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못 쉬고 죽다시피 했지만... 힘닿는 데까지 물질할 생각"
[완도신문 유영인]
며칠 전부터 긴 장마가 시작되었다.
오늘 만날 주인공은 어떤 분일까? 전화 통화로는 안 만나 준다고 했다는데? 포기하고 다른 누구를 만나러 갈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청산면 모도 서리에 사는 조정희 자매 중 동생을 만나러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오매, 날도 안 좋은디 오지 마랑께 오네 잉″
2주 전 글을 썼던 조정희 해녀가 동생이 인터뷰를 안 한다고 했다며 헛걸음을 한 것 같단다. 그러면서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동생이 "언니하고 생활하는 것이 똑같은디 먼 할 말이 있것냐"고 만나는 걸 꺼렸다는 것. (관련 기사: "암 수술 후 쉬는데 몸이 근질근질... 다시 물질하니 마음이 편해" https://omn.kr/24e17)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 봐 잉″
잠시 후, 조 해녀는 동생을 데리고 나타났다.
″나하고 똑같이 생겼제, 내가 여섯 살 때부터 키운 동생이여″
우리 때 제주 아기들은 무조건 물질을 배웠어. 나도 언니하고 같이 할머니한테 물질을 배웠는디 우리 할머니가 유명한 상군이었어. 92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시다가 93세에 돌아가셨제.″
할머니는 물질은 엄하게 가르쳤어도 손녀들을 남다른 애정으로 키우셨다고 한다.
″언니하고 나하고 어릴 때부터 장난이 심했지만 할머니가 매 한번을 들지 않고 우리를 키웠어. 항상 할머니를 의지할 수 있게 믿음을 주시고 사랑으로 키워주셨어.″
그러한 조 해녀가 성인이 되자 결혼한 언니 집에 놀러 왔다고 한다.
″내가 열여덟 살 때 언니 집에 그냥 놀러 왔어요. 언니 옷 빌려 입고 소안도 어디론가 첫 물질을 따라갔는데 제주에서 할머니에게 물질을 배웠어도 소안 바다를 잘 몰라서 진지리(거머리 풀) 밭에서 들어갔다 나왔다만 반복한디, 그 광경을 언니가 보고 동생이 짠해서 울고만 있는 거여. 물질이 끝나고서 둘이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조 해녀는 마치 며칠 전에 겪은 일처럼 생생히 기억 해냈다. 조 해녀는 어릴 때부터 언니를 졸졸 따라 다녔다고 한다.
″우리는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녔는데 일로 헤어지면 울고 만나면 또 반가워서 울고. 눈물을 참 많이 흘렸제. 아무래도 할머니와 살다 보니 할머니를 의지한다고 해도 자매의 정이 그 누구보다 끈끈했어.″
결혼은 언니가 사는 동네 청년과 연애로 했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전라도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무지 꺼렸어요. 전라도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면 흉을 보고 그랬거든, 그때 제주에는 도비상기(엿장수)라고 전라도 사람들이 엄청 많이 들어와서 살고 있었어요.
아무튼 전라도 사람을 무척 반대했는데 나 또한 얼마나 웃긴고 하면 언니가 형부를 데리고 결혼하겠다고 제주에 왔는데 동네 사람들한테 창피하다고 형부 신발을 멀리 던져 버렸어요. 그리고서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어린 마음에 왜 그랬는지.″
그런 조 해녀도 결국에는 모서마을 청년과 연애로 결혼했다고 한다.
″해녀들이 육지에 원정 물질을 오면 보통 서너 명이 방을 얻어 숙식을 해결하면서 물질을 해요. 그런데 외롭고 그러니 정에 약해져요. 나도 스물두 살에 아저씨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는데 언니가 어떻게 알고 형부와 함께 절대 반대를 하는 겁니다.″
이유는 언니 혼자 육지 남자와 결혼하면 됐지 동생까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언니가 어떻게 연애를 한 지 알아내서 밤이면 나를 꼼짝 못 하게 지켜요. 그러면 가만히 있다가 언니가 잠이 들면 아저씨를 만나러 몰래 도망가는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스물네 살에 결실을 맺어 결혼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결혼 후 조 해녀는 3남매를 두었는데 교육열이 대단했다고 한다.
″딸 둘에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초등학교 때 전부다 서울로 전학을 시켰어요, 서울에 집을 사고 애들을 전부 보냈습니다. 애들 밥은 시어머니가 따라가서 해결했어요. 그런데 큰 딸이 고등학교 2학년때 시어머니가 미국에 살고 있는 시아주버님한테 가버렸어요. 그래서 물질을 쉴 때는 남편이랑 같이 애들 집에서 살고 물때에 맞춰서 내려오고 그때는 돈도 잘 벌고 잘 쓰고 기름값으로 길에다 돈을 깔고 다녔어요.″
해녀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부탁하자 젊어서 여수에서 겪은 이야기를 꺼냈다.
″삼십 대 초반에 여수 초도로 해삼바리를 갔어요, 그런데 미끼(물 쐐기)에 쏘여 버렸어요. 이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은데 꼭 해녀들의 입술을 쏘는 겁니다, 제주에서는 미끼에 쏘이면 남자 귀신이 여자와 입 맞춘다고 하는데 이것에 쏘이면 아파서 숨을 못 쉬고 거의 죽다시피 해요. 물질은 하도 못 하고 저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고 돌아왔습니다.″
꿈을 묻자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이라 했다.
″건강하게 힘닿는 데까지 물질을 할 생각입니다. 제주도처럼 군에서도 해녀들에게 관심을 갖고 고무옷(슈트)이라도 한 벌씩 사주면 좋겠어요.″
조 해녀는 소박한 꿈을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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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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