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내용에 '내수용' 사과문…진정성 찾아볼 수 없는 울산현대
무거운 책임감도, 통렬한 반성도 없다. 사상 초유의 인종차별 사태에 대한 울산 현대 구단의 모습이다. 김광국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엔 고개를 갸웃할 만한 표현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사과문은 인종차별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을 위한 게 아니라 한국어로만 된 이른바 ‘내수용’ 사과문에 그쳤다. 인종차별 사태에 대한 울산 구단의 사과에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들이다.
앞서 울산 구단은 지난 28일 구단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김광국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올렸다. 소속 선수 4명, 구단 직원 1명이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진 뒤 17일 만이자, 슬그머니 구단 자체 상벌위원회를 열고 자체 징계를 논의한 직후도 아닌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앞서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의 ‘솜방망이 처벌’ 비판 속 울산 구단의 자체 징계 수위에 관심이 쏠렸는데, 결과적으로 울산 구단은 ‘무징계’로 답했다. 앞서 연맹 징계 대상에서 빠진 ‘주장’ 정승현에 대한 홍명보 감독의 1경기 출장정지 처분, 구단 직원의 보직해임이 구단 상벌위를 통해 결정된 구단 차원의 추가 징계 전부였다.
무징계만큼이나 팬들의 공분을 산 건 김광국 대표 명의로 올라온 사과문의 내용이었다. 우선 사과문에는 연맹의 1경기 출장정지·1500만원 벌금 징계를 받은 박용우·이규성·이명재와 홍 감독이 징계를 준 정승현의 이름이 A·C·D 등 영어 이니셜로 표기됐다. 직접 실명이 두 차례나 거론돼 인종차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태국 출신의 사살락 하이프라콘(부리람 유나이티드)마저 ‘B선수’부터 ‘동남아 쿼터 선수 이름’, ‘대화에서 언급된 동남아 쿼터 선수’, ‘그 선수’ 정도로만 적었다. 구단 차원의 사과문을 올리는데도 누가 잘못을 저질렀고, 누구에게 사과를 하는지는 스스로 감췄다.
또 사과문엔 ‘선수들이 특정 인종이나 개인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라는 연맹 상벌위 판단을 굳이 명시했다. 구단 차원의 징계와 연맹의 징계는 무관한데도 연맹 상벌위 판단을 사과문에 끌어들여 ‘방패’로 삼은 셈이다. 앞서 선수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을 때 연맹보다 먼저 징계를 내렸던 전례들이 적지 않은 이유, 연맹의 징계 이후 울산 구단의 자체 징계 수위에 관심이 쏠렸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정작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에는 연맹 상벌위 판단만 적혔을 뿐, 전날 진행한 구단 상벌위 판단은 쏙 빼놨다.
뿐만 아니다. 김광국 대표이사가 적은 사과문에는 고개를 갸웃할 만한 표현들이 수두룩했다. ‘인종차별이라는 주장이 발생하면서’, ‘연맹 상벌위가 판단한 것처럼 비하나 조롱의 의도가 없다고는 하지만’, ‘관련 선수들은 본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등 표현들은 분명 이번 사태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의 뜻과는 거리가 있는 표현들이었다. 의도적인 인종차별은 아니었고, 이는 연맹 상벌위가 판단한 것이라는 변명의 반복이기도 했다.
사과문을 읽은 팬들의 ‘실소’를 자아낸 대목은 “이제 우리 팬들의 차례”라는 울산 팬들을 향한 김광국 대표이사의 당부였다. 인종차별 사태와 관련해 선수들과 구단을 질책하되, 선수들이 실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더 응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상 초유의 인종차별 사태, 국제망신으로도 이어진 논란에 대한 사과문의 ‘황당한 끝맺음’이었다.
논란이 계속 이어지는 건 비단 내용만이 아니다. 앞선 사과문의 모든 내용을 오직 한국어로만 적었다는 점은, 이번 인종차별 논란에 대한 울산 구단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대목이자 꾸준히 비판을 받는 지점이다. 인종차별 피해를 당한 건 사살락을 비롯해 태국과 동남아인들인데, 정작 한국 팬들만 읽을 수 있는 이른바 내수용 사과문으로 갈음한 셈이다. 국내 팬들에게 보여주기식 사과문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구나 울산 구단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이번 사과문만 유독 ‘울산현대축구단이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라는 텍스트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이미지로 대체했다. 그간 구단 공지 등을 전할 때 텍스트로도 관련 내용을 함께 전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지난 12일 이번 논란과 관련된 첫 사과문을 올릴 때도 울산 구단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이미지에 담긴 사과문 문구도 텍스트로 함께 올렸다. 그러나 이번엔 이미지만 올리면서 태국 등 동남아 팬들은 번역기로도 사과문을 읽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번 논란에 대한 울산의 스탠스를 돌아보면 다분히 의도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만하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사과와 반성의 뜻이 있다면 태국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영어로 된 사과문을 올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민감한 인종차별인 데다 다른 나라와 연관이 된 만큼, 피해 당사자와 함께 분노하고 있는 동남아 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제 팬들을 위한 차례”라고 외치기 이전에 먼저 했어야 할 일이었다. 울산 구단이 사과문을 내고도 거듭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다.
울산 구단은 사살락과 소속 구단, 소속 협회에 공식 레터를 통해 설명과 사과의 뜻을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언제, 어떤 내용으로 공식 레터를 보낼지는 알리지 않았다. ‘사살락이 박용우를 용서한다는 답변을 했다’는 게 울산 구단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인 것처럼, 앞으로 어떻게 사과의 뜻을 전할지, 또 실제 공식 레터를 보내기는 할 것인지 등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울산 구단의 행보를 돌아보면 합리적인 의심이다.
처음부터 상식적인 절차와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일은 더욱 복잡하고 지저분해졌다. 이미 연맹 상벌위 당시부터 울산은 ‘친히’ 해외 징계 사례들을 첨부하면서 징계와 관련해 ‘총재 구단(권오갑 프로축구연맹 총재 겸 울산 구단주)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는 비웃음을 샀다. 이후 선수들에 대한 무징계, 황당한 내용의 사과문 등 모든 과정이 꼬였다. 선수들을 감싸기만 할 게 아니라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납득할 만한 징계와 진정성 있는 사과문 등 후속 절차들을 밟아가는 게 필요했다. 사상 초유의 인종차별 논란을 조금이라도 더 잘 매듭지을 수 있었던 기회, 울산은 스스로 그 기회를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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