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 죽고 바꾼 법, 다시 또 엉망으로 만든다니요
윤석열 정부는 노동, 민생, 민주, 평화 파괴뿐 아니라 노동자 시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후퇴와 개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노동시간 단축, 중대재해기업 처벌등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제기하고 일부 진전된 성과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를 위해 공동행동에 나섭니다. 공동행동은 7월 초 발족하여 버스킹, 토론회, 문화 공연 등 현장과 시민과 함께하는 사업을 집중 전개해나갈 예정입니다. <기자말>
[김미숙]
▲ 지난 2월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공공운수노조와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 김용균재단 주최로 김용균 2심 판결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 이희훈 |
평생 정성으로 쌓아온 내 인생이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식 용균이를 직장에 내보낸 지 3개월 만에 산업재해로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죽음들을 아무렇지 않게 용인하는 이 세상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아들을 잃기 전 나는 어땠나? 돌이켜보면 나도 그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그저 좋은 것만 좇아 보고 듣고 갈망하며 살아온 지난날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이웃의 안녕이 내 안녕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몰랐던 무지함이 지금의 현실을 만든 것 같다. 나 자신부터 왜 지금까지 사회의 어두운 면에 관심조차 없었는지, 돌이킬 수 없는 큰 슬픔을 당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고 자책했다. 이전에는 눈으로 보이는 발전한 이 나라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노력하며 열심히 살면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별 탈 없이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아무리 노력해도 내 삶의 질은 별반 달라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환경이 정치적으로 내 삶을 모두 지배하고 있었음에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깨어났다. 그러므로 내 삶의 질을 바꾸려면 국민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를 내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2018년의 사고. 벌써 5주기가 다가온다. 한순간에 아들을 잃고, 아들과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다기에 이름도 생소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투쟁을 했다. 그 결과 산안법은 전면 개정되었지만, 부족함이 있었기에 아들 동료들을 살릴 수 없는, 또다시 용균이를 기만한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죽음을 막고자 영국처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기 위해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을 비롯해 사고 유형이 서로 다른 유족들을 중심으로 법안 준비과정을 거쳐 법 제정 운동을 하고, 30여 일 단식까지 감행하며 열성을 다했다. 경총과 기업이 반대가 심했지만 상당수 국민의 찬성으로 결국 통과시킬 수 있었다. 물론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산안법처럼 납작해진 채였지만 앞으로 계속 바꿔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이 시행되기도 전부터 경영계는 개악을 요구해 왔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분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가족을 잃고 힘들어하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자식들 왜 죽었는지 진상 규명을 해달라고 할 때도 윤석열 정부는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 반노동 정책으로 노동조합 때려잡기 바빴다.
대우조선하청노동자의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요구에 '손배 폭탄'으로 노동자들을 때려 눕혔다. 화물연대 노동자의 졸음운전 막자는 '안전운임제' 연장 요구에는 불법 낙인을 찍고, 양대노총 사무실에 대한 강압적인 압수수색으로 국민들이 노조를 불신하도록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선량한 건설노동자들을 폭력배로 매도하고 노조원들을 수십 명씩이나 감옥에 가두었다. 애초부터 옮고 그름은 관심 밖인 것 같다. 오로지 정치적으로 악용해 차기 집권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는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이뤄낸 그 마음들이 다시 모이길
진짜 법을 어기는 것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정부였다.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노동 3권으로 부당한 회사에 맞서 뭉치고 단결해서 정당하게 요구했는데 정부는 툭하면 불법 운운하고 검경은 공권력으로 노동자들을 제압했다. 법을 어긴 건 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인데 약자라서 더 죽어나가는 세상을 보고 있자니 억울해 미치겠다.
노동자와 시민들 피로 만든 민주주의가 이처럼 무참히 짓밟히다니 가슴속에 온통 분노가 솟구친다. 그 속에 내 아들 목숨도 들어있는데 어찌 참을 수 있으랴!
기업 입맛에 맞게 정부가 발맞추고, 관련 부처가 나서서 산안법을 손보겠다고 하며 노동자의 과실로 책임을 전가하고 원청 책임은 완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그리고 중처법이 시행된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처벌은 고작 세 건 밖에 없다보니 아직도 한해에 2400명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것이 여전하다. 그 세 건의 처벌 수준도 구 산안법으로도 처벌 가능한 수준이다.
영국은 상한선이 없이 하한선으로 처벌을 강화했으나, 우리나라 중처법 제6조와 제7조에 명시된 처벌규정에는 하한선이 제시되지 않았다. 거기다 이미 3년이란 시간을 충분히 유예하여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시키기로 했는데 경총과 중기부는 더 유예하자고 나선다. 50인 미만 사업장이 사망사고 80%나 차지해 더 시급한 일인데 기업을 두둔하고 노동자의 죽음을 허용하며 이윤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듯하다.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우리는 발버둥을 치는데 저들은 자꾸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고 부족한 걸 채워가기 위해 싸우는 과정도 법 제정 운동을 했던 때만큼이나 치열하게 싸워야 할 모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드는 데 함께 했던 그 마음들을 다시 모아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민주시민이 다시 일어나 '생명안전 개악저지 공동행동'에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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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미숙 시민기자는 김용균재단 이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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