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소리꾼 백귀영씨의 적벽가가 보여준 것

김성훈 2023. 6. 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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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소리판 적벽가 발표회... 지역에서 '전통하기'는 계속 되어야

[김성훈 기자]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른 후유증은 지역의 전통문화예술 공연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어제보다 오늘의 삶이 낫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때에 따라 오늘 하루 무사한 것이 행복이라 자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을 읽고, 어떤 것을 느끼든 일상이라는 꼬리표에 붙은 '우울'은 때 이른 장마처럼 우리 삶을 습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언론은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무엇을 '변화' 할지에 관한 이야기는 그 언론의 수만큼 다양하여, 소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태산이 옮겨지는 것만큼이나 버겁게 느껴진다. 정작 매일 눈을 뜨는 것이 두렵고, 몸은 물 머금은 스펀지처럼 무거웠다. 개인의 일상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수가 삶의 '변화'를 입에 올릴 때, 갈수록 썰렁해지는 '전통'의 현장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백귀영씨이다. 그는 1984년 부산시에서 태어나, 또래인 고수 박준호씨와 결혼 후 해남군에서 세 아이를 낳고, 소리꾼의 삶을 탄탄하게 걸어가고 있다.
 
▲ 백귀영 적벽가 발표회 현장 소리꾼 백귀영 씨는 고수 박준호 씨와 눈을 맞추며 '산천은 험준하고'로 시작하는 새타령을 불렀다.
ⓒ 김성훈
 
지난 27일 저녁 7시, 해남문화원에서 열린 그의 두 번째 소리판 '백귀영 적벽가 발표회' 현장을 찾았다. 사회인류학자 질리언 테트가 말했던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는 것을 공연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준비한 공연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은 '모시는 글'이 쓰여 있었다.

"작년 빛고을국악전수관 초청으로 적벽가 발표회를 하며 판소리 연행의 현장을 찾으신 분들께서 긴 터널 같은 코로나 시국을 버티며 뱉어낸 웃음과 울음을 만났습니다. 이어 두 번째 '적벽가 발표회'는 바다 같은 삶이 벗겨 낸 짠 냄새가 고수의 손을 두들기며, 소리꾼의 목울대에서는 그 장단을 받아 바싹 마른 슬픔 하나를 하얀 천에 스민 달빛 그림자로 만들어 무대를 꾸며 보려 합니다. 소리에 집중하는 동안 삶이 역동하는 것에 대한 경외감, 기쁨과 슬픔이 한 영혼에 닿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판소리 무대는 창자와 고수, 청중의 호흡이 교제해야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는 '모시는 글'에 품은 뜻을 이어 여는 무대로 단가 '광대가'를 불렀다. 소리꾼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신재효 선생(1812~1884)은 '광대가'라는 노래에서 제시했는데, 명창 박동진이 살아생전 자신을 광대로 불러주기를 원했다는 것은 소리꾼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대개 판소리를 부르기 전 소리꾼이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소리꾼 백귀영씨의 목을 통해 나오는 '광대치례'는 광대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을 들었다. 인물치례, 사설치례, 득음, 너름새가 그것이다.

흔히 판소리 5바탕이라 부르는 것이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적벽가, 수궁가이다. 그중 백귀영씨는 명창 최승희에게서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를 명창 김경호에게는 적벽가를 각각 사사 받았다. 그런 삶의 이력에 비추어 본다면 그의 목에서 울리는 '광대치례'는 목을 만드는 지난한 훈련의 흔적이었으며, 삶이라는 시간의 이행기 동안 덧살이 오른 흉터와 비슷했다.

'모시는 글'에 나타난 문장처럼, '하얀 천에 스민 달빛 그림자'를 표현하는 것은 신재효 선생의 살아생전의 시기뿐만 아니라 지금도 명창을 꿈꾸는 이들이 가장 바라는 소리의 깊이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백귀영씨에게 '전통'이라는 낱말은 흉터투성이의 삶의 과정에서 울음과 웃음을 쥐어짜는 순간이었다. 소리는 목이 풀림과 동시에 송만갑 바디 박봉술제 적벽가의 눈대목인 싸움타령으로 이어졌다.

판소리는 음악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예술이다. 따라서 소리꾼은 '소리'를 만드는 험난한 길을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어사전에 등재된 명사형 '전통'이 아니라 소리꾼 당사자에게는 동사로써 '전통 하기'가 된다.
 
