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박영수·양재식 영장 기각사유… 암초 만난 '50억 클럽' 수사
곽상도 뇌물죄 무죄 이어 또 제동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로부터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71)와 그의 측근 양재식 전 특검보(57)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30일 모두 기각됐다.
박 전 특검의 신병을 확보해 그의 딸이 분양받은 대장동 아파트의 뇌물성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려 했던 검찰 수사에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 특히 수사팀을 재편해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권순일 전 대법관 등 나머지 '50억 클럽' 멤버들을 수사하려 했던 검찰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무엇보다 두 사람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사유가 심상치 않다. 박 전 특검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판사는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등에 관해 사실적·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양 전 특검보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판사 역시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등 범죄사실 중 일정 부분에 대해 사실적·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나아가 "피의자가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법원 "'다툼의 여지' 있고,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어"… 금품 실제 수수 여부 소명 부족 지적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남욱씨 등 민간업자들의 컨소시엄 관련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약속받고 8억원을 수수한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수재 등)를 받는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이 양 전 특검보와 함께 2014년 11∼12월 컨소시엄 출자와 우리은행의 여신의향서 발급과 관련해 남씨 등으로부터 200억원 상당의 이익과 단독주택 2채를 약속받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우리은행 컨소시엄 참여가 무산된 뒤 약정 수고비는 50억원으로 줄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우리은행은 애초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최종 불참했고, 대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만 참여하겠다며 1500억원의 여신의향서를 제출했다.
그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우리은행 여신의향서 발급 청탁 대가로 5억원을 수수한 혐의와 2015년 1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 때 선거자금 명목으로 남씨로부터 현금 3억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양 전 특검보는 박 전 특검과 남씨 등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 사이에서 실무적 역할을 담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날 박 전 특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본건 혐의의 주요 증거인 관련자들의 진술을 이 법원의 심문 결과에 비춰 살펴볼 때 피의자의 직무 해당성 여부, 금품의 실제 수수여부, 금품 제공약속의 성립 여부 등에 관해 사실적·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에 비춰, 현 시점에서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보이는 바, 현 단계에서는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인다"고 사유를 밝혔다.
또 양 전 특검보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이민수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양 전 특검보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자료와 이 법원의 심문결과에 비춰 볼 때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등 범죄사실 중 일정 부분에 대해 사실적·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여 피의자에게 방어권을 보장해줄 필요성이 있는 점, 피의자의 직업, 수사기관 및 법원에서 피의자가 보여 왔던 태도,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및 이에 더해 수사기록에 나타난 여러 사정과 피의자와 변호인의 변소 내용 등을 감안할 때 현 단계에서 피의자가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비춰 볼 때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범죄혐의 소명·구속 필요성 모두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판단… 검찰 '영장 재청구'
현행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1항은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라며 구속사유로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등 세 가지를 들고 있다.
그리고 같은 조 2항에서 '법원은 제1항의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우려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범죄의 중대성'은 구속사유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이 부분은 구속영장을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다.
즉 검찰이 '범죄가 중하면 그만큼 도주나 증거인멸의 가능성도 당연히 높아지므로 구속의 필요성도 커진다'는 입장인 반면, '도주 가능성이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범죄의 중요성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입법 연혁적으로 과거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범죄의 중대성'을 구속사유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불발됐다는 점도 법원이 내세우는 논거 중 하나다.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박 전 특검과 양 전 특검보의 혐의들이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법원이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할 수 있는 이유다.
주목할 건 이날 두 사람의 영장 기각 사유에 '사실적·법률적 측면에서의 다툼의 여지'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박 전 특검에 대해서는 박 전 특검이 실제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로부터 돈을 받았는지, 혹은 돈을 받기로 약속했는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결국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했다는 지적으로 볼 수 있다.
법리적으로도 '금융회사등의 임직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했을 때' 성립하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수재 혐의 성립을 위한 박 전 특검의 '직무 해당성'이 의심간다고도 했다. 뇌물죄에서의 공무원처럼 범죄 성립에 일정한 신분을 요구하는 신분범의 신분이 없는 사람도 신분이 있는 사람과 함께 공범이 될 수는 있지만, 이번 사례의 경우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취지로 읽힌다.
나아가 양 전 특검보의 경우 결정적인 구속 사유인 증거인멸의 우려나 도망의 염려가 모두 없다고 봤다.
통상 법원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는 소명되나 이미 충분한 증거가 확보돼 구속 필요성이 없다'라고 하거나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가 없다'는 점에 방점을 둔 경우 검찰의 수사 동력이 크게 타격을 받진 않는다.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 법원이 기본적인 범죄 성립요건 충족이나 금품수수와 관련된 기초적인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 부족을 지적한 만큼 검찰로선 보강수사를 통해 상당한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않는 한 영장 재청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두 사람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직후 낸 입장문을 통해 "다수 관련자들의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들에 의하면 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 및 약속한 점이 충분히 인정되는 상황에서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향후 보강수사를 통해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곽상도 '뇌물죄' 무죄 이어 영장 기각… '50억 클럽' 수사 전망 흐려져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의심 받는 '50억 클럽' 멤버 중 비교적 구체적인 혐의 사실이 드러난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나머지 50억 클럽 멤버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 전망도 흐려졌다.
이미 검찰은 또 다른 '50억 클럽' 멤버인 곽상도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 받은 퇴직금 등이 대장동 일당이 곽 전 의원에게 공여한 뇌물이라고 보고 기소했지만, 법원은 곽 전 의원의 뇌물수수 및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곽상도 피고인이 실제로 하나은행 임직원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곽상도 피고인이 대장동 개발사업 계획을 보고받고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박 전 특검과 양 전 특검보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역시 두 사람이 대장동 일당의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곽 전 의원 1심 무죄 선고에 이어 검찰이 박 전 특검을 구속하는 데도 실패하면서 '50억 클겁'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박 전 특검에 대한 신병을 확보한 뒤 박 전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로부터 받은 자금의 성격 등을 규명하려고 했던 검찰의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박 전 특검의 딸은 화천대유에서 11억원을 빌렸고, 2021년 6월 화천대유가 소유한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아 8억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얻는 등 약 25억원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돈이 박 전 특검이 약속받은 '50억원 약속'이 실현된 것으로 보고 자금의 성격을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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