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반란 또다시?…"푸틴의 가장 큰 전투상대, 따로 있다"
‘23년 푸틴 철권통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일으킨 무장 반란이 일단락된 이후 서방의 가장 큰 관심은 이렇게 요약된다. 서방의 주요 외신과 각종 싱크탱크는 최악의 위기를 맞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미래를 놓고 다양한 관측을 내놓고 있다. 푸틴 체제의 종말을 점치는 시각부터 푸틴의 권위주의 통치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는 예상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미 외교협회(CFR)의 리아나 픽스 유럽담당 연구원과 미 가톨릭대 마이클 키마개 역사학 교수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은 ‘푸틴 종말의 시작’이란 제목의 글에서 푸틴 통치 체제의 균열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프리고진의 동기와 의도가 무엇이든 그의 반란은 푸틴 정권의 심각한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2의 프리고진 사태가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프리고진의 반란은 푸틴 정권에 대한 첫 번째 주요 도전일 수 있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면서다.
이들은 또 “푸틴의 권력 기반은 친푸틴 성향, 또는 최소한 수동적인 러시아 국민이었다. 이 견고한 기반 위에 푸틴은 엘리트와 국가안보 담당 세력 간 파벌 경쟁 구조를 유지해 왔다”며 푸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지배 구조를 ‘카드의 집’에 비유했다.
이어 “푸틴은 수년간 체스의 달인처럼 능숙하게 말을 움직이고 모든 것 위에 설 수 있었지만 누군가 나와 체스판을 던져 버렸다”며 “전쟁을 통해 배양된 톱다운식 민족주의는 푸틴 정권에 대항할 수 있었으며 프리고진이 마지막이 아닐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허드슨연구소 루크 코피 선임연구원도 비슷한 관점을 보였다. 그는 포린폴리시에 실은 ‘워싱턴은 러시아의 혼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러시아 군사 반란이 철회됐지만 이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프리고진이 사실상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것은 푸틴의 몰락과 내전을 포함한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코피 연구원은 특히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며 러시아 전역에서 독립 또는 자치권 요구가 나타나는 경우 등 몇 가지 예상 가능한 상황을 짚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8일 “이번 반란으로 푸틴의 힘이 약화됐다고 보느냐”는 취재진 물음에 “물론”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고령의 바이든(80) 대통령은 말실수하기도 했다. 그는 “푸틴은 분명히 이라크 전쟁에서 지고 있다. 국내 전쟁에서도 지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침공하며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라크 전쟁’으로 잘못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장악한 크렘린 통치의 미래와 관련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긴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이 여전히 많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지난 주말 무장 반란과 혼란스런 사태의 여파는 푸틴의 독재적 권력, 러시아의 안정 등에 대한 많은 가정을 뒤흔들면서 러시아의 이미지를 위태롭게 만들었다”면서도 “사건이 아직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푸틴의 입지가 얼마나 심각하게 약화됐는지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분석가들의 경고”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과의 대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부른 실패의 내부적 측면을 보여주는 마지막 에피소드(무장 반란 사태)는 많은 것을 시사하지만 이것이 어디로 갈지, 언제 마지막에 도달할 것인지 예측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흠집 난 리더십과 권위를 회복하려는 시도에서 이전보다 더욱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비판 세력을 강압적으로 억누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 알렉산더 가부예프 소장은 “푸틴은 살아남았다. 이는 러시아의 누구도 실은 푸틴에게 도전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며 푸틴이 더욱 억압적인 통치 방식을 휘두를 수 있다고 WP에 말했다.
결국 푸틴 체제의 향배를 가르는 건 러시아 민심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외교관 출신으로 현재 시카고 글로벌어페어스 위원회 소속인 엘리자베스 섀클포드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난 것은 평범한 러시아인들로, 그들은 프리고진의 반란을 서둘러 지지하지도 않았고 반란에 맞서지도 않았다”는 점을 주목했다.
섀클포드는 “푸틴이 서방보다 더 오래 버틸 것인가, 서방이 푸틴보다 더 오래 버틸 것인가 하는 건 더는 질문거리가 아니다”며 “중요한 건 푸틴의 가장 큰 전투는 서방과의 싸움이 아니라 러시아 국민과의 싸움이 될 거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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