기술 등을 중국에 빼돌린 혐의로 최근 체포됐다. 2018년 취안이 보낸 데이터를 받은 중국 회사는 관련 특허를 중국 내에서 출원해 2020년 등록해버렸다. 지지통신은 "일본 산업계가 특허를 낼 기회를 빼앗긴 셈"이라고 전했다.
취안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일본 수사당국은 그가 중국 정부 지원으로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본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취안은 중국인민해방군 무기 기술 등을 연구하는 '국방7교(校)'중 하나인 베이징 이공대학 교수로 일했다. 신문은 그가 중국 '전국과기대회'에서 표창을 받은 뒤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는 사진이 홈페이지에 올라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일본 매체에 따르면 중국 스파이는 학자·연구원 등 최신 데이터를 가졌을만한 다양한 정보원을 노린다. 이들은 정보원에 처음 접근할 때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 등에서 "당신 논문 읽어봤는데 잘 썼다", "아이템이 좋은데 같이 일할 생각 있냐"는 메시지를 보내 경계심을 푼다고 한다. 그 뒤 식사 접대 등으로 친분을 쌓으며 정보를 확보한다.
각국 정부는 중국 관련 스파이 활동을 막기 위한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에선 40년 이상 된 미·중 과학기술협정(STA)을 오는 8월 종료할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붙었다. 5년마다 갱신되는 STA는 그간 기초과학, 농업 등에서 양국 인적·물적 교류의 장이었지만 중국이 이를 악용해 미국의 과학적·상업적 성과를 가로챈단 비판을 받았다. 지난 27일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중국위원회 위원장 등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 서한을 보내 "중국에 기술을 이전함으로써 스스로를 파괴하는데 기름을 붓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면서 STA를 연장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아예 중국에 개설한 AI 연구소의 연구 인력을 캐나다로 옮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네덜란드 교육 당국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를 공부하러 오는 중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원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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