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연예단상⑮] OTT 시대, 극장 갈 이유를 만드는 사람들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을 두고 후배와 논쟁하다가 최근 ‘깨갱’ 한 일이 있다. 개봉 후 얼마 되지 않아 OTT(Over The Top, 인터넷TV)에서 볼 수 있는데 굳이 시간을 내서 굳이 극장까지 가서 볼 이유가 있느냐,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은데 그렇게 돈과 시간과 노력을 유독 영화에 투자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느냐 논리를 내세우는데 할 말이 없었다.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를 끌어와, 복제품도 정성을 다하면 원본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며 ‘우리네 인생을 담아내는 영화야말로 인생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라고 바탕을 깔고. ‘나 홀로’ 문화가 일반화되고, 과장해 말하면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캡슐 안에 누워 생각만 하는 것으로 인생이 대체되듯 나의 눈과 귀를 인터넷세상에 ‘로그 온’ 시키는 시간이 길어지는 일상을 언급하며 ‘오프라인에서 만나 서로 눈빛을 부딪치고 목소리를 들어야’ 서로를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확장되지 않겠느냐고 힘주어 말한 뒤. 영화가 아니라 다른 문화적 행위들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면 “할 말 없네” 물러섰다.
대화는 일단락됐으나 마침표가 찍힌 느낌은 적어 언제가 다시 얘기 나눠봐야지, 마음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그리고 지난 27일, 영화 ‘더 문’(감독 김용화, 제작 CJ ENM STUDIOS·블라드스튜디오, 제공·배급 CJ ENM)의 제작보고회에서 공개된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다 문득 후배 생각이 났다.
대략 메이킹 스토리를 소개하자면. 한국형 우주 SF(공상과학영화) ‘더 문’에는 달 탐사 우주선도 나오고, 달의 뒷면과 앞면도 나오고, 달의 표면 위로 이동하는 월면차도 나오고, 우주복 입고 달에 간 우주인도 나오고,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도 나오고, 우리나라 나로우주센터도 나온다.
우주선 내부는 실제 크기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내부의 작동 장치 하나까지 실제로 우주선에 쓰이는 재질로 부품을 만들었고. 달 표면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움직임 등은 우리나라 우주과학자들의 자문과 고증을 토대로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일들과 과학적 원리와 법칙에 맞게 움직임을 구현했고. 월면차는 당장 달에 갖다 놔도 실제로 운행 가능하게 제작됐고. 우주복 역시 진짜 나사 우주인들이 입는 것과 동일하고. 미국과 우리나라의 항공우주센터 역시 현실 규모로 세트를 지었다.
이러한 하드웨어 안에서 배우 설경구는 상상이 아니라 실감 속에, 마치 나로우주센터라는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가 되어 단원들의 연주를 지휘하듯 연기할 수 있음에 행복했고. 도경수는 우주복 입은 자신의 열기를 생각해 추운 겨울에도 에어컨을 틀고 촬영해 준 스태프의 배려에 감사하며 뜨겁게 연기했고. 김희애는 “아, 우리나라 영화도 이 정도 수준이 됐구나! 할리우드 영화, 미국 드라마의 기술과 세트가 부럽지 않다”고 감탄하며 자신 역시 한 장면 당 수십 가지 경우의 수로 연기 감정을 준비했다.
현장의 스태프 모두는 지극한 정성으로 준비된 하드웨어, 배우들이 성심으로 연기한 소프트웨어를 한 방울의 누수 없이 담고자 땀을 흘렸다. 촬영에 있어 색감과 질감이 다른 지구와 달에 카메라 렌즈를 따로 쓰기로 확정하고 45개 종류의 렌즈를 사용했고, 이를 다섯 종류의 렌즈 군으로 나눠 지구, 달, 우주선 내부 등을 촬영했다. 섬세하게 촬영되고 특수효과로 마무리한 영상은 4K 고화질로 구현됐다. 음향과 음악 등 소리도 600개 채널로 ‘입체적으로’ 완성됐다.
촬영감독 김영호, 미술감독 및 프로덕션 디자이너 홍주희, VFX수퍼바이저 진종현, 사운드수퍼바이저 최태영을 비롯해 영화 ‘더 문’의 제작진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처음에서 끝을 이끈 리더 김용화. 김용화 감독은 이들을 ‘장인’이라고 표현했다.
장인, 예술가의 창작 활동이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예술가를 두루 이르는 말. 영화 본편을 본 것도 아닌데 제작보고회에서 공개한 3가지 영상만 보았을 뿐인데, 사전적 의미 그대로 ‘심혈’, ‘더 문’을 함께한 이들이 작품에 쏟은 ‘마음과 힘’이 느껴졌다.
감독 김용화에게 물었다. 영화 ‘국가대표’(2009)에서는 스키점프 활강의 쾌감을 구현하기 위해 카메라를 직접 고안하고, 영화 ‘미스터 고’(2013)에서는 한국영화 최초로 사람이 아닌 디지털 기술로 탄생한 크리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2017)과 ‘신과 함께-인과 연’(2018)에서는 특수촬영과 컴퓨터그래픽을 비롯한 영화 기술을 총집약해 저승을 구현하고, 영화 ‘더 문’(2023)을 통해서는 진일보한 촬영과 특수효과로 달을 손끝에 닿을 듯 데려왔다. 이야기꾼=소프트웨어로 승부하는 감독이 영화기술=하드웨어에 진심인 이유가 무엇인가.
“흔히 김용화를 테크니션, 기술자로 얘기하시곤 하는데 저한테 가장 중요한 건 감정과 스토리입니다. 다만 같은 감정과 스토리도 어떠한 공간과 배경에서 전하느냐에 따라 전달의 강도와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제가 관객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어떤 감정과 이야기, 일테면 용서와 화해라고 한다면 그것을, 가능하다면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 드리고 싶어요. 그것을 위해서 그 공간과 배경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뿐입니다. (웃음) 절대 영화기술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고요, 영화를 통해 제 상처가 아물 듯 관객 여러분께서도 조금은 위로받고 조금은 힘을 받으시길 바라기에 개봉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나라도 더하려고 손에서 놓지 않고 다듬고 있습니다.”
“저는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강원도 춘천 촌놈이 관객 여러분의 아낌 속에 여기까지 왔어요. 어려운 제작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장인정신을 보전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고 함께해 주고 계셔요. 배우분들께 감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너무 많은, 특별한 혜택을 받는 건데, 얼마나 감사해요. 저만 잘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관객분들께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까 (‘신과 함께-인과 연’ 이후) 5년이 지난 지도 몰랐습니다. 귀한 걸음으로 극장에 찾아와 주실 관객분들께 그 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극장에서 볼 만한 이유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말 함께한 모든 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를 해서 만든 영화, 관객분들이 평가해 주시고 체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야기는 장황했으나 처음으로 돌아가서, 후배 생각이 문득 났던 이유는 “함께 보자”고 청하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이 정도 정성으로 무엇을 만들어 준다는 것, 선물이다.
‘더 문’(8월 2일 개봉)뿐이랴. 올여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밀수’(감독 류승완, 주연 김혜수 염정아, 7월 26일 개봉),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 주연 하정우 주지훈, 8월 2일 개봉)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 주연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8월 9일 개봉)도 피와 땀으로 완성한 영화들이다. 다양한 색과 향의 성찬이 차려졌으니 취향대로 선택할 자유가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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