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호구'로 등극한 기안84, 16년 전 인도가 떠올랐다
[박혜경 기자]
▲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의 한 장면 |
ⓒ MBC |
"마사지~ 마사지~"
바라나시 가트를 걷다 인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기안84와 덱스를 보고 아차 싶었다. "하우 머치? 하우 머치?" 얼마냐고 애타게 묻는 두 사람에겐 대답 대신 손 마사지가 돌아왔다. 그렇다 이미 마사지는 시작된 것이다.
'저거 사람 수 대로 돈 달라고 할 텐데... 한 10만 원 부르겠는데' 싶었는데 방송은 내가 돗자리에 앉은 것마냥 예언 대로(?) 흘러갔다. "몇 명은 그냥 손만 대고 있어!" 거적때기에 엎드린 기안84의 외침처럼 사람은 하나씩 늘어 어느덧 5명이 됐다. 아, 역시 '인크레더블(Incredible) 인디아'.
▲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의 한 장면 |
ⓒ MBC |
요즘 화제인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아래 태계일주 2)를 보다 16년 전 갔던 인도 여행이 떠올랐다.
한국이 '다이나믹 코리아'라면 인도는 '인크레더블 인디아'이다. 여행객들이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곳곳에도 이 문구가 붙어 있다. 인크레더블(Incredible)! 단어 그대로 인도에서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매일 일어난다. 무엇을 상상하든 무조건 그 이상이다.
중앙선과 신호등은 찾아볼 수 없는 거리에 차와 릭샤, 오토바이, 사람이 한데 엉켜 다니고, 경적은 1초도 쉬지 않고 울려댄다. 기안84의 말처럼 "인도에는 인도가 없다". 차 피하랴 바닥에 깔린 소똥 피하랴 정신없이 걷다가 방심하게 되는 순간, 발에 소똥이 묻는다. 기안84처럼 운동화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슬리퍼를 신은 엄지발가락이라면... 인크레더블 인디아!
2007년 5월 도착한 46도 인도 뉴델리 공항은 흡사 찜질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선 좀처럼 맡아볼 일 없는 뜨거운 공기가 콧 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하루 종일 찜질방 불가마에 앉아 밥도 먹고 잠도 자는 느낌.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다. 2주간 난생처음 겪는 더위에 입맛을 잃고 나면 나중엔 40~41도만 돼도 "오늘 좀 선선한데"라는 말을 하게 되니까.
오히려 혼돈의 거리와 더위보다 여행자들을 지치게 하는 건 호객과 '흥정'이다. 흥정이라 쓰고 '바가지'라 읽는 일이 인도 여행 내내 매일, 매순간 이어진다. 가까운 시장에 가거나 기차역에 가려고만 해도 터무니없는 액수를 부르는 릭샤꾼과 입씨름을 해야 한다. 50루피이면 갈 거리를 300루피를 부른다거나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여행 내내 매일 입에 같은 말을 달고 다녔다.
"나 인도인 가격 알아요!"
나와 같은 시기 인도를 여행하던 친구는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가는 기차표를 100달러에 사기도 했다. 기차역 앞에 서 있던 친구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팔에 찬 완장을 보여주곤 "내가 여기 경찰인데, 오늘 표 다 팔렸어"라며 친구를 한 여행사 사무실로 데려갔다. 경찰이라던 그는 본인이 의자에 앉더니 '오늘 가는 표는 100달러짜리 밖에 없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인도인들 한 달 벌이가 2만 5000원~5만 원 한다던 시기였다.
더위와 바가지에 매일매일 시달리다보면 인내심이 뚝 하고 끊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나를 돈으로 보고 속인다'는 생각이 들면, 꼴랑 250원 차이 때문에 릭샤를 타지 않고 땡볕에 걸어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태계일주 2>를 보는 내내 기안84의 태도에 놀랐다.
▲ 인도 바라나시 상점에서 파는 티셔츠에 적힌 문구들. 각종 호객행위를 거절하는 내용들이다. |
ⓒ 박혜경 |
바라나시는 호객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한 남자가 다가와 작게 속삭인다. "하시시(마리화나), 하시시." 또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이번엔 가트에서 호객꾼이 다가온다. "마담~ 보트, 보트." 오죽하면 바라나시 상점에선 각종 호객을 거절하는 문구가 담긴 티셔츠를 팔았다. '노 릭샤, 노 하시시, 노 보트, 노 실크, 노 원루피...'
그런 바라나시의 가트를 기안84와 덱스가 걸었고 총 9명이 동원된 놀라운 VVVIP 마사지를 받게 된 것이다. 15분 남짓 진행된 마사지를 받고 기안84와 덱스는 각각 5만 6000원과 3만 2000원을 지불했다. 인도의 1인당 GDP가 2277달러(297만 원, 2021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금액을 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실 1화에서 기안84가 택시비로 2000루피(3만 2000원)를 낼 때부터 내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어이쿠 봉 제대로 잡았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도 기안84는 너무 태평했다. 물론 촬영이기도 하고, 인도 물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바가지'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나는 그런 거 그냥 넘어가요. 나이 먹다 보니까. 내 삶에 크게 저건(손해) 없으니까."
'인도 호구'로 등극한 기안84가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몇 천원, 몇 만원 바가지 쓴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좀 편하게 다녀도 되지.' 물론 나이가 들어 생긴 변화이기도 하다. 사기 안 당하려고 움츠러들다 보면 여행이 주는 기쁨도 놓치게 되니까... 잘 몰라도 하고, 사기 당해도 하는 기안84는 그래서 더 속 편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보트 노를 젓는 모습. |
ⓒ 박혜경 |
어쨌든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 기안84가 '치트키 여행지'로 불리는 인도에 간 덕에 <태계일주 2>는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25일 방송된 3회는 5.4%(2회 5.8%)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시즌1의 최고 시청률이 5.2%였던 점을 감안하면 큰 관심을 받으며 순항중이다. 이에 힘입어 기안84는 6월 3주차 굿데이터 TV 비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부문 1위에도 올랐다. 다양한 유튜브 여행 콘텐츠에 밀려 TV 프로그램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진 요즘, 눈에 띄는 반응이다. 인도 여행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준 게 통했다는 평가다.
기차표를 100달러에 사고, 갠지스강에 띄우는 디아(작은 초)를 정가의 30배에 산 내 친구는 <태계일주 2> 속 바가지를 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음화는 궁금하단다. 인도가 이렇게 치명적인 나라다.
인도 여행의 찐매력은 다음주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인도 여행은 기차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르는 사람과 같이 앉고, 빈틈만 보여도 엉덩이가 밀고 들어오는 기차 역시 상상 이상이다. 아, 인크레더블 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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