▲ 행사 리플렛 행사 리플렛에는 백귀영 씨가 직접 쓴 모시는 글과 공연 순서가 적혀 있다.
ⓒ 김성훈
 
백귀영씨는 이번 두 번째 적벽가 발표회를 통해 남성만의 영역으로 손꼽히는 '적벽가'에 그 자신이 염원했던 소리를 향한 갈망, 노력, 그리고 성취를 표현했다. 그는 적벽가의 눈대목 17 과정(싸움타령~조조신세한탄)을 마치면서도 이런 말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오신 분들 덕분에 큰 힘이 됐습니다. 공연 시간이 1시간 15분에서 20분 정도 소요됐는데요. 사실 소리를 준비하면서, 진짜 안 하고 싶었습니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제 길이 아닌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자리가 정말 제 자리가 맞는가,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남편 성화에 못 이겨, 정신을 차려보니 이 자리에 와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적벽가는 우조, 호령조, 통성으로 씩씩한 소리 길을 표현해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이 전장의 인물로 나와 그 분절마다의 캐릭터에 소리의 강약 및 생의 결을 표현해야 한다. 소리판을 구경하는 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드라마틱한 장면에 몰입할 수 있지만, 당사자인 소리꾼에게는 고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적벽가는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 내용 중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재창조된 소리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한 후 제갈공명을 모셔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사를 크게 이기고, 관우가 조조를 사로잡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우조 위주로 당당하고 진중하게 부르는 대목이 많아 소리꾼들은 흔히 소리하기가 되고 팍팍하다고 말한다. 고음 영역이 많고 풍부한 성량도 필요하다. 유비, 관우, 장비 등 삼국지를 호령한 장군들의 소리를 뱃속에서 바로 뽑아내는 통성과 호령조로 불어야 한다는 점에서 깊은 내공이 필요한 소리이다.

쉽게 흉내 내거나 기교로 꾸밀 수 없는 소리라는 뜻이다. 특히 백귀영씨의 독특한 음색은 이런 장면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으며, 사설을 읽는 아니리 장단에도 그 호흡을 이어갔다.

조자룡 활 쏘는 대목, 적벽 대전, 새타령 대목은 특히 박진감이 넘치고 힘이 있는 소리라서 상당한 공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영웅호걸의 기개와 지략, 충의와 지조를 잘 표현하는 것이 적벽가를 다루는 소리꾼의 공략 포인트이기도 하다. 당대 큰 명창들은 적벽가를 즐겨 부르며 장기로 삼았다. 특히 백귀영씨가 판소리의 계보로 삼는 송만갑은 동편제 판소리의 명창이기도 하다.

천하 삼분지계를 이야기하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긴장감이 청자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청중의 얼씨구, 좋다 등의 추임새는 입에서만 나오지 않고, 각자의 무릎에 손장단을 치며 공연장을 울렸다.
 
▲ 백귀영 사진 지난 27일 화요일 늦은 7시 백귀영 씨는 해남문화원에서 적벽가 발표회를 했다.
ⓒ 김성훈
 
백귀영씨가 제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끝인사를 나누는 중에도, 뭔 소리여 잘했어라는 청중의 격려가 공연 감회를 말하는 백귀영씨의 눈물과 공명했다. 공연 시작 전, 백귀영씨는 필자에게 떨리는 이 짓을 왜 맨날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며 말을 했는데, 공연이 끝난 후, 필자는 그 말을 그대로 백귀영씨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당신 덕분에 우리는 판소리와 교제할 수 있었다고."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해남군에서 판소리는 일상에서 흔하게 향유되는 공연문화였다. 술자리에서 소리 한 가닥 못 뽑고, 북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하면 그 축에 끼지 못한다는 말이 회자 될 정도였다.

하지만 '변화'만이 강조되고, 지키고 가꾸는 삶이 뒷전에 놓인 이 시대에, 특히 지역에서 '전통 하기'는 어떤 맥락에서 읽혀야 할까. 안다고 믿었던 것이 가장 몰랐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에게 놓인 과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경제적 수지타산만을 내세우다 보니 점차 물러나는 판소리 공연의 존망을 걱정하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조금만 소리를 배우면 서울 경기권으로 몰리고, 개인교습으로 그 이름값을 하고, 지역에서 전통 소리를 지키던 젊은 사람들은 산입에 처진 거미줄을 벗기 위해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는 현대의 슬픈 소리 풍경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역에서 소리를 듣고 싶은 청중이 여전히 무대를 기다리고 있고, 소리꾼이 목을 훈련하는 지금,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언된 우리나라 판소리는 여전히 이 땅에 숨 쉬고 있다.

젊은 소리꾼 백귀영씨의 공연은 답했다.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돈키호테가 아니라 지역,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살아 있는 판소리 연행을 위해 삶을 꼼지락거리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사는 이곳에서 판소리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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