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50년 흑자의 비결, 나 없는 공장집 딸
부친 성기학 회장 "넌 공장집 딸" 강조
1974년 이래 '적자 제로'…'나를 버린 삶' 실천 이어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의류 생산 공장에 자주 다녔던 아이. 구스다운 재킷에 들어가는 깃털 충전재를 신기한 듯 가지고 놀던 소녀는 커서 영원무역그룹의 부회장이 됐다.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2002년 영원무역에 입사해 2016년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 2022년 그룹 부회장에 선임됐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개척한 영원무역이 설립된 건 1974년이다. 성기학 회장이 대학생이던 시절 설악산에 오르면서 구스다운 재킷을 입은 일본인과 우연히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국내에 등산복이라 부를 만한 스포츠웨어가 사실상 전무했던 시절, 구스다운 재킷에 매료된 성 회장은 1974년 영원무역을 세우고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개척했다. 1980년에는 업계 최초로 해외투자에 나서 현재 방글라데시, 베트남, 엘살바도르,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에 9만명의 직원을 두고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노스페이스, 룰루레몬, 파타고니아 등 세계적인 아웃도어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비결을 두고 성 부회장은 "(아버지인 성기학 회장이) 회사와 개인을 철저히 구분하고 회사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성 부회장이 어릴 적 아버지를 도왔던 영수증 분리는 단적인 예다. 법인카드가 없던 시절 성 회장은 주말마다 한 주 동안 쓴 비용의 영수증을 가지고 와 성 부회장에게 분류 작업을 맡겼다. 기준은 단순했다. 회사 일로 쓴 영수증에는 법인, 개인 일로 쓴 영수증에는 개인이라고 쓰면 됐다. "회삿돈을 어떤 이유로든 개인 용도로 손대지 마라. 절대로. 회삿돈은 회사를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성 부회장에게 철칙이 됐다. 그는 지금도 "회삿돈은 회삿돈, 내 돈은 내 돈"이란 가르침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경영수업’으로 손꼽는다.
성 부회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견 없이 흡수했다. 생산을 중시하는 아버지가 직원 모두가 한가족이라는 뜻에서 강조한 "넌 공장집 딸"이라는 말을 늘 가슴에 담았다. 사춘기 시절에도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울 아빠 공장에서 일하셔. 나 공장집 딸이야"고 말할 정도였다. "공장집 딸이 너무 화려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은 "돈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다.
책에서 성 부회장은 2세 경영인에게 쏠리는 선입견으로 인한 고충도 토로했다. "흔히 일은 고용한 임원들이 다 하고, 2세 경영인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놀고 먹는다고 생각"하는 통념에 "어떤 인생이든 꽃길만 펼쳐지는 삶은 없다"면서 "나 또한 이 자리에 서기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것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성 부회장을 경영의 길로 인도한 건 아버지 성 회장이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될 성싶은 나무라고 생각했는지 입사를 권했다. 입사하면서 성 부회장은 자신을 포기해야 했다. 먼저 꿈꾸던 청소년을 상담하는 카운슬러의 꿈을 접어야 했고 "(직원·거래처와의 관계에서) 나부터 챙기려고 하는 순간 나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 있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나’를 버렸다. 성 부회장은 "대표이사에게 ‘나’는 없다. (중략) 대표이사가 ‘나’를 챙기려 한다면 이는 목숨보다 소중한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라며 "신뢰를 쌓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나’는 없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은 해야만 하는 일에 우선일 수 없다. 해야만 하는 일을 먼저 하고 그 다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틀린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시간적 여유 역시 성 부회장이 포기한 것 중 하나다. 성 부회장은 매일 10시에 취침해 새벽 3시에 눈을 뜬다. 기상 후 전날 챙겨온 보고서부터 시말서까지 온갖 결재 서류를 처리하고 출근 후에는 짧게는 15분 길게는 1시간 단위로 빽빽하게 잡힌 회의를 포함해 일별, 주별, 월별, 분기별, 연도별로 촘촘하게 잡힌 일정을 수행한다. 저녁에는 업무 관련 인사들과 식사 미팅을 하고 9시쯤 귀가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남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사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말에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턱턱 막힌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많다"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은 적도 많다"고 토로한다.
결과적으로 걸어보지 못한 길에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지만 그는 "회사 경영은 여러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고 동시에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힘들고 고달플 때도 있지만 나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영원한 수업 | 성래은 지음 | 은행나무 | 232쪽 | 1만7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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