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소수인종우대 위헌 판결에 파장 커질듯...바이든 "강력반대"(종합)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대학 입학 시 교육 다양성을 위해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이른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1960년대 민권운동의 성과 중 하나로 꼽히는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미 대입 시스템은 물론, 사회 전반에 파장이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수십년의 판례와 중요한 진보를 되돌리는 조치"라며 "강력히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보수 재편된 美대법, 소수인종 대입 우대정책에 "위헌"
연방대법원은 이날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SFA)이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각각 6대 3, 6대 2로 위헌을 결정했다. 9명의 대법관들은 6명 보수, 3명 진보로 구성돼있으며 각각 지향하는 이념에 부합하는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학부를 졸업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관련성을 이유로 하버드대 관련 결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이나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왔다"면서 "우리 헌정사는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수십 년 선례와 중대한 진전에 대한 후퇴"라며 "민주주의 정부와 다원주의 사회의 근간인 교육에서 인종적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SFA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면서 공립대인 노스캐롤라이나대와 사립대인 하버드대를 상대로 2014년 각각 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는 패소했다. 1·2심은 대학이 인종별로 정원을 할당할 순 없지만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기존 대법 판례를 이유로 두 대학의 손을 들어줬었다.
대입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소수인종 배려 입학 정책은 미국 내 흑인 인권 운동이 활발했던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정부 기관들은 지원자의 인종, 신념, 피부색, 출신 국가와 무관하게 고용되도록 적극적(affirmative)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기반으로 고용 부문에서 차별금지 조치가 실시된 데 이어, 각 대학에서도 소수인종 우대 입학정책이 도입됐다.
당시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흑인 등 소수인종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로 출발했으나, 이후 인종에 따라 대입시 사실상 가산점을 주는 이 정책이 백인과 아시아계를 역차별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졌다. 이에 따라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 미시간, 플로리다, 워싱턴,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 뉴햄프셔, 아이다호 등 9개 주는 공립대에서 인종에 따른 입학 우대 정책을 금지한 상태다.
광범위한 여파 이어질 듯… 흑인, 히스패닉계 직격탄
이번 판결로 대학 입시제도가 전면 재검토되면서 대대적인 파장이 예상된다. 대학 내 인종 다양성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미치는 여파도 클 것이란 관측이다.
당장 대입에서 소수인종 우대를 받던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은 직접적 여파가 불가피해졌다. 미국 의과대학협회 등이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주에서 해당 정책을 금지한 후 의과대학 학생 중 소수인종의 비율이 37% 줄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결정이 이른바 엘리트 대학들의 구성을 변화시킬 수 있고, 특히 의대, 로스쿨 및 기타 전문학위 프로그램에 다니는 흑인 및 히스패닉계 학생의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ABC방송은 캘리포니아주가 이 정책을 금지한 후 일부 학교에서 흑인, 히스패닉계 학생의 입학이 50%가량 줄었다고 전했다.
향후 한국계를 비롯한 아시아계에 미칠 여파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상대적으로 성적이 높아도 우대 정책에서 밀리며 입시경쟁이 치열했던 아시아계 학생들로선 진학 문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란 관측과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는 상징성 측면에서 결국 아시아계에게도 좋지 않은 여파로 돌아올 것이란 분석이 맞서고 있다. 현지 언론들도 아시아계의 역차별 주장을 보도하는 한편, 여론조사에서는 대다수 아시아계 미국인이 차별 철폐 조치를 지지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날 하버드대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따를 것이라면서도 대학은 소외된 이들에게 열려있는 기회의 장소가 돼야 한다며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역시 다양한 배경, 신념, 소득수준, 경험을 가진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SFA 창립자로 이번 소송을 주도한 에드워드 블럼은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대학 입시에서 인종적 선호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모든 인종과 민족 대다수가 반길 결과"라고 환영했다. 반면 하버드대 흑인학생연합, 하버드대 아시아계 미국인 연합 등 일부 학생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유색인종들의 교육 기회를 제한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바이든 "정상적 법원 아냐" 비판… 트럼프 "옳은 길"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당시 보수 우위로 재편된 대법원이 낙태권에 이어 이번엔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이번 결정이 차기 대선에서 '제2의 낙태권' 같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낙태 이슈와 비교해 여론의 지지가 낮기는 하나, 그만큼 이번 사안의 정치, 사회적 파급력이 크다고 현지에서도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도 공화당은 즉각 환영하는 반면, 흑인 및 히스패닉계의 지지가 높은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이 결정이 마지막 말(최종 결정)이 되도록 둘 수 없다"면서 "대법원은 판결을 할 수 있지만, 미국이 상징하는 바를 바꿀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정상적인 법원이 아니다"라고도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대학은 인종적으로 다양할 때 더 강하다고 믿는다"며 "우리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판결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인종 등 교육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들에 "다양한 배경, 경험을 가진 학생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격을 갖춘 지원서 중에서 (학생을) 선택할 때, 학생들이 극복한 역경을 고려해 ‘새로운 대입 기준’을 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교육부에 대학 구성원의 포용성,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정책과 이를 방해하는 정책을 분석할 것을 지시했다고 하기도 했다. 이어 방해가 되는 정책으로는 대학이 동문 자녀를 우대하는 ‘레거시’(legacy) 제도를 꼽았다. 그는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대법원의 이번 결정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당부했다. 교육부와 법무부는 45일 내로 대학에 이번 판결 이후에도 합법적인 대학 입학 정책과 관행을 안내할 계획이다.
반면 공화당 소속인 트럼프 대통령은 환영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우리는 완전히 능력 기반의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옳은 길"이라고 밝혔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이제 학생들은 동등한 기준, 개인의 성취를 바탕으로 경쟁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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