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도 긴팔만” 불안·우울 속 건선 환자들

신대현 2023. 6.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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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반·인설 동반하는 ‘건선’…주로 자극 많은 부위 발생
“병변 형태 때문에 목욕탕 이용 등 외부활동 꺼려져”
전문가들, 건선 환자 치료환경 및 인식 개선 강조
정부 “희귀질환으로 학업·취업 어려운 20·30대 실태조사 추진”
박원종(가명·28) 씨와 김정호(가명·27) 씨의 건선 모습.   사진=박원종·김정호(가명) 씨

“여름에도 긴팔 입어요.”

29일 기자와 만난 경기 파주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박원종(가명·28) 씨는 뜨거운 데에 데인 듯 울긋불긋하고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 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발병한 건선 때문에 10년째 고생하고 있는 박 씨는 예전보다 상태가 호전됐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집 밖을 나선다. 박 씨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버스를 탔는데 자리에 앉아 있던 어르신이 팔을 보며 ‘왜 그런 것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냥 ‘햇빛에 많이 타서 그렇다’고 둘러댔다”며 “그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경기 수원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정호(가명·27) 씨도 4년 전 팔꿈치가 가렵고 긁으면 하얗게 딱지가 생겨 병원에 갔다가 건선 진단을 받았다. 김 씨는 피부가 건조할 때 증상이 더 심해져 보습에 민감해졌다.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 하루에 샤워를 두 번씩 했는데, 건선이 생긴 뒤로는 하루에 한 번만 하거나 물만 적시는 경우가 잦아졌다. 샤워를 하고 나서 건선 부위에 보습크림과 바디로션을 덧바르는 일은 필수가 됐다. 김 씨는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가 많다”며 “그게 싫어서 반팔을 입고 토시를 착용한 채 일한다”고 말했다.

건선 환자에게 여름은 괴로운 계절이다. 화상 자국처럼 울긋불긋 도드라진 병변과 하얗게 떨어지는 각질 등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무더운 날씨에도 짧은 옷차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가려움과 따가움은 밤잠을 설치게 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환자와 전문가들은 건선이 전염성질환도 아닌데 겉으로 보이는 병변 형태 때문에 차별받고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며 건선에 대한 올바른 인식 개선과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부 증상 탓 편견·오해…건선 환자 22%, 정신질환 진단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건선은 피부 표피의 과도한 증식과 진피의 염증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난치성 피부질환이다. 피부가 붉어지는 증상인 홍반과 하얀 각질이 일어나는 인설이 주증상이다. 주로 팔꿈치, 무릎, 엉덩이, 두피 등 자극을 많이 받는 부위에 발생하며 얼굴이나 목 등에 생기기도 한다.

건선의 가장 흔한 형태는 판상 건선으로 전체 건선 유형 중 85~90%를 차지한다. 드물게 손, 발바닥에 농포가 생기는 국소성 농포성 건선과 전신에 나타나는 전신성 농포성 건선은 오한, 고열, 권태감, 관절통 등의 증상을 동반해 심하면 응급처치와 입원치료를 받기도 한다. 건선은 관절염을 동반하기도 하며 대사증후군,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건선 환자들은 피부 증상 탓에 편견과 오해를 입고 심리적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실제 지난 2021년 한국건선협회가 발표한 ‘건선환자의 질환 및 치료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건선 치료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환자는 설문 참여자 616명 중 136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22%에 달했다.

박원종 씨도 건선으로 인한 대인기피증을 호소했다. 박 씨는 “고등학생 때 심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건선까지 겹치니까 우울해지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해 한동안 겉돌았다”며 “대학교에 가서도 거의 혼자 지냈고 건선이 생기고 나서는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발병 초기에는 병원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와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는데,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피부가 얇아지고 기운도 없어져 지금은 약을 끊은 상태다”라며 “병원에 잘 가지 않고 밖에서 혼자 햇빛을 쬐거나 밀랍과 바세린, 오일이 섞인 연고를 바르고 자외선 치료기를 사서 대개 집에서 치료한다”고 했다.

김성기 한국건선협회 회장은 협회 차원에서 올바른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한 홍보와 지원, 최신 치료 정보 공유, 책자 발간, 세미나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건선 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회장은 “건선은 옮는 질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용실이나 목욕탕 등 대중이용시설에 가면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린다”며 “건선 환자들의 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건선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불안, 우울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건선이 잘 발병하는 20~30대 젊은 환자 중에서는 회사에 입사한 뒤 어려움을 겪다 사회적으로 고립돼 운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술과 담배에 의존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이 심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증 판상 건선, 산정특례제로 생물학제제 비용 지원 

김동현 대한피부과학회 홍보이사(분당차병원 피부과 교수)도 “건선의 발병 기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면역학적 기전에 작용하는 치료제인 생물학제제들이 개발되면서 건선은 피부 병변 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질병이 됐다”며 “하지만 아직도 건선을 치료할 수 없는 질병으로 생각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아 정신적 스트레스와 삶의 질 저하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김 홍보이사에 따르면 건선 치료는 건선의 중증도, 활성도, 병변의 위치, 환자의 나이, 전신 건강상태, 과거 치료에 대한 반응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 이뤄진다. 치료법은 크게 국소치료, 광선치료, 전신치료, 생물학제제 투여 등이 있다. 

경증인 경우에는 스테로이드제, 비타민D3 유도체 같은 약을 피부에 도포하는 국소치료를 시행한다. 중등증 건선은 주로 국소치료와 자외선을 피부에 조사하는 광선치료를 시행한다. 중증이라면 국소치료, 광선치료를 하고 사이클로스포린, 메토트렉세이트 등의 약물을 사용한다. 통상적 치료에도 반응이 없을 때는 면역 기전에 작용하는 생물학제제를 쓴다.

김 홍보이사는 “건선은 특징적인 임상 소견만 갖고도 진단할 수 있지만, 피부 조직검사를 통해서 건선과 유사한 모양을 보일 수 있는 다른 질환들과의 감별이 필요할 수 있다”며 “인설이 동반된 붉은 피부 병변이 발생했을 경우 피부과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치료해도 증상 호전이 없거나 10% 이상의 피부가 건선으로 덮인 중증 판상 건선 환자들은 중증난치질환자로 인정받아 산정특례제도에 따른 나라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건선 치료에 효과적인 생물학제제를 10%의 비용만 부담하고 투약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 홍보이사는 “산정특례제에 대해 모르는 환자들이 여전히 많다”면서 “건선에 대한 올바른 인식, 치료 과정 그리고 국가 지원제도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잘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부, ‘희귀질환 인식 개선 사업’ 전개

정부는 건선 환자들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다며 인식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지원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장은 “올해부터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을 시작했다”며 “건선 등 중증난치성질환에 대해서도 유관부서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홍보 동영상 제작, 질병 극복수기 공모전, 환우회 간담회 및 세미나 등을 통해 희귀질환 인식 개선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과장은 “최근 국민신문고에 희귀질환 극복 수기를 올리면 우수한 수기를 선정하는 공모전을 시작했고, 희귀질환으로 학업과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30대 젊은층에 대한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들 중에는 자신의 질병이 유전될까봐 임신과 출산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며 “잘못된 정보와 인식으로 안타까운 일이 없도록 인식 개선과 함께 치료 지원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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