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두계천에 전해오는 도깨비 이야기

이완우 2023. 6. 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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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역 출발, 마천목장군길 1코스 걷기

[이완우 기자]

 곡성역 마천목장군길 출발점
ⓒ 이완우
 
곡성역과 섬진강 기차마을 사이의 곡성천을 따라 가면서 마천목장군길이 나 있다. 이 길은 섬진강 둘레길이면서 섬진강 자전거길도 된다. 마천목(馬天牧, 1358~1431) 장군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출중한 무신이었다. 고려 말에는 왜구를 토벌하는 데 공헌을 하였고, 조선 개국 과정에는 태종 이방원의 충신으로 전라병마도절제사를 역임하였다.
마천목장군길 1코스는 곡성역에서 섬진강 기찻길인 침곡역까지 5.4km 구간이다. 이 길 2코스는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5.6km 구간이며 도깨비 마을이 있고 섬진강 변에 도깨비 천왕상이 있다. 이 길 3코스는 가정역에서 압록유원지까지 4.5km 구간으로 가정역 출렁다리가 명소이다.
 
 마천목장군길 안내판
ⓒ 이완우
 
섬진강 곡성 두계천의 도깨비 어살

곡성역에서 8km 지점에 마천목 장군의 도깨비 어살 유래비가 있다. 그는 장흥의 바닷가 회령에서 태어났는데, 회령은 훗날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1597년)을 앞두고 12척의 전선을 확보한 의미 있는 곳이다.

그가 15세 되던 때에 가족이 곡성 오지면 당산마을로 이주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고려 건국 시기의 명장 신숭겸(?~927) 장군 후손이므로 곡성 지역과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효성이 지극한 마천목은 섬진강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섬진강 두계천(杜溪川)에 도깨비 설화가 전해온다. 소년 마천목이 물고기를 잡고자 돌로 어살을 쌓으려 했으나 강물이 거세어 쉽지 않았다. 그는 우연히 푸른색의 빛나는 돌을 주웠는데 그것은 도깨비의 대장이었다. 마천목은 도깨비들에게 강에 어살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하룻밤 사이에 도깨비가 만든 어살이 생겨났다고 한다.
 
 침실 습지 제방 마천목장군길
ⓒ 이완우
 
섬진강 상류 관촌의 도깨비 보
 

섬진강 상류인 전북 임실 관촌에도 마천목 장군이 주인공인 도깨비 보 설화가 전해오고 있어 흥미롭다.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에 섬진강 도깨비 설화가 기술되어 있다.

섬진강 상류인 임실 관촌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4km쯤 올라가면 방수리 방동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의 장제무림(長堤茂林)은 강둑을 보강하여 마을의 농지를 보호하는 수백 년 된 숲이다.

마천목 장군이 이 마을의 농경지에 물을 대려고 강물에 보를 쌓는 도중에 냇가에서 오색으로 빛나는 돌을 주웠다. 도깨비들이 찾아와 그 돌이 자기들 대장이니 돌려달라고 하자 그는 강물에 보를 쌓아달라고 요청했다. 도깨비들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석축 보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마천목장군길 섬진강 자전거길
ⓒ 이완우
 
그는 고마운 도깨비들에게 콩을 볶아서 나누어 주었는데 콩이 부족해 한 도깨비가 콩을 못 먹었다. 이 도깨비가 심통이 나서 보 중간에 돌 몇 개를 뽑아 버렸다. 그 후로 도깨비가 헤살부린 곳은 보수를 해도 이내 허물어지곤 했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은 1413년 가을에 사냥을 위해 임실 관촌 지역을 방문했다. 이때 마천목 장군이 어가를 호위하며 동행하였고, 그를 주인공으로 한 도깨비 설화가 섬진강 상류 이 지역에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강물이 세차게 흐르는 곳에 어살이나 보를 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조직이나 여러 사람이 협동하여 섬진강에 어살과 보를 쌓았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출중한 무장인 마천목 장군을 도깨비들이 도와서 강물에 어살이나 보를 쌓았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겨서 설화로 전승된 것이다.
 
 섬진강 원경
ⓒ 이완우
 
마천목 장군의 전라병영성 축조

마천목 장군은 고려 말기의 무관으로 전라도 나주 출신인 정지(鄭地, 1347~1391) 장군을 도와서 왜구를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조선 초기에는 개국 공신으로 태종 이방원의 충신이었으며 세종대왕의 신임을 받았다.

태종 재위 17년인 1417년에 마천목 장군은 59세 나이에 초대 전라도병마절제사로 임명되어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을 전남 강진에 축조했다. 이 성곽은 500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지키는 국방의 튼실한 요새였다.
  
 섬진강 마천목 도깨비 어살 상징물
ⓒ 이완우
 
마천목장군길 1코스 5.4km 구간을 걸었다. 곡성역에서 출발하여 섬진강 침실 습지로 방향 잡으니 시원한 제방 길이다. 초여름 6월 하순의 장맛비로 힘차게 흐르는 섬진강 강물의 풍경을 바라본다. 섬진강 침실 습지가 강물에 잠겼고 퐁퐁 다리 위로 강물이 세차게 출렁인다.

침실 습지 목교를 지나서 섬진강 자전거 길과 강변 17번 도로가 나란히 진행한다. 섬진강 변에서 마천목 장군과 도깨비 설화를 되새기며 걸으니 자연, 역사와 설화가 함께 한 마천목장군길 탐방은 어느덧 침곡역에 도착하였다.

섬진강에 쌓은 어살이나 보와 강진 병영성의 축조물이 모두 석축을 견고하게 쌓는 방식이니 공통점이 있다. 마천목 장군은 남해 바닷가 마을에서 어린 시절에 남해안 어촌과 섬마을의 바닷가에서 돌담을 쌓아 고기를 잡던 전통 어살에 익숙했을 것이다.

남해안 바닷가의 어살이 섬진강 중류로 올라와 곡성의 어살이 되었고 상류를 찾아가 보가 되어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완성했다. 섬진강의 어살과 보의 도깨비 설화는 다시 해안가 강진을 찾아가서 강진 병영성의 성곽으로 자리 잡아 역사의 현장으로 남았다. 마천목 장군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롭고 주제가 선명하였다.
 
 마천목 장군 도깨비 어살 유래비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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