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낭만 타령

이용상,산업2부 2023. 6. 30.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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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에도 국회는 평소와 같았다.

이토록 낭만이 상실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말에 동의한다.

낭만의 상실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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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 산업2부 차장


지난 19일에도 국회는 평소와 같았다. 여야 의원들은 서로를 향해 거칠게 비난했다. 차이점이라면 그날은 본회의장 방청석에 아이들이 있었다는 거다. 강원 홍천초 학생 42명과 경북 구미 도봉초 학생 76명이 있었다. 다음 날도 의원들은 서로 고성을 냈다. 이날도 국회엔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이 있었다. 경북 울진 남부초 학생 36명이다. 정치인들의 꼴사나운 모습을 아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50분 정도 지켜봤다.

이 장면을 묘사한 기사를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그게 연기일지언정 평소와 달랐어야 했다. 이토록 낭만이 상실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정치의 목적은 결국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데 있다. 지금 이들이 하고 있는 건 정치고 뭐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국회에 있던 의원들은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 잊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알았냐?”

낭만의 상실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요즘 의사들 사이에서 생명과 직결된 필수 진료과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는 찬밥 신세라고 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 힘들고, 하는 일에 비해 버는 돈이 적어서다.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만 넘쳐난다.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는 의사의 사명감은 드라마 속 얘기다.

교육자의 자부심을 안고 사는 교사는 얼마나 될까. 교사노동조합연맹이 교사 1만1377명에게 물었는데 응답자의 87%가 최근 1년 안에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했다고 했다. 교권 추락은 교사의 사명감을 빼앗았다. 공무원도 이제 직장인일 뿐이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 6000명을 대상으로 공직 생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기회가 되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는 대답이 45.2%에 달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박봉(74.1%)이다. 주도적으로 정책을 생산하지 못하고 대통령실이나 정치권이 하달하는 업무만 수행하는 분위기도 사명감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 검·경이라고 다를까. 올 2월 정기인사에서 10년차 이하 평검사 15명이 로펌으로 옮겼다. 지난해 경찰 퇴직자는 3543명으로 2018년보다 46.3% 늘었다.

사명감보다 다른 가치를 좇는 이들을 탓하는 게 결코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상품’이 됐다. 적은 시간을 들여 적당한 기사를 생산하려고 고민한다. 기사의 가치나 의미를 따지는 데 무뎌졌다. 낭만가객 최백호는 이런 가사를 썼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세월이 흐를수록 낭만은 다시 못 올 거라는 최백호의 읊조림이 서글프다.

모두가 낭만주의자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낭만이 사라진 시대는 불행하다. 낭만은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낭만주의자들은 결정하고 행동할 때 효율성만을 따지지 않는다. 순수, 열정, 꿈, 이상 같은 걸 동경한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무슨 얼어 죽을 낭만 타령이냐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 낭만이 내동댕이쳐지는 경우는 밥 한 끼 못 먹어서가 아니라 소고기를 먹기 위해서다. 그게 아니더라도 낭만의 가치는 먹고살기 힘들수록 더 커진다. 낭만주의자는 얼핏 현실을 외면한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이 사회를 사랑하는 이들이고, 역설적이지만 이런 태도가 고단한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내게도 다시 낭만이 찾아오길.

이용상 산업2부 차장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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