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틀렸네, 다 틀렸네... 공부하긴 다 틀렸네"

이상자 2023. 6. 3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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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 미달로 수업 중단 소식에 애달파 하는 80대 학생들을 보며

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여러 면 소재지에서 모인 '마을한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씁니다. <기자말>

[이상자 기자]

관련기사 :  학생 10명 안 되면 마을학교 문 닫는답니다

인원수 부족으로 마을 학교 문을 닫게 되었다고 어르신 학생들에게 말하고 와서 심란하지만 남은 수업이라도 성실하게 하고 싶다. 교과서 두 권만 끝내면 초등부 과정을 끝내는데 그걸 못하고 중단하게 되니 마음이 착잡하다. 어떻게 해야 남은 삼일의 수업을 뜻깊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숙제 검사를 시작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학생들
 
 칠판 앞에 가까이 가서 필기하는 장○○ 학생
ⓒ 이상자
 
기OO 학생의 숙제 검사를 하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까지 기OO 학생은 그림에 맞는 글을 재미있게 썼다. 이번에도 그림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내용이 그림과 상관없었다. 다음은 기OO 학생(89)의 글이다.
"6월 19일 월요일 마을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 공부하면서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유월 말까지만 공부하면 못 하게 될 것 같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한동안 정신이 멍하더군요. 불과 일 년 안쪽이면 잘 끝날 건데 청천병력 같군요. 선생님께 죄송하고요.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유야 어떻턴간 졸업을 못 한다는 것은 창피한 생각도 드는군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 마을학교 수업 중단에 대한 글 마을 학교 숙제다. 그림에 맞는 글 짓기를 해야 하는데 ,마을 학교 수업 중단 소식을 듣고 마음을 표현한 글
ⓒ 이상자 기 아무개학생
 
맞춤법은 두 개 틀렸지만 뜻 전달은 충분하니 이만하면 훌륭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니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던 공부를 중간에 중단해야 하는 심정을 이렇게 글로 표현을 잘해서 기쁘기도 하고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한 보람이 있구나.' 나도 중도에 수업을 그만두게 되어 아쉬운 마음 표현할 길 없어 우울했는데 이런 글을 접하게 되어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80대를 훌쩍 넘긴 연세에 자모음부터 배워서 글로 이만큼 자신의 생각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나를 행복하게 했다. 

힘없고 고독한 어르신들이 외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아 마음이 짠해졌다. 수업은 세 번이면 끝이다.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자, 나는 이 분의 숙제를 소장하고 싶어졌다. 다음 수업 가면 내게 주십사 부탁드려야겠다. 어쩌면 기OO 학생과의 수업은 내생에 다시 없을 것 같아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이 글을 촬영해 담당자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어서 담당자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숙제 검사를 끝내고 요즘 공부에 흥미가 붙은 최OO 학생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핸드폰 검색을 시작했다. 마을 학교가 그만두게 된 것을 가장 애달파 하는 학생이다. 가까운 곳으로 최OO 학생이 다닐 만한 성인 문해 학교를 찾아보니 마땅한 곳이 없다. 시내에 한 군데 있지만 오전 수업을 5일 동안 하는 곳이다. 이 학생이 월, 수, 금 오전에 노인 일자리를 하러 다니니 갈 수가 없다. 더군다나 농사도 짓는다.

그동안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석했으면 89세 기OO 학생만큼 한글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최OO 학생은 오일장에 장사하러 다니느라 날짜가 겹쳐 결석을 많이 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 학생이 공부할 만한 곳을 찾다 보니 다른 지역에 한 군데 있었다. 그런데 시내버스로 45개 정류장을 이동해서 도보로 12분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도 다닐 거냐고 전화로 여쭈니 그래도 공부하겠다고 했다.

그쪽 선생님께 학생 한 명을 보내도 되겠느냐고 문의했다. 허락한다 해도 최 학생이 일주일에 이틀을 그 먼 곳까지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말은 갈 수 있다고 해도 86세 고령인 데다 오전에 노인 일자리 끝내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과 수요일이 수업 날인데 노인 일자리도 월, 수요일이다. 최 학생은 멀어도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쪽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수업장소가 멀으니까 시간이 맞으면 버스정류장에서 선생님이 픽업하겠다는 약속도 해주었다. 잘 됐다. 성인문해교원은 이렇듯 봉사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할 수 있다. 나는 허공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계속 공부할 방법이 있을까

이때 카카오톡이 울렸다. 시청 담당 주무관으로부터 답장이다.

"네, 선생님! 저도 어르신 글을 보니 너무 어르신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네요. 개인적으로도 어르신들이 계속해서 공부했으면 좋겠으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네요, 몇 분 추가로 모시는 거는 힘든 거겠죠?"

아파서 결석하는데 어쩌지 못하는 것을. 그리고 이제 새로운 어르신들이 온다고 한들 진도를 따라올 수 없는데 답답하다. 이분들은 6학년 단계를 배우는데 어떻게 자모음도 모르는 분들하고 함께 수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카카오톡에 답글을 썼다. 지혜의 나무 11권 4단원 수업 때 학습활동 하기 문제 풀기로 한 '밀양 아리랑'을 불러본 후 노랫말 짓기 문제가 있는데 학생들이 지은 노랫말을 담당자에게 보냈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 노랫말로 부른 영상도 함께 보냈다. 최 학생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로 했다는 글도 보냈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선생님한테 공부하긴 다 틀렸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잘 배웠소 잘 배웠소 잘 배웠소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잘 배웠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담당 주무관한테서 답장이 왔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 방법을 찾아볼게요."
 
방법이 생길까? 난 마지막 남은 3일간의 수업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의 공부를 총정리 해야겠다. 출판기념회 영상과 소풍 갔을 때 영상도 준비해서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께 손편지를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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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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