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친구에게 고래가 보여준 비밀의 공간

문종필 2023. 6. 30. 09: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그래픽 노블 '고래도서관'

[문종필 기자]

지구는 급속도로 뜨거워지고 있다. 남극에 있는 빙하는 빠르게 녹고, 해수면은 급격히 상승한다. 커다란 난류성 어종이 동해안에서 잡히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산화탄소량의 증가로 이상기후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장마철에 적당히 내리는 폭우는 낭만적이기보다는 위협적이다. 반지하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많은 재산손실과 인명피해를 낳는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인간의 탐욕이 문제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이제 없다. 근대화 이후, 인간은 오랜 시간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이기적으로 자신만의 이득을 챙겨왔던 것이다.

근현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전쟁과 학살을 생각해 본다면 인간이 괴물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니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나 환경에 대한 태도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이러한 시대에 예술가들은 어떤 방식이든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었던 예술가들은 잘못 돌아가는 이 시대에 어떤 방식이든 질문을 해야 했다. 각자 자신만의 영역에서 이곳 지구의 위험과 불합리를 이야기해야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다. 이것이 예술가들에게 긍지였다. 만화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다양한 작품들이 최근에 빈번히 출간되고 있는 것은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다. 오늘 독자들에게 소개할 텍스트도 이 범주에 들어온다. 바람북스에서 출간된 지드루와 유디트 바니스텐달의 공동작품 <고래도서관>(2023)이 그것이다. 
 
▲ [고래도서관] 표지  책 표지입니다.
ⓒ 문종필
 
폴(가칭)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바다 우체부이다. 그는 편지를 배달할 때, 자전거나 트럭이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물기로부터 편지를 보호하기 위해 바다표범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가슴에 품고 소중한 사연을 가득 담아 바다를 횡단한다.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건넌다. 폴에게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하지만 일을 포기하기에는 이 위험한 직업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는 거침없이 바다로 향한다. 기술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라져가는 직업이지만 폴은 보람을 느끼며 고단한 현실에서 숨을 쉰다. 

그런 폴에게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바다에서 커다란 고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두컴컴한 밤에 안경을 끼지 않고 돌아다니던 고래가 실수로 폴의 작은 배와 부딪친 것이다. 배는 엎어졌고 기울었지만, 선량하고 순수한 고래와의 만남이 배려와 친절을 기반으로 했기에 이 둘은 거부감없이 친구가 된다.

서로 궁금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고래는 인간을 무작정 믿을 수 없다. 폴과 같이 선한 목적을 품은 인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고래를 포획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폴과 고래는 사람들을 피해 월식이 되는 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기다리던 개기 월식이 다가왔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출산으로 인해 폴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고래는 해가 밝아올 때까지 바다에서 폴을 기다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래잡이 사냥꾼 눈에 띄어 죽임을 당한다. 인간은 고래의 가치를 모른다. 
 
지난번에 가을 낙엽에 대해 물어봤잖아. 잎사귀를 떠나보낸 나무의 슬픔에 대해서도…그래서 내가…
좋아. 결심했어! 오늘부터 난 낙엽을 모을 거야 이토록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나뭇잎들을.
 
폴은 고래와의 첫 만남에서 가을날의 낙엽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사실을 듣고 흥분한 고래는 육지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품었다. 이런 사실을 귀담아들었던 폴은 고래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가을 낙엽을 선물한다.
 
▲ 고래도서관 52~53쪽.  고래도서관 본문입니다.
ⓒ 지드루와 유디트 바니스텐달
 
고래는 낙엽을 선물 받고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의 방식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고래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고래도서관을 선물한다. 이 도서관은 고래 몸속에 있는 커다란 도서관으로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소중한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런 가치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환경'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지만, 바다 우편배달부라는 특수한 설정과 유디트 바니스텐달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작가의 그림체로 독자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잔잔하면서도 시적인 문장은 아프고 슬픈 고래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든다. 여기서 아름다움의 대상은 역설적으로 고래의 죽음이다. 이 작품은 가을 낙엽처럼 고래의 죽음도 아름답게 만드는 신기한 마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점들로 인해 우리는 고래의 아픔을 쉽게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고래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던,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당위성보다 이런 잔잔한 '정치성'의 지속일지도 모른다.
 
▲ 고래도서관 68~69쪽.  고래도서관 본문
ⓒ 지드루와 유디트 바니스텐달
 
만화는 칸과 칸의 변주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 독자분들은 칸과 칸 사이에 벌어진 홈통을 상상력으로 채워보시기를 바란다. 이 재미와 즐거움이 그래픽 노블을 읽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행위 자체가 동시대의 기후 위기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면, 이것만큼 선한 영향력은 없다. 독자들에게 이 텍스트를 추천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